수가 인상만 답?… '의료사고 특례법' 돌파구 찾는 필수의료

신은진 기자 2023. 9. 13.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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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의료분야 인력난 해결을 위해선 의료사고 특례법 등 불가항력 의료사고부터 의료인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게티이미지뱅크
정부의 긴급 필수의료 지원대책 발표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응급실 뺑뺑이'도, '소아과 오픈런'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필수의료로 분류되는 소아과, 산부인과 폐업은 늘고, 수술을 포기하는 흉부외과, 신경과 전문의가 급증하는데 이들 과목엔 전공의도 없다. 10년 후 우리나라에선 필수의료 분야 수술, 진료 자체가 완전히 불가능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비상사태가 계속되는 가운데 해결책으로 수가 인상과 함께 '필수의료사고 처리 특례법'이 떠오르고 있다. 말 그대로 필수의료에서 발생한 의료사고는 일반의료사고와 다르게 취급해야 한다는 주장에 안팎의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불안해서 진료 못 해" 안심 진료 환경 요구한 의료계

의료계 바깥의 사람들은 의사들이 모든 문제를 '돈(수가)'으로 해결하려 든다고 말한다. 실상 의사들은 수가를 아무리 올려줘도 안심하고 진료를 볼 수 있는 법적 장치가 없으면, 필수의료를 살릴 수 없다고 한다. '필수의료사고 처리 특례법'이야 말로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필수 장치라고 강조한다.

의료계가 요구하는 특례법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과 비슷하다.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은 자동차 보험에 가입한 운전자가 운전 중 과실로 타인에게 피해를 줬더라도, 특정 유형의 교통사고만 형사 기소할 수 있도록 하는 특별법이다. 즉, 고의 또는 중과실이 아닌 의료행위에 대해선 형사처벌을 최소화해달라는 것이다. 실제 의사 설문 조사결과를 보면, 필수의료를 선택하지 않는 이유와 필수의료과목 전문의를 취득하고도 관련 진료를 하지 않는 주요 이유엔 '최선의 진료를 했으나 결과에 대해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이 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 우봉식 원장은 "필수의료를 막기 위해선 재정적 지원과 별개로 법과 제도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악의적 고의 또는 과실이 없는 선의에 의한 의료행위를 했음에도 나쁜 결과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의료인을 법정 구속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며 "최선을 다해도 불가항력 의료사고 발생 위험이 큰 필수의료 대신 소송 위험이 적은 안전한 분야만 선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 원장은 "의료사고는 고의 또는 중과실에 대해서만 명확한 처벌 기준을 명시하고, 그 외는 특례로 정해 의료사고로 인한 의료인들의 형사처벌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더불어 환자에 대한 신속한 피해 회복을 위해 의료분쟁조정법에 관련 조항을 신설하거나 ‘(가칭)의료사고처리특례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선을 다해 일해도 언제든 감옥에 갈 수 있다는 불안을 항상 안고 일해야 하는 직업이 어디 있느냐"며 "행위의 결과를 보고 의사를 구속하거나 형사처벌을 한다면 그 의사의 진료를 받는 또 다른 환자의 진료권을 박탈하는 선의의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해외에선 의료행위에 대한 형사 고발·고소를 일반적인 사건과 다르게 관리한다. 미국, 캐나다를 비롯한 세계 대부분의 국가는 의료사고로 기소하려면 형사법상 행위 요건인 고의의 의도가 있어야만 한다. 선의의 의료행위를 단지 결과가 나쁘다고 형사 기소를 하지는 않는다.

이는 당장 폐과 위기에 처한 필수의료과목 현장에서 모두 공감하는 사안이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김지홍 이사장은 "소아청소년과 진료는 국가 시스템으로 보호해줄 테니 소신껏 진료하라는 정부의 메시지가 없으면 인력을 유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고 밝혔다. 김 이사장은 "소아청소년과는 지원자가 없어 2024년엔 전국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한 명도 없는 병원이 전국 병원의 50%에 달할 것이며, 2025년엔 주간병동조차 운영할 수 없는 병원이 그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그는 "소아청소년과 의료인력이 안정적으로 유입될 때까지 필수진료 보상을 강화하고, 전공의 근무여건 개선, 의료사고 부담완화 등의 대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대한신경외과학회 권순찬 필수의료육성위원장은 "전공의 대상 조사를 해보면, 이들이 원하는 '보상'은 금전적 보상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며 "힘들고 어려울 것을 알면서도 사명감으로 필수의료를 선택한 이들에게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다"고 말했다. 권 위원장은 "필수의료 과목 의사에게 필요한 건 최선의 진료를 할 수 있는 안정적인 진료 환경과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보호이다"며 "필수의료분야 전문 변호사 지원 등 '의료사고 처리 특례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공의들 역시 이에 공감했다. 응급의학과 전공의인 대한전공의협의회 박단 회장은 "필수의료 분야는 '하이리스크 노리턴(High risk No return)'임에도 선택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지만, 최선을 다한 전공의에게 형사 고소가 이뤄지는 현실을 보며 불안을 느낀다"며 "고위험이라는 필수의료라는 특수성, 수련 과정이라는 전공의의 특수성 등을 고려한 정책적 지원이 있어야 필수의료 분야를 선택하는 전공의가 늘 것이다"고 말했다.

흉부외과 전문의이기도 한 대한의사협회 이필수 회장도 "필수의료분야 현장은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상황이 발생하기에 무과실 의료사고, 불가항력 의료사고로부터 의료인을 보호할 법적 장치는 필수다"며 "안전장치가 있어야 필수의료분야를 선택하는 전공의도 늘어날 것이다"고 밝혔다.

◇발의는 됐는데… 통과 여부는 불투명

법 제·개정의 열쇠를 쥔 국회와 복지부도 '필수의료사고 처리 특례법'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러나 앞길은 불투명하다. 국회는 여야 모두 관련법을 발의했거나 추가 입법을 준비하고 있으나 제대로 법안을 검토하지 않고 있고, 복지부는 관련 부처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라고만 하고 있다.

여당의 경우, 국민의힘 홍석준 의원이 필수의료 특례법을 준비 중이다. 홍 의원은 "필수의료 분야의 낮은 수가 문제와 의료과오에 대한 불합리한 형사처벌이 의료인에게 부담되어 필수의료 분야를 기피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며 "의료행위 결과에 대한 의료인의 합리적인 면책과 필수의료에 대한 지원이 법제화될 필요가 있어 관련 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여당은 의료사고 손해배상 대불비용 부담금 산정기준 마련과 안정적 재원 운영 위한 법안은 이미 발의했다. 국민의힘 최재형 의원은 최근 의료사고 손해배상과 관련한 '의료분쟁조정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현행법은 의료사고 피해자가 의료사고를 낸 의료기관으로부터 손해배상금을 지급받지 못한 경우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피해자에게 손해배상금을 우선 지급(대불금)하고 추후 배상의무자에게 상환을 받도록 하는 손해배상 대불제도를 운영하도록 하고 있으며, 대불금 지급에 필요한 재원은 병‧의원 등 보건의료기관개설자들에게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대불금은 늘어나는 반면, 상환율이 떨어져 재원이 고갈되다 보니 의료기관에 추가로 부담금을 걷는 일이 반복돼 의료인의 부담이 크다는 점을 고려한 법이다.

야당에서는 더불어민주당에선 신현영 의원이 중증환자를 치료할수록 의료사고로 인한 형사처벌 위험이 큰 필수의료 특수성을 고려,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처벌 감경 또는 면제 내용을 포함한 '필수의료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신 의원은 불가항력 의료사고로 인한 피해 보상 대상을 소아 진료 중 발생한 중대한 의료사고로 인한 피해까지로 확대하는 '의료분쟁조정법 개정법률안'도 발의한 상태다.

다만, 실제 법 제·개정을 위해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필수의료사고 처리 특례법은 아직 법사위에서 제대로 논의된 적이 없다. 법안심사 소위 상정 계획도 마련된 게 없다. 법사위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헬스조선과의 통화에서 "의료사고 특례법은 언급하기 어려운 상황이다"며 "아직 법안소위 상정 계획도 잡혀 있지 않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이 같은 상황에 진퇴양난을 겪고 있다. 임혜성 필수의료총괄과장은 "법제도 개선은 필수의료분야를 살리기 위한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며 "다만, 이는 사회적 합의와 타 부처와의 협의가 필요한 부분이니 함께 노력해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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