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의 생활의 발견] 깊은 밤 어디 돌 끓는 소리 들렸으랴
일하고 있는 출판사에서 10여 년 만에 신작 산문을 내는 작가가 있어 그 책의 판촉 일환으로 증정용 굿즈 고민을 하며 여름 끝자락을 보냈다. 코로나로 집에 콕 박힌 채 머물러야 했던 지난 몇 년 동안 의도치 않게 작가가 마주하게 된 집안 곳곳 물건에 얽힌 추억담이 주된 내용인데 묘하게도 편집하는 내내 내 집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시절 살짝 기운 테이블 상판 좀 봐달라는 말에 인테리어 호황이라며 근 두 달이 지나서야 방문한 업자의 변명은 믿거나 말거나였으나 지금 와 되씹어보니 신빙성이 없는 것만도 않아 보였다. “술 약속 못 잡고 해외여행 못 가니까 어쩔 수 없이 내 집 들여다보는 데 시간을 쓰는 거죠. 내 집 모난 데가 보이니 이때다 하고 집들 고치는 거죠.”
그러니까 시간을 쓴다는 말 말이다, 그렇게 제각각의 시차가 공존하는 굿즈 말이다, 하여 골라든 것이 돌이었다. 7년 전 이사하면서 내 집 옥상에 들인 돌, 그 연차만큼의 사계절을 함께 겪은 돌, 어느 하나 같은 생김 없이 죄 다른 돌, 그 돌을 누군가에게 주고자 쪼그리고 앉아 고르자니 돌과 돌 사이 어떤 새의 깃털도 골라낼 수 있었고, 어딘가에서 날아든 껌종이도 주울 수 있었고, 앞뒤가 거의 해진 십원짜리 동전 몇 개도 집어 들 수 있었다. 주울 때의 설렘을 알게 하고 버릴 때의 죄책감을 알게 하는 돌, 이 가운데 들었다 놨다 딱 하나를 고를 때 그 신중함의 뒷배는 사랑이라는 진심이라 하겠지.
빨간 대야에 모아 수십 번 헹군 돌을 곰솥에 넣고 팔팔 끓였다. 돌 끓는 소리가 묘해 한 화가에게 들려줬더니 사골 끓는 소리가 아니냐며 반문해왔다. “그래요, 돌은 또 흙의 뼈가 아니겠는지요.” 끓인 돌을 식힌 뒤 찬물에 씻어 의류건조기에 털고는 헤어드라이어에 말려 물티슈로 닦기를 마지막으로 굿즈용 돌을 완성했다. 내게 돌 씻는 법을 알려준 이가 없으니 나는 그저 돌에 들인 내 시간을 믿을 수밖에.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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