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삼쩜영] 광화문 오가는 '범인들' 보십시오, 할 말이 없습니다
그룹 '육아삼쩜영'은 웹3.0에서 착안한 것으로, 아이들을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가치로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서울, 부산, 제주,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다섯 명이 함께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 <편집자말>
[임은희 기자]
아이들과 인사동, 광화문, 정동, 명동 등 유동인구가 많은 장소를 방문할 때마다 고개를 들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쓰레기를 만난다. 우리 동네(광화문 인근)는 왜 이렇게 꾸준히 지저분할까.사람들은 왜 이렇게 성실하게 쓰레기를 버릴까?
경찰들의 토시를 관찰하고 분류하는 놀이가 재미없어진 초등학교 4학년 딸은 이제 길에 널려 있는 쓰레기를 찾으며 놀기 시작했다. 문제의식 반 호기심 반으로 시작한 쓰레기 탐구 놀이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 책 소개 설치물 위에 놓여있는 일회용컵 키가 커야 볼 수 있는 시설물 위쪽에 쓰레기를 놓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키가 작은 중장년 분들이 청소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높은 곳에 쓰레기를 버리면 수거가 어렵다. |
ⓒ 임은희 |
아이들 말마따나 쓰레기가 주로 버려진 곳들은 어린이들이 했다고 보기 어려운 장소인 경우가 많았다. 출퇴근 인파가 많은 지하철역 근처, 어린아이들 손이 닿기 어려운 높고 위험한 구조물 상단, 직장인들이 즐겨 찾는 골목의 후미진 장소 등으로 어린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이 주로 다니거나 집회가 자주 발생하는 도로, 경찰이 상주하는 장소 등은 오히려 깨끗해서 쓰레기를 찾기 어려웠다.
아이들의 추리(?)에 따르면 가장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쓰레기는 일회용컵과 담배였다. 일회용컵은 안쪽에 쓰레기나 음료수가 들어있는 상태로 버려지는 경우가 많단다. 그리고 쓰레기를 버리는 주범은 아무런 특이점이 없는 보통의 어른들인 것 같다고 말했다.
▲ 시청역 출입구 난간의 모습 계단을 내려가면 화장실이나 플랫폼 근처에 분리수거함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고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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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365일 늘 쓰레기가 쌓여있는 무교로의 풍경 플라스틱 병, 일회용 컵과 담배, 종이컵, 과자봉지 등 다양한 쓰레기가 쌓여있다. 길을 걷다 쓰레기더미를 보고 깜짝 놀라는 여행객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초등학교 4학년인 딸은 손가락질하며 이렇게 쓰레기가 많은데 텀블러 쓰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며 서울의 미래를 걱정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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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을 포함한 세종대로 인근에서 쓰레기통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시민의 접근이 용이하고 공공성을 갖춘 분리수거 시설은 광화문역, 시청역 군데군데 위치한 분리수거함과 서울도서관 후문의 분리수거함 정도다. 하지만 전철역은 지하로 내려가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고, 도서관은 운영시간(평일 9:00 - 21:00, 주말 9:00 - 18:00)에만 이용할 수 있다.
광화문역 9번 출구 화장실에는 대용량 쓰레기통이 있지만 분리 없이 한 번에 모으는 형태라 버리는 순간부터 오염이 시작된다. 게다가 밤 12시가 되면 셔터를 내려 출입을 금지하기 때문에 야간에는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릴 수 없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카페가 많은 장소일수록 이상할 정도로 쓰레기통이 없었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일회용컵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넘쳐나는데 일회용컵 수거 시설이나 분리배출을 위한 분리수거함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 정동길에 버려진 음료수 일회용컵에 담긴 음료수를 비닐봉투에 담긴 상태 그대로 버리고 가는 경우도 있다. |
ⓒ 임은희 |
플라스틱 생수병을 수집하는 시설이 최근 세종문화회관에 1개 생겼지만 사람들이 즐겨마시는 음료수를 담은 일회용컵의 재사용 및 수거를 위한 서비스는 전무한 것이 현실이다.
▲ 광화문 광장의 쓰레기 남은 음료와 휴지를 비롯한 다양한 쓰레기로 꽉꽉 채워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숨기듯 버린다. 아이들이 이런 쓰레기를 발견할 때마다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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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일회용컵을 아무데나 버렸다. 전시시설, 화단, 벤치, 분수 등 모든 장소에 쓰레기가 존재했다. 심지어 사업장에서 종류별로 분류해 도로에 내놓은 재활용품 위에도 버렸다. 공무직 분들은 일회용컵을 분류하고 음료수에 젖어 찢어진 종이상자를 옮기느라, 혹은 스티로폼 상자들 사이에 끼워 넣은 재활용 불가 쓰레기를 치우느라 고생이셨다.
▲ 재활용 가능한 종이상자만 모아둔 곳에 버려진 일회용컵 그나마 여기는 안의 음료수가 새어 나오지 않아 양호한 편에 속한다. 음료수가 남아있는 상태에 담배꽁초나 쓰레기를 넣고 버렸는데 쏟아지기라도 하면 더러운 물이 흘러나와 종이상자를 포함한 주변을 더럽게 만든다. 공무직 분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
ⓒ 임은희 |
"쓰레기통도 별로 없고 텀블러 쓰는 사람들보다 일회용품 쓰는 사람들이 더 편하고 좋아 보여. 멋진 언니 오빠들은 모두 손에 일회용컵을 들고 있기도 하고 말야. 그런데 왜 우리한테는 물병을 들고 다니라고 하고 쓰레기를 바닥에 버리지 말라고 가르치는 거야?"
딸이 쓰레기를 바지 주머니에 구겨 넣으며 투덜거렸다.
▲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 2022 <미술관-탄소-프로젝트> 미술관 매장 자원 및 에너지 사용 현황 중 카페 2곳의 플라스틱 컵 사용량 현황에 관한 부분. '지속 가능한 미술관이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제기하고 직면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자료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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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은 2022년 <미술관-탄소-프로젝트> 자료집에서 미술관 매장의 일회용품 사용실태를 밝힌 적이 있다. 2022년 7월 기준 임대매장인 테라로사와 오설록의 플라스틱 컵 사용량을 보고 충격을 받았었다. 7월 한 달 동안 테라로사에서 판매한 플라스틱 일회용 컵은 총 7719개였다. 오설록도 4094개로 수량이 적지 않았다.
▲ 중구와 종로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쓰레기 무단투기 금지 안내문 단속과 벌금에 관한 이야기가 많지만 보란듯이 주변에도 쓰레기가 버려져 있는 경우가 많다. 대안 없는 금지는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쓰레기를 버리는 일은 불법이지만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는 인식만 남기고 있는 듯하다. 지킬 수 있는 계도방안이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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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2일부터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시행한 세종과 제주 지역은 제도가 안착 중이라고 한다. 특히 제주의 경우 지난 8월 기준으로 반환율이 무려 64%란다. (출처 환경부) 반환된 컵은 오염도가 낮아서 우수한 재활용 원료로 쓰인다는데, 시행 9개월 만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제주와 세종의 모습을 보면서 서울도 함께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4일 서울시는 마포구 상암동에 쓰레기 소각장을 신설하기로 결정했단다. 다회용품 사용을 늘리고 재활용률을 높여 쓰레기의 양을 줄이는 과정이 우선이어야 하는데 그저 쓰레기를 태워버리는 단기적 안목의 미봉책을 미래 세대를 위한 환경 정책으로 아이들에게 소개하기엔 좀 부끄럽게 여겨졌다. 종량봉투에 다 쓸어 담고 버리는 것만큼이나 쉽고 단순한 발상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종각역 부근에서 운동복을 입은 청년들이 러닝 대신 쓰레기봉투와 집게를 들고 플로깅 하는 모습을 보았다. 아이들의 눈이 반짝거렸다. 환경에 관심을 가지는 형과 누나들이 있다고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쓰레기를 주워 1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쓰레기통까지 들고 가 버렸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작은 노력에도 감동하고 기뻐하며 따라 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는 멋진 어른들이 많았으면 한다. 일회용컵과 텀블러를 세척하고 분류할 수 있는 장소가 많아진 종로를 상상했다. 사용 후 차곡차곡 예쁘게 쌓여있는 일회용컵과 누구나 대여 가능한 공용 텀블러가 들어 있는 살균세척기를 보며 자원재활용과 믿을 수 있는 사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테니까.
브랜드 구분 없이 일회용컵을 가져가면 친절하게 받아주고 포인트를 적립하는 제도가 자리 잡아도 좋을 것 같다. 회사의 이익구조보다 공공의 환경 정책이 우선한다는 귀한 사례를 직접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쓰레기 소각장을 선정하며 발생하는 갈등과 비용보다는 식수/세척대 관리가 더 평화롭고 지속가능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에게 다회용품 사용과 자원 재활용의 중요성을 보여줄 수 있는 멋진 교육 현장도 될 수 있고 말이다.
▲ 서울자전거 따릉이 대여/반납 장소의 쓰레기 따릉이가 모여있는 대여/반납 장소에도 쓰레기가 많은 편이다. 따릉이 주변의 인도나 화단 주변에는 캔커피, 일회용컵 등이 잘 숨겨져 있다. 자전거 바구니에 생수병 같은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경우도 쉽게 볼 수 있다. 자정 무렵에 수거 차량이 다니는데 수거하시는 분들이 쓰레기를 제거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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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는 사람은 누군지 알 수 없지만 버려진 쓰레기는 모두의 눈에 담기기 마련이다. 아이들이 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보며 버린 어른들의 손을 함께 생각한다는 것을 어른들이 알면 좋겠다. 아무리 학교에서 잘 배워도 사회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면 아이들은 배움을 실천할 수 없다.
어른들이 다회용품 사용을 즐기고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는 불편함을 선택할 때 아이들의 환경 교육은 시작된다. 서울시가 시민들을 도와주면 좋겠다. 환경을 지키기 위해 개인이 노력하고 아이들이 그런 어른들을 자연스럽게 따를 수 있도록 장기적 안목의 일관된 환경 정책으로 뒷받침해줬으면 한다.
쓰레기와 쓰레기 소각장으로 뒤덮인 도시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어 하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쓰레기를 다른 도시나 마을로 보내며 깨끗함을 유지하는 이기심을 자랑스럽게 가르칠 부모도 없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도시를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어른들의 행동을 모방할 아이들이 아직 남아있을 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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