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뱁새 김용준 프로의 골프 모험] 같은 말 다른 의미, 한국 골프의 위기
이은경 2023. 9. 13. 07:09
“한국 골프가 위기를 맞았다” 관록 있는 골퍼인 가까운 지인이 말했다. 뱁새 김용준 프로도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독자는 어떤가? 같은 생각인가?
뱁새 눈치를 힐끔 살핀 지인은 뱁새가 동조하자 힘을 얻어 말을 이어갔다. 한국 여자 프로 골퍼가 미국여자프로골프투어(LPGA 투어)에서 우승하는 일이 뜸해졌다고. 여자 골프 세계 랭킹 상위에 드는 한국 선수도 크게 줄었다고.
이 대목에서 뱁새 김 프로는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지인이 한국 여자 프로 골퍼가 선전하는지 여부를 한국 골프의 현재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삼은 것에 완전하게 동의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뱁새가 남자이고 보니 한국 남자 선수가 미국프로골프투어(PGA투어)에서 선전하고 있는데 무슨 위기냐고 생각하느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그 사실 역시도 한국 골프의 발전을 판단하는 잣대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고 뱁새는 생각한다. 남자 프로 골퍼가 해외 투어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 역시 한국 골프의 발전 여부를 평가하는 데 절대적인 요소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뱁새 당신은 왜 한국 골프가 위기라고 생각하느냐고?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몸집은 커지고 생각은 자라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성숙했다고 말할 수 없다. 생각이 오히려 오그라들면? 퇴행이라고 부른다. 한국 골프가 위기라고 뱁새가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한국 골프가 양만 따지면 빠르게 성장했다. 그런데 질은 양적 성장을 따라가지 못했다. 아니, 솔직히 오히려 질이 떨어졌다고 말하고 싶다. 독자가 고개를 끄덕인다면 틀림 없이 정통파 골퍼이다. 뱁새 칼럼 애독자이기도 할 것이고. 흠흠.
골프에는 스코어 카드에 기록하지 않거나 기록할 수 없는 요소도 많다. 한 라운드에 몇 타를 쳤느냐 못지 않게 중요한 데도 말이다. 그것을 골프 정신이라고 한다. 골프 정신은 뱁새가 지어낸 말이 아니다. 골프를 창시하고 계승하고 발전시킨 골프의 선조들이 수 백 년에 걸친 긴 세월 동안 세운 대원칙이다.
골프 규칙에 따라 플레이 하는 것이 골프정신의 근간인 것은 말하나 마나이다. 다른 플레이어를 배려하는 것도 골프정신의 한 축이다. 코스를 보호하는 것도 들어 있다. 신속하게 플레이 하는 것을 말하는 페이스 오브 플레이(Pace of Play)도 골프정신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한국 골프는 골프정신이라는 기준으로 볼 때 후퇴하고 있다고 뱁새는 생각한다. 그래서 위기라고 본다는 말이다.
복잡하게 옳고 그름을 가릴 것도 없다. 벙커에 남아 있는 무수한 발자국이 말해준다. 한국 골프는 플레이어가 지켜야 할 코스를 보호할 의무 따위는 진즉 내팽개쳤다는 사실을.
골퍼 탓만은 절대 아니다. 빠듯한 티 오프(Tee Off) 간격 탓도 크다. 팀(실은 조가 맞다)간 간격을 좁히는 것이 가장 큰 임무가 된 캐디에게 “내버려 두고 빨리 오세요”라는 말을 들어보지 않은 골퍼가 드물 정도이다. 벙커 정리를 정성껏 해볼라치면 재촉하는 말에 대충 비벼놓고 고무래를 던져놓게 되는 것이다.
“건너가서 치세요”라는 말을 들어보지 않았다면 한국 골퍼가 아니다. 공이 물에 빠지면 페널티 구역 말뚝이 빨간색이든 노란색이든 가리지 않고 무조건 건너가서 치는 것이 한국 골프이다. 색깔에 따라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있다. 노란색 말뚝이면 건너가지 말고 이쪽 편에서 다시 쳐야 한다. 빨간색말뚝이라도 공이 물을 완전히 건너갔다가 뒤로 굴러서 빠진 것이 아니라면 마찬가지이다. 건너가지 못하고 다시 쳐야 하고.
재촉하는 골프장은 골퍼가 골프 규칙을 지키든 말든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규칙에도 없는 오비(OB)티에서 플레이를 해 주고 안개 속에서 깜빡이는 점멸등만 보고 플레이를 해주는데도 골프장의 재촉은 한이 없다. 하기야 이른바 알까기를 한 프로 골퍼를 안쓰러워하는 골프 팬이 있는 데 페널티 구역 구제 규칙 따위가 대수랴.
타인에 대한 배려도 마찬가지이다. 경기 중 타인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퍼부은 프로 선수가 여전히 대기업으로부터 큰 금액을 후원 받으며 활동하고 있다. 도대체 그 스폰서는 스포츠 마케팅을 통해 어떤 그룹으로 비치고 싶은 것일까? 혹시 거칠고 강한 이미지일까?
홀을 규칙 보다 크게 만든 엉터리 놀이공원 같은 골프장 이야기는 이미 몇 회 전에 했다. 그게 무슨 골프인가. 아직도 버젓이 큰 홀을 쓰고 있는 골프장 아니 놀이공원이 있다는 제보를 들으면 마음이 답답하다. 그런 놀이공원 경영자에게는 골프정신 같은 것은 애초에 없다. 오죽하면 108mm짜리 자를 만들어서 독자에게 나눠주는 캠페인을 해 볼까 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을까? 108mm는 골프 규칙이 정한 홀 크기이다. 이 보다 작거나 크면 골프장이 아니다.
한국 골프장은 한국 골프가 급성장한 수혜를 가장 크게 누렸다. 그런데도 한국 골프에 되돌려 주는 것은 거의 없는 형편이다. 한국 골프의 미래인 주니어가 대회를 치를 경기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학업도 병행해야 하는 학생 선수가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시합을 치르느라 곤욕을 치르고 있다. 주니어 시합에 그린피를 할인해 주는 데도 지독할 만큼 인색하다.
한국 골프는 위기이다. 골퍼와 골프장 골프장비업체 골프 미디어가 급성장한 것에 맞춰 질도 성장하면 멋질 것이다. 그 가운데 골퍼인 독자가 할 수 있는 것은 골프정신에 맞게 플레이 하는 것뿐이다. 골프장 같은 골프 세상의 다른 참여자에게는 골프정신에 맞게 플레이 할 수 있도록 준비해달라고 계속 일깨워주면서 말이다.
‘뱁새’ 김용준 프로와 골프에 관해서 뭐든 나누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메일을 보내기 바란다. 지메일 'ironsmithkim'이다.
김용준 KPGA 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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