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 다 구속" 확성기 쩌렁쩌렁…집회소음, 경찰이 못막는 이유

김기정, 전민구 2023. 9. 1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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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쌍방울그룹 대북송금 의혹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검찰에 출석한 12일 오후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검찰청 앞에서 보수성향단체가 집회를 벌이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의사당역 2번 출구 옆 보조도로에서 진행되는 '민주당 대표 규탄 집회'에도 참석, 확성기를 통해 "싹 다 구속, 이재명 구속" 등의 구호를 반복 재생한다. 뉴스1

#. “싹 다 구속, 이재명 구속. 싹 다 구속, 문재인 구속.”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2번 출구 인근에선 이런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싹 다 구속, ○○○ 구속’이란 녹음된 구호에 등장하는 야권 인사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이재명 민주당 대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등 13명에 달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한 보수 유튜버는 이런 구호를 2~3차례 반복 재생하고 잠시 멈춘 뒤 직접 마이크를 잡고 “야 재명이 어디 갔대. 단식장에 안 있고 어디 갔어. 야, 밥 먹으러 갔어? 아니면 똥이 잘 안나오는 거여?”라고 조롱했다. 이 대표가 단식 중인 국회 본관 앞과 집회 장소는 직선거리로 450미터가량 떨어져 있지만, 그곳에서도 음절 하나하나 선명하게 들릴 정도로 스피커 소리가 컸다.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에서 열린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 중단 범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 “윤석열은 뼛속까지 왜놈입니다.”
9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일본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 중단 3차 범국민대회’에서 이상규 전 진보당 상임대표는 “(윤 대통령은) 핵 오염수를 처리수로 바꾸려 하고, ‘한ㆍ중ㆍ일’이란 표현을 은근슬쩍 ‘한ㆍ일ㆍ중’으로 바꿨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대통령이냐, 일본 총독이냐”고 비난했다. 좌중에선 “천하의 개XX” 같은 험한 말이 고성과 함께 터져 나왔다. 해당 집회는 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 4당이 공동개최했다.

참석자들이 “(윤 대통령) 탄핵”을 연호하자, 마이크를 잡은 이 전 대표는 “탄핵도 사실 좀 아깝다”며 “대한민국 대통령에게나 탄핵하는 것이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검찰이 이재명 대표를 수사하는 이유로는 “(이 대표가) 친일청산, 민족정기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정치 철학을 지녔기 때문”이라며 “왜놈인 대통령이 절대로 그냥 두지 않을 것”이라고 소리쳤다. 이날 집회는 주최 측 추산 1만5000명, 경찰 추산 2000여명이 참석했다.


집회 소음에 서울 도심 몸살


3월 25일 오후 대학로 일대에서 민주노총 '노동자 대투쟁 선포 전국노동자대회'와 산별노조의 결의대회가 열린 가운데 경찰이 처음으로 소음 측정 전광판 차량을 배치했다. 뉴스1
서울 도심이 집회 소음에 몸살을 앓고 있다. 국회 인근의 국민은행에 근무하는 직원은 12일 “집회 소음뿐 아니라 스피커로 인한 진동도 상당해 두통까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며 “업무 집중이 잘 안 될 뿐 아니라 미관상으로도 너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인근 건물의 한 환경미화원은 “소음이 지하 2층까지 뚫고 내려올 정도”라며 “주변 근무자들이 다 불쾌해한다”고 전했다. 인근의 한 자영업자는 “경찰에 소음이 너무 심하다며 신고도 해봤지만, 전혀 개선되지 않는다”고 했다.

세종대로 집회장 인근에서도 주말 맞이 나들이를 나왔던 시민들은 때론 귀를 틀어막기도 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경찰에 따르면 도심에서 집회가 열릴 때마다 인근 지역의 민원이 집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빗발친다고 한다.

집회 소음에 따른 피해는 여의도나 서울 종로ㆍ중구 일대뿐이 아니다. 대통령실이 위치한 서울 용산구 집회ㆍ시위 건수는 지난해 3407건으로, 2021년 2516건보다 35%가량 늘었다. 대부분 대통령실 인근에서 열리는 집회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에 따르면 집회 소음 등을 이유로 가게를 내놓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경찰 '소음' 지적에 "오버하지마" 반발


5월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열린 민주노총 경고파업 결의대회의 사전집회에서 건설노조의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상황이 이런데도 집회 소음에 대한 경찰 단속은 미비한 실정이다. 10일 여의도 집회에선 확성기 사용을 자제하라는 경찰의 제지에 보수 유튜버가 “당신 업무가 아니야. 저기 (소음 담당) 경찰이 하고 있어. 오버하지마”라며 반발하기도 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 따르면 집회ㆍ시위 주최자는 확성기나 기계ㆍ기구 등을 사용해 타인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는 소음을 발생시켜선 안 된다. 또 관할 경찰서장은 주최자가 기준을 초과하는 소음을 발생시켜 타인에게 피해를 줄 경우 사용 중지 등을 명령할 수 있다. 다만 소음 규제 기준은 대통령 시행령에 따르게 돼 있는데 이 기준에 허점이 많다고 한다.

집회 소음을 측정하는 기준은 크게 등가소음도와 최고소음도로 나뉜다. 여의도 등 서울 도심 일대는 ‘그 밖의 지역’으로 구분돼 낮 시간대 등가소음도는 10분간 75데시벨 초과, 최고소음도는 1시간 동안 세 차례 95데시벨을 초과하면 제재 대상이 된다. 반면 인근에서 또 다른 집회가 있을 경우엔 ‘중복 소음’으로 인정돼 소음 규제를 피할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집회 주최자들이 1~2분가량 확성기를 크게 틀고 나머지는 멈추는 방식을 사용하거나, 1시간 동안 2차례 소음 기준을 초과하면 이후 1시간 동안 쉬는 식의 방식으로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가고 있다”며 “입법이나 시행령 개정을 통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음 규제' 법안 12건, 소관 상임위 계류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7월 2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집회·시위 제도개선 국민참여토론 결과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권도 집회 소음에 따른 문제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지만, 규제 강화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 7월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은 “(대다수 국민이) 과도한 집회 시위로 겪는 피해를 호소해 국민 일상을 보호하고 공공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경찰청 등에 관련 법령 개정을 권고했다. 국민제안 홈페이지 인터넷 찬반 투표에서 참여자의 71%가 집회ㆍ시위 요건 및 제재 강화에 찬성한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경찰청은 ▶등가소음도 측정시간을 기존 10분에서 5분으로 단축하고 ▶최고소음도 위반 판단 기준을 1시간 내 기존 3회에서 2회로 단축하는 등의 시행령 개정안을 준비 중이다.

21대 국회에선 집회 소음 기준 강화 관련 법안이 여야 합쳐 모두 12건 발의됐지만, 현재 소관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국회 관계자는 “그간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나 오송 참사,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탄핵, 잼버리 파행 등으로 인해 행안위가 정상적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며 “집시법 개정 관련 논의는 아직 한 번도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기정·전민구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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