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감소세까지 타격 받는다…또 '연중 최고' 국제유가 리스크
국제 유가가 배럴당 90달러대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국내 경제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 고유가로 물가 상승률이 반등한 데 이어, 꾸준히 이어지던 수입 감소세까지 둔화할 조짐을 보이면서다.
12일(현지시간)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11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종가는 배럴당 92.06달러로 전장 대비 1.42달러(1.6%) 상승하며 올해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는 지난해 11월 16일(92.86달러) 이후 10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또 뉴욕상업거래소의 10월 인도분 미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종가는 배럴당 88.84달러로 전날보다 1.55달러(1.8%) 상승했다. 이 역시 작년 1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는 글로벌 공급 둔화로 원유 재고 하락이 예상된다는 미 에너지정보청(EIA) 보고서가 나오면서 공급 차질 우려가 확산한 영향을 받았다. EIA는 이날 단기 전망 보고서에서 9월 5일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의 감산 연장 발표를 반영해 글로벌 원유 재고 감소량이 올해 3분기 하루 60만 배럴, 4분기 하루 20만 배럴에 각각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EIA는 "향후 몇 달간 글로벌 원유 재고 하락이 유가를 지지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국제 유가 상승세는 7월부터 이어지고 있다. 사우디 감산, 러시아 수출 축소 등으로 공급이 감소한 반면 글로벌 수요가 줄지 않는 여파가 크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9월 보고서에서 주요국 경제 상황이 양호하다면서 올해 글로벌 원유 수요 전망을 유지했다. 올 4분기 OPEC에 대한 원유 수요도 생산량보다 하루 300만 배럴 이상 많을 것으로 예측했다. 이달 들어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내년까지 유가가 배럴당 107달러 수준으로 치솟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초빙교수는 "사우디의 감산이 지속되는데다 러시아산 원유를 중국뿐 아니라 인도에서도 많이 사들이고 있다. 공급과 수요가 엇갈리면서 연말엔 배럴당 100달러선도 넘어설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 미치는 파장도 이번달 무역 통계에서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관세청이 발표한 9월 1~10일 수출입 자료에 따르면 원유 수입 감소율이 전년 동기 대비 -10.2%로 8월(-40.3%)보다 크게 줄었다. 지난달과 비슷한 감소율을 보인 가스(-55.7%), 석탄(-45.2%) 등 다른 에너지 수입 흐름과 대비됐다. 아직 상순 기준이지만 이달 에너지 수입 감소 추이가 둔화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중국·반도체 시장 부진 속에 수출은 지난달까지 11개월 연속 역성장했다. 다만 수입이 더 크게 줄어든 덕에 석 달째 무역흑자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1위 수입 품목' 원유의 감소세가 주춤하면 무역수지에도 타격이 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달 들어 전체 수입 감소율은 -11.3%로 7월(-25.4%)·8월(-22.8%)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열흘간 무역적자도 16억4000만 달러 늘었다.
물가에도 당분간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7월 2.3%까지 내려갔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8월 들어 3.4%로 반등했다. 지난 4월(3.7%)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휘발유·경유 등 석유류와 농산물 가격 상승이 물가 둔화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이번 달 상황도 녹록지 않다. 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 판매가는 12일 L당 1759.4원으로 한 달 전보다 40원 넘게 올랐다. 서울·제주 지역 판매가는 1800원 선을 넘어섰다. 경유 판매가도 1655.12원으로 한 달 새 100원 가까이 치솟았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10월부터 물가가 다시 안정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연말까지 불안한 유가 변수가 지속할 거란 분석이 나온다.
박수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사우디로 대표되는 OPEC+의 감산 의지가 크고, 이를 방어할 비(非)OPEC의 원유 증산을 기대하긴 어렵다"면서 "유가는 장기적으로 상승 압력이 우위에 있다"고 밝혔다. 강 교수도 "원유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은 유가에 민감한 만큼 경제엔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다. 물가도 쉽게 안정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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