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렬의 세계경제전망] 미·중 테크 전쟁 격렬해지고 공급망 재편 가속화 불가피

이상렬 2023. 9. 13.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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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의 새 스마트폰과 중국 정부 아이폰 사용 금지

이상렬 논설위원

미국과 중국의 테크(Tech) 전쟁이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달 말 중국 화웨이가 5G 스마트폰 ‘메이트60 프로’를 출시하면서다. 여기엔 중국 파운드리 업체 SMIC가 개발한 7나노미터(nmㆍ10억분의 1m)급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가 탑재됐다. 미국은 현재 14나노 이하인 첨단 제품을 중국에서 생산하지 못하도록 기술ㆍ장비 수출을 제한하고 있다. 중국이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첨단 반도체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때마침 중국이 정부 부처 공무원과 국영기업 직원에게 애플 아이폰 사용을 금지했다는 소식까지 더해졌다.

시점이 공교롭다. 화웨이의 ‘메이트60 프로’ 출시는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이 미ㆍ중 경제관계 회복을 위해 중국을 방문(8월 27~30일)하고 있는 시기에 이뤄졌다. 애플이 신제품 아이폰15 출시(9월 12일)를 앞둔 때이기도 했다. 미국의 대중 제재의 실효성 논란과 추가 제재, 애플의 중국 사업 변화 등 많은 것을 예고하는 사건이 동시에 터진 것이다.

미국의 제재를 받아 온 화웨이가 중국 반도체 제조업체 SMIC로부터 공급받은 7나노 칩을 탑재한 프리미엄 스마트폰 ‘메이트60 프로’를 출시했다. 지난달 30일 베이징 시내 한 쇼핑몰에서 중국 소비자들이 메이트60 프로 광고판 옆을 지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SMIC, 미국 제재 속 7나노 구현
규제 직전 DUV 장비 대거 구입
최첨단 칩 지속 개발은 어려워

애플 중국 의존도 더욱 낮출 듯
양국 정치가 강경 입장 뒷받침
후폭풍 피할 정교한 전략 필요

미국 제재 허점 파고든 기술 진전

화웨이 새 스마트폰에 적용된 반도체 기술이 미국의 제재를 뚫었는지는 따져볼 일이다. 미국 제재는 중국이 7나노 기술을 확보하지 못하게 장비 수출을 통제하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대만 TSMC의 7나노 공정엔 네덜란드 ASML이 독점 공급하는 극자외선(EUV) 노광(露光) 장비가 활용된다. EUV 장비는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에 회로를 그릴 때 사용된다. EUV 장비는 실제로 2019년 이래 중국에 수출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 단계 밑인 심자외선(DUV) 노광장비로도 7나노급 반도체 회로를 그릴 수 있다. 대신 여러 차례 작업이 필요하다. 2017년 대만 TSMC가 개발한 멀티 패터닝 기술이다. 반도체 전문가들은 SMIC가 노광 작업을 4번 이상 시행해 7나노급 공정을 구현한 것으로 파악한다. 미국은 DUV 장비 역시 중국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데 심혈을 기울였고, 네덜란드와 일본의 동참을 끌어냈다.

김영옥 기자

그러나 네덜란드의 수입규제는 내년부터 시행된다. 중국은 DUV 수입 장벽이 가동되기 전에 서둘러 움직였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은 올 1~7월 26억 달러 규모의 DUV 장비를 ASML에서 구매했다. 작년보다 약 65% 급증했다. 중국은 중고 DUV 장비도 대거 사들였다고 한다. 미국 제재는 신규 DUV에만 적용됐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의 7나노 성공은 미국 제재를 뚫었다기보다 규제의 허점을 파고든 측면이 강하다. 블룸버그 통신은 “화웨이의 칩은 미국의 규제가 구멍이 많긴 하지만, 쓸모 없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훨씬 더 심한 제재 부를 수도

DUV 방식엔 단점이 있다. 여러 차례 작업해야 하는 만큼 비용이 많이 든다. 수율도 현저하게 떨어진다.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SMIC의 7나노 공정 수율은 50% 아래다. 이래선 경제성이 없다. 중국 정부의 막대한 자금 지원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앞으로다. 현재 애플의 아이폰14엔 4나노 칩이 탑재돼있고, 최신형인 아이폰15는 3나노 칩을 활용한다. 외신들은 중국이 구형 장비로 생산할 수 있는 최대치를 5나노 칩으로 예상한다. 미국의 EUV 장비 통제가 계속되는 한 중국의 최첨단 칩 생산은 난제로 남게 된다.

규제의 허점이 드러난 만큼 향후 미국의 대응은 강경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마이크 갤러거 미 하원 미ㆍ중 전략경쟁특위 위원장은 지난 6일 “상무부는 화웨이와 SMIC에 대한 모든 기술 수출을 중단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작년 10월 내놓은 대중 첨단 반도체 기술 통제의 최종판을 준비하고 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화웨이의 이번 개발은 중국의 핵심 기술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현재보다 훨씬 심대한 제재를 촉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영옥 기자


아이폰 금지 확대 여부가 변수

아이폰 사용금지의 경우 중국이 공식 발표한 것은 아니다. 업무회의나 온라인 채팅방을 통해 지시가 내려왔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애플은 미국의 자부심이자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기업으로 꼽힌다. 비공식적이긴 해도 사용 금지의 파장은 작지 않다.

때마침 화웨이의 메이트60 프로가 출시된 것은 애플의 아성인 중국 고가폰 시장을 잠식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올 2분기 아이폰의 중국 출하량은 24%로 중국이 미국(21%)을 제치고 최대 아이폰 시장이 됐다(테크인사이트 추정). 비결은 프리미엄 폰이다. 2019년 미국이 화웨이에 취한 기술 수출 통제 조치의 최대 수혜기업이 애플이었다. 중국 내 600달러 이상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의 점유율은 2019년 56%에서 2022년 70%로 치솟았다. 반면 애플을 무섭게 따라붙었던 화웨이는 39%에서 11%로 급락했다. 이제 화웨이의 반격이 시작될 차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화웨이 신형 폰 때문에 아이폰 출하량이 1000만대가량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을 소개했다. 1000만대는 지난해 아이폰 전체 출하량의 약 4.5%에 달한다.

신재민 기자

아이폰 사용 금지가 민간으로 확대되면 애플이 입는 타격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미 그런 보도가 나오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국영기업 방문자에게 아이폰을 갖고 오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전했다. 다른 시각도 있다. 2021년 중국이 국영기업 직원의 미국 전기차 테슬라 이용을 금지했지만, 테슬라의 중국 비즈니스는 건재하다는 것이다. 중국의 극심한 경기 부진도 변수다. 애플 금지령이 생산 저하로 이어지면 가뜩이나 심각한 실업 문제를 더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아이폰을 생산하는 팍스콘 중국 공장에서만 120만 명 이상을 고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업들 ‘탈중국’ 움직임 가속할 듯

중국 사업 의존도를 낮추라는 애플 투자자의 압박은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애플은 지난해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아이폰14의 생산 거점 일부를 인도로 옮긴 바 있다. 생산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블룸버그는 “세계 곳곳에서 생산된 부품이 몇 곳의 거점 기지에서 조립되는 형태로 애플의 제조 방식이 바뀌고 있다”면서 “인도와 베트남이 새로운 생산기지로 부상했다”고 전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미국 기업들은 애플에 대한 중국의 압박을 유심히 보고 있다. 애플은 중국 정부와 관계가 좋았던 미국 기업 중 하나다. 애플이 불이익을 받는 상황이라면 다른 기업의 사업환경도 얼마든지 위태로워질 수 있다. “애플이 미국과 중국 사이의 총알을 피할 수 없다면 과연 누가 피할 수 있을까”라는 WSJ의 지적도 이런 의미다.

러몬드 미 상무장관이 중국 측에 집중적으로 제기한 것도 중국의 방첩법, 압수 수색 등 불투명한 조치에 대한 미국 기업들의 고충이었다. 그는 “미국 기업들로부터 중국은 투자가 불가능하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 시장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지난 2분기 49억 달러로 1년 전보다 87% 급감해 1998년 이래 최저치로 떨어졌다. 만약 미국 기업의 중국 이탈이 심각해지면 연쇄적인 공급망 재편으로 이어지게 된다.

미ㆍ중 기술 충돌의 역풍 차단해야

러몬드 장관의 방중 기간에 이뤄진 화웨이의 최신 스마트폰 출시와 아이폰 금지 사건은 현재로선 미ㆍ중이 적당한 선에서 테크 전쟁을 중단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양국의 정치 상황은 이 전쟁의 열기를 더 뜨겁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미국은 이미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꺾었다는 것은 바이든 행정부가 내세우는 업적이다. 중국 봉쇄의 필요성에 대해선 민주ㆍ공화 양당의 생각이 다르지 않다. 중국으로서도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올해 3연임에 성공했지만, 불황과 실업난에 따른 대중의 불만에 직면해있다. 미국의 봉쇄 속에 성취한 반도체 기술 고도화는 중국 내 애국심을 자극하는 반전 카드가 될 수 있다. 2024년 1월 대만 총통 선거가 예정된 점도 중국 내부의 강경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로이터는 “전반적인 미ㆍ중 간 테크 전쟁은 한층 격화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미ㆍ중의 충돌과 공급망 개편은 한국 경제에 복잡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당장 삼성과 SK하이닉스 중국 공장이 문제다. 미 정부는 지난해 10월 중국 반도체 공장에 장비 판매를 금지하면서 한국 기업에 대해 1년간 예외를 인정했다. 당시 “중국에서 삼성과 SK 공장이 계속 가동되는 것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고려가 작용했다. SMIC의 7나노 공정 구현이 이런 인식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한국으로선 미ㆍ중 충돌의 후폭풍에 대한 정교한 전략 수립이 시급해졌다.

이상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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