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푸틴 '위험한 거래' 땐…한국 '특단선택'으로 내몰린다
북한과 러시아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 정상회담 개최를 공식화한 가운데 무기 거래 합의가 현실화한다면 이는 한국에 직접적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럴 경우 ‘절박한 상황에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desperate times call for desperate measures)’는 말처럼 한국 역시 살상무기 지원에 선을 그어왔던 기존의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정책기조를 수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손 잡고 선 넘는 악당들
미국은 정보 판단을 근거로 이미 수차례 러시아의 북한산 무기 구매 계획을 공개했다. 정 박 미 국무부 부차관보 겸 대북정책부대표는 11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북·러 정상회담과 관련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쓸 상당량 및 다종의 탄약을 제공받는, 점증하는 북·러 간 무기 거래 관계를 매듭짓기 위한 일련의 대화의 최종 단계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정은이 무기를 넘기는 대가로 바라는 건 자금과 식량에 더해 본인이 직접 제시한 ‘핵 무력 과업’과 관련한 기술 이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2일 김정은의 평양 출발 소식을 전하며 사진을 공개했는데, 수행단에 군부 실세가 다수 포함된 것도 이런 목적성을 드러낸다.
김정은과 푸틴 간에 이런 위험한 거래가 성사된다면 그 자체로 ‘레드 라인’(임계선)을 넘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뿐 아니라 글로벌 핵 비확산 체제 측면에서 보더라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이 될 수 있어서다.
푸틴의 ‘잘못된 선택’ 한국엔 치명적
무엇보다 이는 한국의 안보에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북한은 김정은의 방러 직전인 지난 8일 전술핵공격잠수함 ‘김군옥 영웅호’ 진수식을 공개했다. 이와 관련, CSIS 산하 북한 전문 매체인 ‘분단을 넘어’는 11일(현지시간) “다음 단계는 전 세계를 향해 이 잠수함이 잘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신형 잠수함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시험 발사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10개의 미사일 발사관을 무리하게 다는 등 기존의 중형 잠수함을 기이하게 개조해 정상 운용이 힘들 것으로 관측되지만,(8일 합동참모본부 관계자) 이는 한국을 노린 전술핵 공격 수단을 끝없이 진화시키려는 김정은의 의도를 드러낸다.
또 북한은 올해 들어 상공 150~800m 사이에서 다양하게 미사일 공중폭발 실험을 반복하고 있다. 전술핵의 위력을 실험하는 것으로,(4일 국정원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 한국 공격시 최대 핵 살상효과를 낼 수 있는 고도를 찾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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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피해지는 ‘자위적 조치’
푸틴이 남한을 겨냥하는 김정은의 핵 야욕을 직접적으로 지원한다면, 결국 한국의 선택지는 얼마 남지 않게 된다. 정부 내에서도 이미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할 가능성까지 각오해야 한다는 기류가 짙어지고 있다.
이는 국내 여론과 한·러 관계 등을 고려할 때 정부로서도 정치적 부담이 큰 결정일 수밖에 없다. 정부는 그간 미국 주도의 대러 제재에 동참하면서도 살상무기 지원은 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원칙을 지켜왔고, 고립무원의 처지에서 한국마저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은 러시아 역시 이를 평가했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월 우크라이나를 방문했을 당시 러시아가 공개적으로는 물론 외교채널을 통해서도 아무런 항의를 하지 않은 데서도 드러났다.
하지만 푸틴이 김정은과 무기 거래에 합의하는 순간 한·러 사이에 유지되던 이런 최소한의 관계 유지 공식은 모두 무너질 수 있다. 외교 소식통은 “한·러 관계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푸틴이 직접 김정은 손에 우리를 해칠 무기를 쥐어준다면 우리도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일이 현실화한다면 우리가 취하는 조치도 자위적 차원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11일 방송에 출연해 북·러가 무기 거래를 시도할 경우 한국이 할 수 있는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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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방러 세부사항 제공한다"는 러시아
이와 관련,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러시아 외무부 제1아시아 국장은 11일(현지시간) 타스 통신 인터뷰에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보낼 경우 “(한·러) 관계는 파탄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 역시 이를 가장 경계하는 시나리오로 보고 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부 차관은 김정은의 방러에 대해 “모스크바에는 한국 대사관이 있다. 만약 그들이 원한다면 우리는 가능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인테르팍스 통신이 12일 보도했다. 그는 “한국은 러시아의 교역 파트너이고, 양국은 동북아와 한반도 안정화를 위한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한국과 계속 접촉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그간 북한 측의 요청 등을 고려, 북·러 간 양자 사안에 대해서는 한국 측이 요청해도 내용을 공유하지 않았다. 그랬던 러시아가 전례와 다르게 먼저 ‘정보 제공’까지 제안한 건 한국 측이 이번 북·러 정상회담에 어떻게 반응할지 우려하고 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12일 정례 브리핑에서 러시아 측에 정보 제공을 요청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한·러 양국 간에는 필요한 소통을 계속 하고 있다”고 답했다. 주러 한국 대사관을 중심으로 정보 공유가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결국 한국을 ‘특단의 조치’로 내몰지 여부는 푸틴의 선택에 달렸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러 간의 무기거래가 현실화된다면 러시아의 북핵 관련 직·간접적인 지원이 가시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국가 안보 차원에서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북·러의 '위험한 거래'를 견제하는 차원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자유·민주주의와 같은 핵심 가치를 공유하는 국제사회와 함께 가능한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신중론도 여전히 제기된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강대국에 비해 제한적인 외교적 수단을 가진 한국 입장에서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러시아는 북한 문제를 포함해 다양한 현안에서 레버리지를 가졌기 때문에 이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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