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주가 급등한 의료 AI 기업, 릴레이 증자 배경은

박형수 2023. 9. 13.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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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챗GPT 등장 이후 AI 개발 업체로 자금 쏠림현상
국내 의료 AI 업체, 대규모 증자로 재무 리스크 해소 노려

의료 인공지능(AI) 기술을 개발 중인 루닛과 딥노이드, 노을에 이어 라이프시맨틱스가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의했다. 지난해 말 오픈AI가 챗GPT를 공개한 이후 세계적인 IT 업체들이 분야별 AI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기술 개발 경쟁에 나섰다. 막대한 자금 투입으로 AI 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지면서 국내 의료 AI 업체들도 시장 선점을 위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릴레이 증자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올 들어 의료 AI 관련주 주가가 급등한 점도 증자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루닛·딥노이드 등 AI업체 줄줄이 주주배정 증자 결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라이프시맨틱스는 의료 AI 솔루션 연구개발 자금과 디지털치료기기 임상 자금 등을 마련하려고 200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 유상증자를 결의했다. 구주 1주당 신주 0.53주를 배정했다. 신주 발행 예정 가격은 3680원이다. 최종 발행가는 11월 중순 확정한다.

라이프시맨틱스는 조달한 자금 가운데 50억원은 연구개발 자금으로 사용한다. 피부암 진단 보조를 돕는 소프트웨어 유효성 평가를 위한 임상시험을 시작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닥터앤서 2.0 국책과제를 통해 개발한 피부암 영상검출·진단보조 소프트웨어(SW)의 확증 임상시험 계획을 승인받았다. '모발밀도 분석 소프트웨어'와 '고혈압 합병증 예측 소프트웨어' 등도 개발하고 있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닥터콜'과 호흡재활 디지털 치료기기 '레드필숨튼(DTx)'의 해외 진출을 위한 현지법인 설립 자금으로 20억원을 배정했다. 디지털치료기기 국내외 임상 자금도 증자로 마련한다.

회사 측은 기존 솔루션과 서비스를 개선하고 사용 범위 확장을 위한 연구 등으로 핵심 기술의 상업적 가치를 높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건강검진 데이터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미래 질병 가능성을 예측하는 솔루션 하이(H.AI)를 개발했다. AI로 분석해 ▲암과 뇌혈관질환 같은 중증질환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 ▲백내장,골절관염 등 총 12개 질환의 2년 내 발생 위험 확률과 상세 리포트를 제공한다.

조달한 자금 가운데 일부는 2021년 12월에 발행한 145억원 규모의 '제2회 전환사채' 상환 자금으로 쓴다. 오는 12월1일부터 2026년 9월까지 3개월마다 조기상환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전환가격이 현재 주가를 웃돌고 있어 투자자들이 조기상환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앞서 루닛은 지난달 23일 이사회를 열어 2000억원이 넘는 대규모 유상증자를 결의했다. 연구개발 자금으로만 700억원이 넘는 자금을 배정했다. 해외 진출을 위한 인력 확충과 해외 자회사 출자 등에도 700억원가량을 투자한다. 루닛은 조달한 자금을 활용해 환자의 진단·치료·모니터링 등 암을 치료하는 데 필요한 의료 AI 플랫폼 회사로 거듭나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루닛 주가는 올해 들어 650% 이상 올랐다. 대규모 증자 결의 이후에도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어 증자 성공 가능성도 커졌다. 이사회 결의 당시 신주 발행 예정가는 10만8700원인데, 현재 주가는 22만원을 웃돈다.

올해 들어 주가가 410% 오른 딥노이드도 증자를 추진하고 있다. 딥노이드는 뇌동맥류 AI 영상 판독 솔루션인 딥뉴로(DEEP:NEURO)와 딥러닝 기반 머신비전 솔루션인 딥팩토리(DEEP:FACTORY) 등을 개발했다. 300억원을 조달해 시설자금과 연구개발 자금 등으로 활용한다. 제품 개발과 고도화에 필요한 CPU와 AI 학습을 위한 GPU, 대용량 학습 데이터 및 AI 학습 데이터 저장을 위한 저장장비 등을 확충한다.

진단검사 플랫폼 개발 업체 노을은 지난 7월4일부터 신주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 절차를 밟고 있다. 신주 발행가는 6920원으로 확정했다. 현재 주가 1만2200원을 고려하면 오는 14일부터 이틀 동안 진행하는 구주주 대상 청약에서 참여도가 높을 것으로 보인다.

노을은 내장형 AI 기술과 자체 보유 원천기술인 고체 기반 차세대 염색 및 면역진단(NGSI)을 기반으로 혈액과 조직세포를 분석, 질병을 진단하는 마이랩 플랫폼을 개발했다. 증자로 486억원을 조달하고 차세대 마이랩과 AI 암 진단 솔루션 및 카트리지 등을 개발하는 데 200억원 이상 투자한다.

재무 리스크 해소 기회…주가 급등으로 지분 희석 최소화

의료 AI 개발 업체가 잇따라 자금을 조달하게 된 배경에는 세계적인 AI 열풍과 무관하지 않다. 챗GPT 이후 AI에 관심이 커졌고, AI 개발 업체들은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에도 어렵지 않게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막대한 연구개발 자금을 바탕으로 경쟁사보다 빠르게 기술을 완성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기술 개발을 위해 연구인력을 뽑고 개발비를 투자하면서 의료 AI 업체들은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성장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가가 오르는 기회를 활용해 자금을 조달하지 않으면 벌어서 연구개발 자금을 충당하기 쉽지 않은 구조다.

루닛은 올 상반기에 영업수익 164억원, 영업손실 124억원을 조달했다. 영업수익 증가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긴 하지만 손익분기점(BEP) 돌파는 2025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연간 600억원이 넘는 비용을 지출하는 것을 고려하면 보유 현금 500억원만으로는 내년까지 버티기가 쉽지 않다. 박종현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유상증자로 운영자금을 1100억원 조달한다"며 "손익분기점 달성 시기까지 필요한 운영자금을 마련하면서 리스크를 해소한다"고 설명했다.

루닛뿐만 아니라 의료 AI 연구개발 상장사 가운데 이익을 내는 기업은 많지 않다. 딥노이드는 올 상반기 4억원 매출에 37억원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노을은 상반기 매출액과 영업손실을 각각 15억원, 72억원으로 집계했다. 라이프시맨틱스는 상반기 43억원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매출 9억원의 4배가 넘는 규모다.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연구개발 자금이 꾸준하게 들어간다는 것까지 고려하면 신주나 전환사채 발행, 금융권 차입 등 다양한 자금 조달 방안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주가가 큰 폭 올랐다. 경영진과 최대주주는 지분 희석에 따른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자금을 조달할 기회인 셈이다. 김충현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주가 급등에 따른 밸류에이션 부담과 이후 주가 조정 과정은 혁신기업이 거쳐야 할 필수 관문"이라며 "주가 조정을 두려워하기보다 현금 소진에 대비한 재무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박형수 기자 parkh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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