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짓느니 벌금이 훨씬 싸다” 수년째 버티는 기업들

권민지 2023. 9. 13.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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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설치 미이행 사업장 27곳 공개
“이행강제금 최대 연 2억… 상향해야”


“어린이집은 소수의, 운 좋은 사람들이 누리는 복지다. (직장 어린이집을 설치하지 않으면) 벌금을 좀 내야 하지만, 벌금이 훨씬 싸다.”

인기 온라인플랫폼 무신사의 최영준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최근 직원과의 온라인 미팅에서 한 발언이다. 대기업 출신인 이 임원의 말은 외부로 공개됐고, 파장이 커지자 한문일 무신사 대표는 공개 사과했다.

직장 어린이집 설치를 미루는 기업은 비단 무신사뿐만이 아니다. 쿠팡과 컬리, 코스트코 등 대형 유통업체는 물론 한영회계법인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기업들은 직장 어린이집 설치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 벌금을 더 올려서 이런 기업들을 압박해야 할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뒷짐을 지고 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15~49세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0.7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압도적 최하위인 한국의 현주소다.

11년째 명단 공개에도 버티는 기업들

상시 여성 근로자가 300명 이상이거나 성별무관하게 상시근로자가 500명 이상의 기업은 직장 어린이집 설치가 의무다. 직장 어린이집을 설치하지 않고 지역 어린이집과 위탁 보육을 맺는 방법도 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명단이 공표된다. 평판이 저해될 것을 우려한 기업들이 설치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이라는 취지에서 제도가 도입됐다. 그러나 11년째 명단 공표에도 직장 어린이집을 설치하지 않고 버티는 기업들이 있다.


지난해 직장 어린이집을 설치하지 않아 명단이 공개된 사업장은 27곳이다. 사업장 기준이기 때문에 쿠팡은 물류센터 6곳의 이름을 올렸다. 코스트코, 컬리 등 대형 유통업체, 사교육 대기업 메가스터디와 에듀윌도 포함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 소유 기업 논란이 일었던 다스와 성공한 스타트업 토스도 직장 어린이집을 갖추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수년째 명단에 이름을 올린 상습 미이행 기업도 있다.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과 코스트코코리아는 2014년부터, 한영회계법인과 다스는 2015년부터 미이행 명단에 포함됐다.

이행강제금조차 내지 않아 수억대의 이행강제금이 누적된 곳도 있다.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6월 기준 이행강제금이 가장 많이 쌓인 곳은 다스였다. 다스는 8억원의 이행강제금을 내지 않았다. 삼정회계법인(6억원), 세진(4억원) 등도 수년간 직장 어린이집을 설치하지 않은 채 버티며 이행강제금도 납부하지 않았다.

버티는 게 이득, 복지부는 뒷짐


직장 어린이집 설치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지방자치단체장은 1년에 2회까지 이행 명령을 부과할 수 있다. 그럼에도 설치하지 않으면 1년에 2차례까지, 1회당 1억원 범위 내에서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다. 미설치 기간과 사유 등을 고려해 50%까지 가중 부과하는 것도 가능하다. 직장 어린이집 설치 의무 이행 실태조사에 응하지 않은 사업장에도 1억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어린이집 설치에 드는 비용보다 이행강제금이 더 적다. 무신사 사태에서 보듯 기업들은 전 국가적인 저출산 문제보다는 비용절감에 골몰하고 있다.

기업들의 변명은 다양하다. 지난해 복지부 실태조사 결과, 직장 어린이집 설치 의무 미이행 기업 116곳 중 54곳은 ‘장소 확보 어려움’을 미이행 사유로 꼽았다. 그 외 설치비용 부담(9곳), 운영 비용 부담(3곳) 등을 핑계로 댔다.

이에 이행강제금 납부로 어린이집 설치를 대신할 수 없도록 이행강제금을 상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일 합계출산율이 최저치를 갈아치우는 상황에서 육아 인프라 확대를 위한 기업의 노력을 촉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행강제금 상향은 논의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행강제금은 연 2회, 매회 최대 1억원까지 매길 수 있으며 다른 이행강제금에 비교해 낮진 않다”며 “이행강제금 상향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노충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12일 “누진적으로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등 기업이 부담을 느낄 수 있도록 상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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