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영 스님의 마음 읽기] 네 명의 아내를 둔 남자

2023. 9. 13. 00:1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원영 스님 청룡암 주지

저녁 무렵, 문을 조금 열어두고 책을 보는데, 불빛 따라 들어왔는지 어디서 왕파리 한 마리가 들어와 나가는 문을 못 찾고 이리저리 헤매고 왕왕거렸다. 어찌나 사납게 돌아다니는지 내 정신까지 시끄럽게 만들었다. 마침 『화엄경』 강의 준비를 하고 있다가 이 광경을 보노라니, 옛 선사 말씀이 떠오른다. “열린 문으로 나가려 하지 않고, 닫힌 문에만 부딪치니 심히 어리석구나. 백 년 동안 옛 책만 보고 있으니, 어느 날에나 벗어날 것인가.” 『화엄경』을 보던 은사 스님에게 제자가 한 말인지라 떠올리고는 피식 웃음이 났다. 그래, 현재를 보지 않고 옛 종이만 들여다봐서야 되겠는가.

「 ‘육체·재산·친족·업보’란 굴레
어디 가나 늘 함께하는 건 업보
인간의 격은 행위에 의해 결정

김지윤 기자

요사이 나는 그간 둔감했던 자신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고 있다. 자기 자신은 본인이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더러는 남이 더 잘 알아챈다. 적어도 스스로 외면한 부분에 한해서는 그런 것 같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은 뜻밖의 곳에서 만났다. 묵묵히 앉아서 참선한다거나 경을 읽는다거나 삼천 배를 해서 터득한 것이 아니다. 요즘 나를 괴롭히는 갱년기 증상 때문에 방편을 모색하다가 한 선생님을 알게 되었는데, 그분과의 대화가 뜻밖에도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평소 남의 이야기만 주로 들어주며 그럴듯하게 조언하고 토닥여주는 것이 나의 일인데, 정작 본인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쏟아낸 것은 처음 있는 일이어서 꽤 어색했다. 어머니 뱃속에 들어앉은 후부터 생긴 일, 이를테면 어머니가 나를 지우고 싶어서 행했던 지독한 방법 같은 케케묵은 옛날 일부터 성장하면서 벌어진 일, 출가 인연 등을 꿈과 함께 풀어내며 많은 부분이 이해되었다.

지장보살님 전에 어머니를 위해 초를 밝히며, 문득 바리데기처럼 살아남은 자신을 생각했다. 바리데기의 부모는 혹시라도 딸이 살아날까 봐 여름에는 솜바지를 입혀 땡볕에 내어놓고, 겨울에는 삼베옷을 입혀 음지에 두었단다. 하지만 학들이 내려와 아이를 보호해 주어 아이는 생명을 이어갔다는 설화 속 인물이다. 예전에는 자식을 없애려 했던 어머니 마음이 이해가 안 갔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 그 심경이야 오죽했을까 싶다. 그 모든 것이 나의 업보 아니겠는가.

『잡아함경』에 ‘네 명의 아내를 둔 남자’ 이야기가 나온다. 남자는 첫째 부인을 두어 아끼고 사랑하며 뭐든 챙겨주었다. 그러다 둘째 부인을 알게 되었는데, 둘째 부인은 남들도 너무나 탐을 내는지라 치열하게 경쟁하여 어렵게 얻었다. 그래서인지 둘째 부인과 함께 있으면 늘 든든하고 자신감이 넘쳤다. 경쟁에 지친 남자는 셋째 부인도 좋아하여 자주 어울렸다. 셋째 부인은 자신과 성향이 비슷해서 뜻이 잘 맞았다. 넷째 부인은 순종적인 태도로 자신을 잘 따랐다. 하지만 남자는 이상하게도 넷째 부인이 싫었다. 그는 아내를 무시하며 잡일이나 시켰다.

세월이 흐른 뒤, 남자는 먼 길을 떠나게 되었다. 누구와 함께 떠날까. 남자는 먼저 첫째 부인에게 말했다. 그런데 첫째 부인은 냉정하게 거절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함께할 거라 믿었던 아내가 그리 차갑게 거절하니 남편은 충격이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둘째 부인에게 가서 청했다. 얼마나 어렵게 얻은 아내인데, 이번에는 같이 가겠지 싶어 내심 기대했던 터다. 그러나 둘째 부인은 더 단호하게 말했다. 첫째 부인도 안 가는데, 자신이 왜 따라가느냐며.

상심한 남자는 셋째 부인에게 갔다. 셋째 부인은 다정하게 위로하며 먼 길은 같이 못 가지만, 문밖까지는 배웅해주겠노라고 했다. 씁쓸한 마음으로 남자는 평소 아끼지 않던 넷째 부인에게 가서 같이 가겠느냐고 겸연쩍게 물었다. 그랬더니 “당신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따라가겠습니다” 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넷째 부인과 함께 먼 길을 떠나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부처님의 비유 설법이다. 우선 남자는 한 인간을 말한다. 네 명의 아내는 각각 ‘육체, 재산, 친족, 업보’를 가리킨다. ‘먼 길’은 말 그대로 머나먼 ‘저승길’이다. 풀어서 다시 정리하면 이러하다.

인간에게는 네 명의 배우자가 있어 저승길도 함께 가고자 한다. 하지만 저승길에 첫째 ‘육신’은 절대 함께 갈 수 없다. 호흡이 멈추면 그뿐이다. 둘째 치열하게 모은 ‘재산’ 또한 한 푼도 가져갈 수 없다. 사망과 동시에 다른 이의 소유가 된다. 셋째 ‘친족’은 장례를 치르며 눈물을 흘리지만 함께 가지는 못한다. 그러나 넷째 내가 무시하던 ‘업보’는 어딜 가든 따라온다. 이것이 바로 우리네 인생사다.

젊은 날은 바람처럼 지나갔다. 어떻게 살지도 안다. 그러나 마음먹은 대로 안 된다. 모든 것이 자신이 쌓아온 업보 때문이다. 불교는 “출생을 묻지 말고 행위를 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간의 격은 출생이 아니라 행위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잊지 말자. 말과 행동이 사람을 만든다.

원영 스님 청룡암 주지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