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브란트·만델라의 용서와 화해, 통합의 축복 선물했다"

성지원 2023. 9. 12.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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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통합. 아시아ㆍ유럽ㆍ아프리카의 세 지도자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빌리 브란트 전 독일(서독) 총리,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을 하나로 묶는 키워드다. 브란트 전 총리는 나치즘에 맞선 뒤 동ㆍ서독 분단 극복에 앞장섰고, 만델라 전 대통령은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폐지를 이끌었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 투쟁을 거쳐 취임 후 햇볕정책을 통해 남북 대화를 추진했다. 세 사람은 각각 1971년(브란트), 1993년(만델라), 2000년(김대중)에 이 같은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1989년 내한한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가운데)가 당시 평민당 총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왼쪽)과 박준규 당시 민정당 총재와 악수를 나누며 환담하고 있다. 브란트 전 총리는 김 전 대통령이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을 당시 유럽 지도자들에게 서한을 보내 김 전 대통령의 구명운동을 펼쳤다. 중앙포토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1년 3월 12일 저녁 방한한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환영 만찬에서 건배를 하고있다. 중앙포토

정치와 생애가 닮은 세 지도자를 함께 회고하는 국제학술대회가 12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 호텔에서 열렸다. 연세대 인간평화와 치유연구센터가 주최한 이번 행사는 2024년 김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개최됐다. 센터 소장인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개회사에서 “김대중, 브란트, 만델라는 개인적 차원에서의 한없는 용서와 관용이 사회적인 차원에서 어떻게 인권과 민주주의, 화해와 평화와 통합을 넓히는지를 보여줬다”며 “다음 세대에게 이 세 분이 던지는 영혼과 삶의 메시지를 잘 갈무리해서 넘겨줄 수만 있다면 조금 더 나은, 더 평안한, 청년들이 희망을 갖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세 사람의 삶을 관통하는 대표적 메시지로 “통합”을 꼽았다. 정적과 반대세력으로부터 오랜 정치적 탄압을 받았음에도 정권을 잡은 후 이들을 용서ㆍ협력했다는 점이 조명받았다. 김 전 대통령은 군부정권 2인자였던 김종필 전 총리와 연합정부를 구성하고 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건의했다. 사민당 소속 브란트 전 총리는 나치 출신이 다수 소속된 기독민주연합과 대연정을 구축했다. 만델라 전 대통령은 취임 후 흑인, 백인, 혼혈계 인사들로 통합정부를 꾸리고 진실과 화해위원회를 구성했다.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은 축사에서 “세 분은 최초의 연합 정부, 대연정, 흑백 통합 정부를 수립했다. 민주주의의 차원을 높였고 남북 화해, 독일 통일, 남아공 갈등 해소에 선구적 역할을 했다”며 “평화에 도달하기 위한 통합은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까지 아우르는 경청과 화쟁의 미덕을 발휘해야 이룰 수 있다. 세 사람의 삶은 범부의 상상을 초월하는 용서와 화해로 통합과 평화의 축복을 선물했다”고 말했다. 홍 회장은 또 “이타적 실천으로 가득한 세 분의 삶은 위태로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성찰과 각성의 울림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이 12일 오전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평화와 통합의 세계 지도자 김대중.브란트.만델라'를 주제로 한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참석자들은 특히 최근 국제사회가 직면한 복합적 위기에 이들의 삶이 던지는 울림이 크다고 평가했다.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은 축사에서 “초연결의 지구촌 사회에서 81억명의 인구가 중첩된 위기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이익을 챙기는 지도자는 많아도 인류 공통의 가치를 실현하는 지도자는 실로 드물다. 이로 인해 세계적으로 당파적 극한 분열과 대립, 포퓰리즘이 득세하고 있다”며 “우리가 오늘 세 분 지도자의 리더십과 그 적을 기리는 것은 이 위험한 사태를 슬기롭게 건너갈 길을 찾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축사를 통해 “기후변화, 대전염병, 불평등 등 인류가 함께 풀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평화와 통합의, 세기의 지도자의 발자취를 세심히 살펴야 할 때”라고 진단했다.

이날 기조연설에선 브란트 전 총리의 동방정책과 김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 등 ‘평화’를 중점에 둔 정치의 중요성도 강조됐다. 존 던 케임브리지대 명예교수는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마리우폴과 바흐무트, 미얀마 로힝야족의 탈출 등 전세계 곳곳에서 바로 지금 평화가 절실하고 시급하다는 걸 알 수 있다”며 “지속가능한 평화를 만드는 건 중차대하고 무거운 정치적 과제지만, 그보다 더 큰 보상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던 교수는 “무엇보다 국민은 용감하고 인내심 있어야 하고 지성적이어야 한다. 서로 함께하면서 더 나은 방식을 찾아나가야 한다”며 평화를 위해서 지도자뿐만 아니라 국민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평화와 통합의 세계 지도자 김대중.브란트.만델라'를 주제로 한 국제학술회의가 12일 오전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에서 열렸다. 이날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12일 오전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김대중 탄생 100주년 기념 '평화와 통합의 세계 지도자 김대중·브란트·만델라' 국제학술회의에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넬슨 만델라 재단 베른 해리스 대표와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어진 세 개의 세션에선 각각 만델라ㆍ브란트ㆍ김대중의 리더십에 대한 구체적 분석이 이뤄졌다. 베른 해리스 넬슨만델라재단 대표는 “만델라로부터 배운 삶의 교훈은 희망만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고, 신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올바른 투쟁을 하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베르너 페히니 전 베를린 자유대 교수는 “감히 나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원한다”는 브란트 전 총리의 발언을 인용하며 “브란트는 반대가 아니라 공존, 부분적 협력, 동서 결합이 가능하다는 것을 믿었다”고 말했다. 임혁백 고려대 정치학과 교수는 3세션 발표에서 “김 전 대통령은 변혁적이고 소통하는 리더십, 인내와 연민, 포용과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이날 세 사람의 생전 인연도 재조명됐다. 김 전 대통령은 자서전을 통해 자신이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을 당시 브란트 전 총리가 구명운동을 펼친 일을 회상하며 “나는 그에게 평생 신세만 졌다”고 썼다. 또 만델라 전 대통령으로부터 그가 수감 중 찼던 손목시계를 선물 받은 일 등을 회상하며 “우리는 불의 앞에서는 함께 투사였고, 평화 앞에서는 함께 사도였다”고 썼다.

박명림 교수는 “브란트 탄생 100주년(2013년)에 구상했고, 만델라 탄생 100주년(2018년)에 (학자들이) 함께 모여 공동연구를 시작했다”며 “내년 김대중 탄생 100주년에 세 분에 대한 공동 연구를 영어와 한국어로 출간할 것”이라고 말했다.

■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 축사(전문)

「 안녕하십니까. 멀리서 오신 빌리브란트 재단의 볼프람 호펜슈테트 소장, 넬슨 만델라 재단의 베른 해리스 대표, 행사를 준비하신 박명림 연세대 교수에게 감사드립니다.

오늘날 세계는 민주주의의 후퇴, 미‧중 갈등 악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라는 복합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한반도에서는 북한 핵이 날로 고도화되고, 남북·북미 관계가 단절된 상태입니다. 비핵 평화의 해법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 내부는 여와 야, 보수와 진보의 진영 갈등이 최악의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대화는 사라졌고, 그 어떤 정치적 합의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국내적으로는 통합, 국제적으로는 평화가 이 시대의 절실한 과제입니다. 통합을 이룬 나라만이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고, 공존‧번영할 수 있습니다. 오늘 20세기의 세 거인(巨人)인 한국의 김대중 전 대통령, 독일의 빌리 브란트 전 총리,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생애와 현재적 가치를 생각하는 자리를 갖는 이유일 것입니다.

세 분은 최초의 연합정부· 대연정· 흑백통합정부를 수립했습니다. 민주주의의 차원을 높였고, 남북화해‧독일통일‧남아공 갈등 해소에 선구적 역할을 했습니다. 아시아‧유럽‧아프리카의 경계를 넘어 인류 평화에 기여했습니다. 아주 오랜 세월동안 한 인간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차별과 억압, 고통을 당하고도 꿋꿋하게 일어난 초인들이었습니다. 최고 지도자가 된 뒤에는 복수와 징벌 대신 용서와 화해, 공존으로 국내 통합과 세계 평화의 길을 활짝 열었습니다.

김대중과 브란트는 평생 서로를 존경하고 아꼈던 각별한 사이였습니다. 브란트는 1980년 김대중이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구명(救命)에 앞장섰습니다. 1987년 사민당 의원 73명의 서명을 받아 김대중의 노벨평화상 추천서를 한림원에 제출했습니다. 김대중은 “나는 그에게 평생 신세만 졌다. 이국 땅에서 서로 떨어져 살았지만, 어떻게 그렇게 자연스레 교감을 할 수 있었는지 돌아보면 신기할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나치와 싸웠던 브란트는 노르웨이 망명시절 추적을 피하기 위해 본명인 '프롬' 을 버렸고, 이후 '브란트'로 살았던 파란만장한 역정의 주인공입니다. 그러나 1966년 나치 선전부 간부 출신 키징어를 총리로 하는 독일 최초의 대연정에 참여해 부총리겸 외무장관으로 일했습니다.

그는 동독을 고립시키기 위한, “동독과 수교한 나라와는 수교하지 않는다”는 할슈타인 원칙을 깼습니다. 이를 용인해준 사람이 키징어 총리입니다. 동유럽 국가와의 관계개선을 통해서 유럽을 하나의 공동체로 엮고, 그 속에서 선택권을 넓혀 궁극적으로 통일을 이끌어낸 원대한 구상인 동방정책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저는 “공존은 생존을 위한 유일한 기회”라는 브란트의 전환적 발상이 유럽과 세계의 역사를 바꾸었다고 생각합니다. .

브란트 동방정책은 김대중 햇볕정책의 롤 모델이었습니다. 김대중은 1971년 대선에 출마하면서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을 지지하고 공감한다”고 했습니다. “평화와 유리된 민족의 이익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 브란트처럼 무력통일에 반대했습니다.

김대중의 4대국 안전보장론과 남북한 화해 평화통일론은 동북아 평화라는 거시적인 차원에서 남북문제의 해법을 찾자는 것입니다. 세계주의자 브란트가 “독일 통일은 오직 유럽의 평화질서 내에서만 생각할 수 있다”고 한 논리와 같은 맥락입니다. 김대중의 동아시아 공동체 구성 제안은 브란트의 유럽공동체, 유럽연방국가 건설 제안과 유사합니다.

브란트가 나치 출신 키징어와 손을 잡았듯이 김대중도 자신을 탄압했던 박정희 정권의 2인자 김종필과 연합 정부를 구성했습니다. 경제관료들은 김종필계였고, 이들은 김대중 정부가 외환위기를 극복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통합의 위대한 힘입니다.

김대중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자기를 사형시키려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면을 건의했습니다. “내가 죽더라도 다시는 이런 정치적 보복이 없어야 한다”라고 했던 최후진술을 스스로 실천했습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기념관 건립에 앞장서 고문을 맡았고, 200억원을 지원했습니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했습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감동적인 화해입니다.

남아프리카에서는 백인들이 점령한 뒤 340년간의 가혹한 인종차별 정책으로 305만명 이상이 죽거나 실종되고 투옥된 흑인의 지옥이었습니다. 참상을 겪은 만델라는 폭력 무장투쟁을 했던 강경파였습니다. 그러나 27년간의 감옥살이를 통해 “용서 없이는 미래가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가 석방되고 대통령이 되자 남아공에서는 2차세계대전 전승국의 "나치 범죄자를 전원 처벌하자"는 뉘른베르크 재판 방식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만델라는 정반대로 “망각하지 않는 용서‘(forgive without forgetting)라는 메시지를 발신했습니다. 복수와 처단 대신 '진실과 화해 위원회'(Truth and Reconcillation)를 만들었습니다. “도대체 정의는 어디에 있느냐”는 반발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만델라는 흔들리지 않고 흑백인종의 화해정책을 밀고나갔습니다. 자신을 감시하던 백인 교도관 세명을 대통령 취임식 때 귀빈석으로 초대했습니다. 자신을 법정에서 모욕하고 교도소에 보낸 검사를 초대해서 오찬을 나누었습니다. 냉혹한 교도소장을 오스트리아 대사로 임명했습니다.

6년간의 감옥살이를 한 김대중은 ‘한국의 넬슨 만델라’로 불렸습니다. 만델라는 1997년 그가 네번째로 대통령에 출마했을 때 셋째 딸 부부를 보내 격려하고 옥중에서 내내 차고 다녔던 손목시계를 선물했습니다. 김대중은 유신체제와 망명 시절 가지고 다녔던 낡은 가방을 선물했습니다. 김대중은 2005년 만델라의 자서전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을 한국어로 번역했고, 책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만델라는 백인들을 양심의 교도소로부터 해방시켰습니다. 용기있는 사람만이 용서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평화에 도달하기 위한 통합은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까지 아우르는 경청(傾聽)과 화쟁(和諍)의 미덕을 발휘해야 이룰 수 있습니다. 제가 한반도평화만들기재단과 리셋코리아라는 플랫폼을 만들고 각계 지성들과 함께 작은 노력을 기울여온 이유입니다.

김대중·브란트·만델라의 삶은 범부(凡夫)의 상상을 초월하는 용서와 화해로 통합과 평화의 축복을 선물했습니다. 우리는 오늘의 세상이 편협한 진영논리와 어리석은 흑백 이분법으로 어떻게 분열되고 있는지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이타적 실천으로 가득한 세분의 삶은 위태로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성찰과 각성의 울림이 될 것입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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