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석운 칼럼] 교사들의 죽음을 방치한 교육 당국
기계적 기소, 무더기 무죄
교육의 자주성 심각한 훼손
아동학대 고발 전수조사하고
교권보호위 열지 않은
학교장 소명 받아야
교장 승진 심사에 교권보호
의지 역량, 실적 반영해야
교권보호위의 교육 활동 침해
판단에도 수사·재판 강행 땐
교육청이 변호사 선임해야
전국 교사들의 토요 집회가 재개될 조짐이다. 교사들은 교권 침해를 막기 위한 입법을 촉구하기 위해 오는 16일 국회 앞에서 집회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국회에는 아동학대로 신고된 교사를 정당한 사유 없이 직위해제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 등을 담은 이른바 교권 보호 4법(교원지위법, 초·중등교육법, 유아교육법, 교육기본법)의 개정안들이 계류돼 있다. 교원단체들은 물론이고 정부도 신속한 국회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쟁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교권보호의 당위성에는 여야 간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교권 보호 4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고 해서 교권이 회복될지는 의문이다. 악성 민원에 시달리던 교사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에도 이들을 지킬 수 있는 법과 제도는 존재했다. 현행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 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교원지위법)은 교육 활동 침해에 대응하는 조치들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교육 활동을 침해당한 교원은 즉시 보호하고, 가해자는 수사기관에 고발하라는 조항도 있다. 학교는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 교육 활동 침해 여부를 조사한 뒤 적절한 조치를 하라는 내용도 있다. 가해자가 학생이면 봉사활동부터 전학, 퇴학까지 시킬 수 있다. 보호자인 학부모도 특별교육이나 심리치료를 받아야 한다. 이 법 시행령은 민원이나 진정으로 조사를 받는 교사에게 그 결과가 나오기 전에 인사상 불이익을 주지 않도록 하고 있다. 교사에 대한 폭행, 협박 또는 명예훼손의 경우 엄정 조사해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교육 활동 침해를 명시한 교육부 고시도 있고, 교육개발원이 배포한 교육 활동 보호 매뉴얼도 있다.
문제는 이런 법과 시행령, 고시와 매뉴얼들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 서이초의 2년 차 여교사도, 대전의 24년 차 베테랑 여교사도 학부모들의 민원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까지 학교나 교육청 등 당국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대전의 여교사는 정신과 치료를 받을 정도로 고통을 받다 못해 교권보호위 소집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교장들이 교육활동 침해 논란을 교사들의 책임으로 떠넘기고 교권보호위 소집을 꺼리고 있다. 이러다 보니 교사들은 교권보호위가 교권보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교원지위법은 교육 활동 침해가 발생하면 교사를 보호하고 즉시 관할청에 보고하는 의무를 교장에게 부여하고 있다. 교장은 초·중등교육법상 학교 단위 교무를 총괄하고, 교직원을 지도 감독하며 학생을 교육하는 권한을 쥐고 있는 일선 학교의 책임자다. 교권보호위 개최 여부는 교장의 의지에 달렸다. 교육 당국은 지금이라도 아동학대로 고소·고발된 교사들의 실태를 전수조사하고, 교권보호위를 열지 않은 사유를 파악해야 한다. 교장 승진과 재임용 시에 는 교장 후보자의 교권 보호 의지와 역량, 실적을 반영해야 한다.
교육감들도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 교육 활동 침해 실태를 조사할 권한은 교육감에게 있고, 매년 1회 이상 교육 활동 침해 예방 교육을 실시해야 하는 책무도 교육감에게 있다. 교원지위법 시행령은 교육 활동 침해를 당한 교사들에 대한 치료와 법률상담 등 보호 조치 마련을 교육감의 책임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교육감도 수사와 재판에 시달리는 교사들을 위해 변호사를 선임해주거나 법적 대응을 도와주지 않았다. 교육 활동 침해 실태 조사를 내놓은 교육감도 없었다. 교사들을 지키지 못하는 교육감은 교육의 자주성과 자치를 말할 자격이 없다.
국회에 계류된 개정안들은 대부분 기존 법률이나 시행령을 구체화한 수준이다. 아동학대 수사 시 교육감의 의견 제출 의무화 등 신설 규정이 눈에 띄기는 하지만 교권보호위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중복될 수 있다. 정상적인 교육 활동을 아동 학대로 보지 않는다고 규정하더라도 이를 판단하는 건 법원의 몫이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교사가 아동학대 신고를 당하거나, 학부모의 협박 혹은 악성 민원에 시달리면 교권보호위를 즉각 가동해야 한다. 교권보호위가 교육 활동 침해라고 판단했는데도 수사와 재판이 진행된다면 변호사 선임을 포함한 법적 대응과 회복 비용을 교육청이 책임져야 한다. 교권보호위 결정이 구속력은 없지만, 경찰과 검찰은 이를 반영해야 한다. 교권보호는 교육 당국의 의지와 역량에 달렸다.
전석운 논설위원 swc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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