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선임해준 '제2의 아버지'…후견 사건 5년간 67.5% 늘었다
“저한텐 거의 아버지에요!”
발달 장애가 있는 최모(33)씨는 혼자 살고 있다. 통근하는 데만 1시간 15분이 걸리는 장애인 보호작업장 인쇄업체에서 일한다. 함께 살던 아버지는 9년 전 급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간단한 의사소통은 하지만 복잡한 계산은 못한다는 그가 독립해 생활하는 건 성년후견인 A씨 덕이라고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최씨의 작은아버지는 “조카에게 후견인을 선임하게 해달라”며 한정후견 개시심판을 청구했다. 법원은 받아들였고, 최씨는 한 사회복지법인이 연결해준 후견인 A씨와 2015년 2월 첫 만남을 가졌다.
12일 서울가정법원과 한국후원협회가 개최한 제2회 한국후견협회에서 마이크를 잡은 최씨는 “왜 후견인을 신청했는지 몰랐다. 처음 후견인이라고 A선생님을 만났을 때 어색했다”면서도 “선생님이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도와줬다. 돈 관리도 해주시고, 이사할 때도, 주소 옮길 때도 도와줬다”고 말했다. A씨는 사회복지법인을 통해 소정의 사무비만 받고 햇수로 9년째 최씨의 ‘제2의 아버지 역할’을 하고 있다. 최씨는 “저처럼 후견인이 필요한 사람에겐 어떤 선생님을 만나는지가 중요하다”며 “필요한 사람에게 후견인이 많이 생기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10대 때 부모를 잃고 용접공 일을 하다가 조현병이 발발해 30년 넘게 정신요양원에서 살고 있는 이모(78)씨도 후견인을 만나고 성격이 바뀌었다고 했다. 시설 내 프로그램에도 참여하지 않고 홀로 시간을 보내던 이씨였지만, 2021년 요양원 원장의 신청으로 사회복지법인 소속 후견인을 만난 뒤 부쩍 웃음이 늘었다. 해당 요양원에서 근무하는 한 사회복지사는 “후견을 받기 전엔 (다른 환자가) 면회 오면 ‘나도 왔으면 좋겠다’고 부러워했는데, 후견인이 2주에 한 번씩 면회를 오니까 ‘언제 오냐’며 굉장히 좋아했다”며 “피후견인의 생각이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호응해주는 것만으로 마음의 안정을 찾고 활력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올해로 시행 10년째를 맞은 성년후견 제도는 장애가 있거나 나이가 많아 일상적인 일을 처리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법원이 후견인을 지정해주는 제도다. 일단 후견인이 선임되면, 후견 대상은 계약 등 특정 행위를 할 때 후견인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후견은 대상의 의사판단 능력에 따라 성년·한정·특정후견 등으로 나뉜다. 또 후견인이 후견 대상의 재산을 가로채는 등의 범죄를 막기 위해, 가정법원은 후견감독인을 선임하고 후견인을 관리·감독하게 할 수 있다.
후견인을 선임하게 해달라는 재판은 갈수록 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서울가정법원에 접수된 후견 사건은 지난해 기준 2548건으로, 5년 전(1694건)보다 50.4% 증가했다. 서울가정법원에서 진행 중인 후견감독 사건 역시 같은 기간 1921건에서 4213건으로 두 배 넘게 늘었다. 지난 6월 기준 후견감독을 받고 있는 사건 중 대부분(71.3%)는 성년후견 사건이었다. 이날 발표에 나선 정동혁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는 “후견 사건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다가 정지 상태에 있다. 코로나 이후 어떻게 변화할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면서도 “사건 증가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턱없이 부족한 후견감독 인원…1명이 1233명 맡는다
5년 전부터 서울가정법원이 시범 실시한 ‘국선 후견인’ 제도 역시 아직 활용이 미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선 후견인은 친족 후견인을 선임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사회복지사, 법무사 등 전문직 후견인을 선임해주는 제도다. 서울가정법원에 따르면 지난 6월까지 국선 후견인 선임 건수는 총 150건으로, 국선 후견인 대부분(109건)은 사회복지사였다. 정 부장판사는 “국선 변호사와 달리 국선 후견인은 근거 법령이 없어 별도의 예산이 편성돼 있지 않아 어려움이 있다”며 “후견 특성상 후견은 한 번 시작되면 종료 사유가 발생할 때까지 지속되기 때문에, 후견인을 새로 선임하기 위해선 전년보다 증가한 예산이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정 부장판사는 그러면서 “후견인이 일탈 행위를 하고, 법이나 명령에 응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감치에 처하는 등 직접적인 수단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라고도 덧붙였다.
이병준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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