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막히자, 기업에 눈돌린 은행…늘어난 한계기업 주의보

하남현 2023. 9. 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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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이 가계 대출을 옥죄자 은행들이 기업 대출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은행들이 가계 대출 대비 규제가 덜한 기업 대출 영업을 강화하는 가운데, 악화한 채권시장 사정에 기업의 대출 수요가 늘며 기업대출 규모는 증가세다.

김주원 기자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기업대출 잔액은 지난달 말 현재 747조4893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달 대비 8조5794억원 늘었다. 올해 들어 기업대출 증가 폭은 꾸준히 커지고 있다. 지난 2월에는 전월 대비 3조3195억원 늘었는데, 3‧4월에 증가폭이4조원대로 확대된 데 이어 7월에는 6조원대, 지난달에는 8조원대의 오름폭을 보였다.

기업대출 증가 배경엔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강화가 자리잡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2분기 가계신용 잔액은 1862조8000억원이다. 전 분기보다 9조5000억원 늘었다. 올 2분기에만 전 분기 대비 14조원 늘어난 주택담보대출 급증의 여파다. 가계대출 증가세는 3분기들어서도 이어지고 있다. 5대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달 680조8120억원으로 한달 전 보다 1조5912억원 늘었다.

이러자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유관기관과 함께 연 가계부채 현황 점검회의에서 “최근 대출이 많이 증가한 부문을 중심으로 은행권의 대출 태도가 느슨한 부분은 없는지 중점 점검하겠다”라고 밝혔다.

5대 은행 가계대출 잔액 변화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이에 은행들은 금융당국이 최근 가계대출 증가세의 주범으로 꼽은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취급을 중단했거나, 중단 수순을 밟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당국의 규제가 강화된 가계대출을 늘리기는 당분간 어렵다”라며 “기업대출 비중을 가계대출 대비 늘려야 하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채권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은행 문을 두드리는 기업이 늘어난 것도 기업 대출 증가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고금리 여파로 기업들이 높은 금리를 제시해도 회사채 발행이 어려운 상황이어서 자금 조달 창구로 은행을 찾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에 연 4.3%대였던 신용등급 AA- 회사채(무보증‧3년물) 금리는 지난달에 4.5% 수준을 기록했고 이달 들어선 4.6%대까지 올랐다. 정광명 DB금융투자 연구원은 “회사채 발행 부진이 이어지며 기업의 은행 대출 수요가 늘고 있다”며 “ 기업대출의 증가세가 지속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행의 기업 대출 강화 추세는 이어질 전망이다. 우리은행은 지난 7일 ‘기업금융 명가 재건을 위한 전략 발표회’를 열고 현재 4위인 기업대출 점유율을 2027년에 1위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다만 일각에서는 자칫 무리한 기업 대출 경쟁이 은행의 건전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고금리에 경기 부진 여파로 기업의 이자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빚을 제대로 갚지 못하는 기업이 늘어나면 은행의 건전성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어서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외부감사대상 비금융 법인 가운데 한계기업 비중은 14.4%를 기록했다. 한계기업은 영업이익으로 대출 이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 3년 이상 지속된 기업이다. 한계기업 비중은 2018년 9.8%에서 2021년 13.5%를 기록하는 등 매년 높아지고 있다.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은행의 수익성이 개선되고 있고 연체율도 우려할 상황은 아니지만, 고금리 여파에 따른 한계기업의 부실화 가능성이 큰 만큼 은행 건전성이 예상보다 나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금융시장 현안 점검·소통회의를 하고 있다. 뉴스1

이에 금융당국도 기업 부실 위험에 대비한다는 방침이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이달 초 금융시장 현안 점검‧소통회의에서 “주요 산업의 영업 환경과 재무 상황을 적시에 파악하고 신용 위험이 큰 기업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은 금융시장 안정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라며 “금융감독원 등 관계 기관이 기업 신용위험 모니터링 등에 대한 빈틈없는 대응 태세를 갖춰달라”고 당부했다.

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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