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오세훈표 ‘무제한 이용권’…돈과 경기·인천 동참이 관건
독일에선 한 달에 49유로(약 7만원)만 내면 버스와 전철, 트램, 지역철도 등 대중교통을 무제한으로 탈 수 있는 ‘도이칠란트 티켓(D티켓)’이 인기다. 지난해 6월~8월 한시적으로 도입했던 ‘9유로 티켓’의 후속편으로 소비자 부담 완화와 대중교통 이용 증대가 목적이다.
내년 1월이면 서울에도 유사한 대중교통 무제한 이용권이 등장한다. 서울시가 월 6만5000원만 내면 서울 시내버스와 마을버스, 지하철, 따릉이(공공자전거)를 횟수 제한 없이 이용 가능한 ‘기후동행카드’를 내놓기로 했다. 5개월간 시범운영을 거쳐 하반기에 본격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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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 6만5000원 버스·지하철카드
서민 부담 경감, 온실가스 감축
연간 추가 지원금 2000억 필요
경기·인천 빠져 효과 줄어들어
」
계속 늘어나는 자가용 이용률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기후통행카드를 통해 코로나19로 줄어든 대중교통 수단분담률을 끌어올리고, 기후 위기 대응의 단초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서울의 대중교통 수단분담률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엔 65%를 넘었지만 2021년엔 53%까지 떨어졌다. 대신 자가용 이용률이 24.5%에서 38.0%로 치솟았다. 대중교통 수단분담률은 버스·지하철 등이 전체 여객수송에서 차지하는 비율이다.
무제한 이용권 출시를 통해 요금 부담을 낮추면 자가용 이용자들이 차를 포기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버스와 지하철을 선택할 거란 기대가 담긴 셈이다. 서울시는 기후동행카드를 출시하면 승용차 이용 대수가 연간 1만3000대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도 그만큼 감소한다.
김동선 대진대 스마트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파급력 있는 정책으로 대중교통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서울은 버스전용차로와 지하철망 등 대중교통 인프라가 어느 정도 구축이 되어 있기 때문에 더 효율적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기후동행카드가 성공하려면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우선 기존에 버스와 지하철에 투입하는 지원금 외에 추가로 들어가야 하는 돈이 문제다. 서울시는 내년 1월~5월 시범운영 기간에 필요한 재원을 750억원으로 잡고 있다. 한 달에 150억원씩이다. 이는 한 달에 대중교통 요금으로 9만원 이상을 쓰는 시민 90만 명 중 약 50만 명이 무제한 이용권을 구매할 거란 예상에서 나온 수치다.
산술적으로 1인당 3만원 정도인 차액을 메워준다고 하면 월 150억원이 나온다. 그런데 이를 연간으로 따지면 1800억원이다. 게다가 무제한 이용에 따라 탑승 횟수가 더 늘고, 구매자도 증가한다면 손실은 더 커지게 된다. 한해 2000억원을 훌쩍 넘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일단 서울시는 시와 운영기관(버스, 지하철)이 절반씩 나눠서 부담하겠다는 방침이다. 손실지원금이 2000억원이라면 시가 1000억원을 담당하고 나머지 1000억원은 버스회사와 서울교통공사가 책임지라는 얘기다. 윤종장 서울시 교통도시교통실장은 “버스와 지하철 요금을 인상했기 때문에 그에 따른 수입증대분 중 일부를 시민에게 돌려주자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당장 버스업계에서는 불만의 소리가 나온다. 한 버스업체 대표는 “운송수입 전체를 시에서 관리하고, 버스회사에는 정해진 규정에 따른 운영비만 지급하는 준공영제에서는 요금 인상으로 버스회사의 수입이 늘어나는 효과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한해 1조원 가까운 운영손실을 기록하는 서울교통공사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지속가능한 재원마련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준호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재정부담에 대해서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문제가 많이 생길 것”이라며 “근본적으로 지속가능한 대중교통 운영을 위한 재원조달 방안 마련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수도권통합환승할인제를 공동 시행하는 상황에서 경기도와 인천시가 빠진 것도 문제다. 이 때문에 경기버스와 인천버스, 서울 권역 외 도시철도 등에선 기후동행카드를 쓸 수 없다. 또 서울 바깥 지역에서 승차해 서울 시내에서 하차한 경우도 사용 불가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 7일에서야 경기도·인천시·코레일과 무제한 이용권 도입에 대한 회의를 가졌지만 별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서울시의 기후동행카드 도입 발표에 대해 경기도와 인천시가 유감을 표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가뜩이나 서울과 주변 도시 간에 통근전쟁이 심각한 상황에서 서울시민만 무제한 이용권 혜택을 보게 되면 경기도와 인천시 주민의 소외감이 더 커질 거란 우려도 나온다.
정부가 대중교통 이용 촉진을 위해 내년 7월 도입하려는 ‘K패스’ 사업과 기후동행카드가 충돌한다는 지적도 있다. K패스 사업은 일정 횟수 이상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요금 가운데 20~53%를 환급해주는 방식이다. 반면 기후동행카드는 무제한 이용으로 혜택이 더 크기 때문에 K패스의 보급과 효과를 상대적으로 위축시킬 거란 얘기다.
정부가 추진 중인 ‘K패스’와 충돌
K패스 사업을 추진 중인 국토교통부에선 볼멘소리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고위 관계자는 “사전에 아무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무제한 이용권 도입을 발표하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동규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비록 형태는 다르더라도 대중교통 이용을 늘리기 위한 취지는 같기 때문에 두 사업을 유기적으로 연결할 방안을 찾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자가용 대신 버스·지하철을 더 이용하게 되면 도로 혼잡이 줄고, 온실가스 배출도 감소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목표로 추진했던 정책이 무위에 그친 사례도 적지 않다. 박동주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우리 대중교통요금이 현재도 매우 저렴하기 때문에 기존 승용차 이용자가 기후동행카드를 쓰기 위해 버스나 지하철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해당 사업을 둘러싼 여러 우려 사항을 다시 한번 짚어보고, 효과를 더 높일 방안을 찾아야만 하는 이유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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