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의 저금리 시대 SAD GOODBYE… 재테크 전략부터 바꿔야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3. 9. 12.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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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금리’ 꿈틀…5%가 뉴노멀 되나
ROE 낮고 부채 많은 기업 ‘서든데스’

2020년 3월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연 1.25%에서 0.75%로 전격 인하하는 ‘빅컷’을 단행했다. 대한민국 역사상 기준금리 0%대는 처음이었다. 선진국형 경제로 들어서고 성장 활력이 떨어지며 금리가 내리막길을 걷게 됐다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제로금리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며 모두가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은 예견된 미래를 바꿔버렸다. 주요국이 무너진 경제 살리기에 나서며 금리가 폭등한 것이다. 특히 미국은 2022년 3월부터 올 7월 말까지 기준금리를 무려 5.25%포인트나 올리며 금리 인상을 주도했다. 현재로서는 미국이 끌어올린 고금리가 금방 낮아지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향후 금리 정책에 대해 “신중하게 결정하겠다”는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연설은 ‘고금리 장기화’로 해석된다. 기준금리를 더 이상 인상하지는 않더라도 인하에 돌입하는 시점이 멀어졌다는 데 의견이 모아진다. 고금리가 ‘뉴노멀(New normal)’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의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연준이 금리를 22년 만에 최고치로 인상했음에도 경제는 놀라울 정도로 탄력적”이라며 “일부 경제학자들은 향후 인플레이션이 연준 목표치인 2%로 회복하더라도 금리가 2020년 이전의 낮은 수준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고 분석했다.

2020년대 4~5%대 금리가 ‘뉴노멀’로 자리 잡을지 세계 금융권에서 ‘실질 중립금리’를 둘러싼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중립금리는 경제가 과열되거나 침체되지 않고 잠재성장률을 달성하도록 하는 금리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이상적인 금리’다. 실질 중립금리는 명목 중립금리에서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뺀 것을 뜻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준금리를 수차례 올렸지만 미국의 소비, 고용이 좀처럼 냉각 기미를 보이지 않자 실질 중립금리가 상승하고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경제 구조적 요인의 변화로 실질 중립금리가 높아지면 인플레이션율이 각국 중앙은행의 목표치인 2%로 떨어지더라도 이상적인 경제를 가능케 하는 금리 수준이 4~5%대가 된다는 의미다. 매경이코노미 취재에 응한 국내 주요 대학 경제학과 교수와 주요 증권사 이코노미스트 상당수도 미국은 물론 한국의 실질 중립금리가 상향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실질 중립금리의 상승은 산업계의 풍경과 투자 전략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전망이다.

실질 중립금리는 각국 중앙은행 정책금리의 적정성을 판단하는 잣대로 작용한다. 현실 세계에서 관찰할 수 있는 금리는 아니지만 각국 중앙은행이 고용과 소비 등 실물경제 동향을 살피며 정책금리를 결정할 때 판단의 근거로 쓰인다. 가령, 실질 정책금리(정책금리-물가 상승률)가 실질 중립금리를 웃돌면 통화 긴축 상태로, 밑돌 경우에는 통화 완화 상태로 평가된다. 기준금리가 특정 시점의 물가 상승률보다 0.5% 이상 높다면 이는 긴축적인 금리 수준이 되는 구조다. 실질 중립금리가 높아지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더 올려야 한다는 의미다.

중립금리 상승론 주목

연준 내부서도 목소리

현재 연준은 인플레이션 목표치 2%를 감안한 장기 명목 중립금리를 2.5%로, 실질 중립금리를 0.5%로 추정한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연준이 추정하는 실질 중립금리는 1980년대 3%대, 1990년대 2%대를 보였다. 실질 중립금리는 2000년대 들어 급락했다가 2012~2018년 당시에는 저성장 기조가 심화하면서 0.1~0.2%대까지 떨어졌다. 당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구조적 장기 침체(Secular Stagnation)’의 암흑기를 지나던 때다.

최근 세계 금융권에서는 실질 중립금리 상승론을 부르짖는 주장이 하나둘 등장해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미 연준이 고강도 긴축을 단행했음에도 소비, 고용이 식지 않고 근원물가 역시 좀처럼 제자리를 찾지 못하자 경제 체질의 구조적 변화가 진행 중인지 들여다보자는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명예교수가 실질 중립금리 상승 가능성에 불을 지핀 데 이어 연준의 ‘비공식 대변인’으로 불리는 닉 티미라오스(Nick Timiraos)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도 실질 중립금리 상승론에 힘을 싣는 기사를 실었다. 최근 WSJ는 실질 중립금리의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율이 2%로 떨어져도 연준의 기준금리가 상당 기간 4%대를 유지할 수 있다고 전망했는데, 금융권에서는 여기에 연준 내부의 내밀한 기류가 반영됐다는 시각이 대체적이다.

이뿐 아니다. 뱅가드투자전략그룹은 최근 보고서에서 실질 중립금리가 기존 0.5%에서 현재 1.5%로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뱅가드 측은 “높아진 실질 중립금리로 내년 말까지 기준금리가 5% 이상, 장기적으로는 3.5%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는 연준이 올 6월 경제전망요약(SEP)에서 제시한 내년 말 4.6%, 장기 금리 전망치 2.5%보다 더 높은 수준이다.

연준 내부에서도 실질 중립금리가 높아졌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리치몬드연방준비은행은 올 1분기 실질 중립금리가 0.5%가 아니라 2%라고 봤다. 댈러스연방준비은행 역시 올 7월 공개한 보고서에서 지난 1분기 실질 중립금리를 1.1%라고 분석했다. 이런 주장들을 고려하면, 인플레이션율이 연준의 목표치인 2%로 내려오더라도 잠재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는 이상적인 금리 수준이 4% 정도 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미국 경제가 억눌렸던 여행 수요 회복 덕에 올여름 완만한 성장세를 보였다고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평가했다. 강도 높은 긴축에도 소비, 고용 시장이 좀처럼 식지 않자 실질 중립금리 상승 논쟁이 뜨겁다. 사진은 텍사스주 오스틴-버그스트롬 국제공항의 관광객들. (AFP)
재정 지출 확대로 금리↑

한국도 중립금리 1.5%대

실질 중립금리를 밀어 올리는 핵심 요인은 코로나19 국면을 전후해 실시된 완화적인 재정 정책이다. 정부가 자금 조달을 위해 국채를 찍어내면 채권 시장에서 국채 공급이 늘고 이는 시장의 자금을 빨아들여 금리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

미국 정부는 코로나 국면을 전후해 탈탄소와 첨단 산업 분야 등을 중심으로 전례 없는 수준의 재정 부양책을 시행했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수지 비율은 2020년, 2021년 각각 -14.9%, -11.9%로, 2차 세계대전 직후였던 1945년 -20.9% 이후 가장 큰 폭의 재정 적자 비율을 보였다. 2022년에는 미국 정부 재정 적자 비율이 다소 줄었으나 과거 금리 인상기에 견줘 여전히 완화적인 기조라는 게 전문가 진단이다.

국제통화기금(IMF)도 기본 전망 시나리오에서는 팬데믹 이전의 낮은 실질 중립금리 수준으로 회귀하는 상황을 가정했지만 정부 부채의 지속적인 증가, 탈세계화 추세, 기후 대응 투자 확대 등의 경우에는 실질 중립금리가 약 1.2%(120bp)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2000년대 이후 미국 등 선진국 실질 중립금리의 하락을 주도한 것으로 평가받는 생산성 둔화, 인구 구조 변화(고령화), 글로벌 과잉 저축 등의 영향력이 점차 힘을 잃는 것도 실질 중립금리를 밀어 올리는 요인으로 평가된다(국제금융센터).

정리하면, 과잉 저축 완화 등으로 자본 공급이 감소하는 반면, 정부가 탈탄소와 첨단 산업 등에 재정 지출을 늘리려 국채를 찍어대면 이는 자금 수요 증가로 이어져 실질 중립금리가 장기적으로 상승할 수 있다는 논리다.

우리 경제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실질 중립금리의 하락을 주도했던 과잉 저축, 인구 구조 변화 등의 영향력이 점차 완화되는 가운데 재정 지출이 늘고 있어서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재 한국의 실질 중립금리는 1.5%대로 평가되며 올해 말 또는 내년까지 금리가 하향세로 돌아가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실질 중립금리가 코로나 이전 수준처럼 낮아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며 “고령층이 늘면 저축이 증가해 자본 공급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고령화가 더욱 진행돼 후기 고령층이 많아지면 의료비 등 소비 지출 증가로 저축이 다시 감소할 수 있으며 정부 지출의 불가피한 증가에 따른 효과가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 구조 변화 가속

금융업 ‘금리 쇼크’ 덮쳐

고금리가 뉴노멀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산업 구조의 변화도 불가피하다.

무엇보다 고금리가 산업 구석구석을 파고들며 기술 혁신이 집중되는 산업을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높은 자금 조달 비용으로 인해 수익성이 높은 투자로 자금이 재분배되면서 생산성이 증가하는 구조로 변화된다는 것이다. 반면, 자기자본이익률(ROE) 5% 미만 업종에서는 ‘서든데스(Sudden Death)’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무위험 이자율이 4~5%인 세상에서 ROE가 이를 밑도는 업종으로는 금융이 투입되기 힘들다.

금리에 가장 민감한 금융 산업 재편도 가속화할 전망이다. 대표적인 업종이 비용이 많이 드는 멀티매니저 시스템 기반의 헤지펀드 산업이다. 고금리 시대가 도래하면서 차입 비용이 급증하자 지속 가능성에 의구심을 갖는 시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현금을 묵혀두는 것에 대한 고객 기회비용이 증가한다는 것이 헤지펀드 업계의 고민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단기 자금을 맡기는 머니마켓펀드(MMF)에만 넣어놔도 4~5%의 무위험 수익을 기대할 수 있어 자산가들이 헤지펀드 익스포저(Exposure)를 줄이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전했다.

투자 전략도 새판을 짜야 한다. 높은 금리 수준이 길어지면 레버리지가 많은 산업보다 적은 산업이 선호될 가능성이 높다. 금리가 완연한 하락세로 방향을 바꾸기 전까지는 부채를 줄여놓은 산업과 기업에 선별적으로 투자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한화투자증권은 부채가 감소하며 구조조정이 완료된 업종으로 조선·운송·기계를,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업종으로 화장품 등 중국 소비주를 꼽았다. 같은 업종에서도 부채 비중에 따른 옥석 가리기가 필수적이다.

가령, 건설 업종에서는 최근 수년간 이어진 주택 시장 호황을 타고 부채를 큰 폭 늘렸는데, 현대건설은 부채를 지속적으로 줄여왔다. 올 상반기 별도 기준 현대건설의 순차입금은 마이너스(-) 2623억원으로 2016년 이후 무차입 경영을 유지하고 있다. 총 차입금은 2조890억원, 현금성 자산은 2조3463억원이다. 전방 산업 침체로 현대건설 주가도 올 들어 10%가량 떨어졌지만 다른 건설사 대비 낙폭은 작다.

금융 상품 투자 패러다임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위험자산인 주식 자체의 상대적 매력도가 떨어지면서 단기간 자금을 맡기고도 약간의 수익을 낼 수 있는 ‘파킹형’ 금융상품으로 돈이 몰리는 것이 단적인 예다. 채권 투자는 높아진 금리로 인컴을 취하는 단기물과 중장기 자본 차익을 고려한 장기물을 적절히 분산하는 ‘바벨 전략’이 유효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6호 (2023.09.13~2023.09.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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