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돈의 팔촌까지 공개"…가게 문도 닫게 한 '사적 응징' 논란

장서윤 2023. 9. 12.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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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초등 교사 사망 사건 관련 가해 학부모 폭로 인스타그램 계정.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24년차 여교사를 자살하게 만든 살인자와 그 자식들의 얼굴과 사돈의 팔촌까지 공개합니다.”

지난 10일 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와 같이 소개를 내건 계정이 등장했다. 대전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초등학교 교사에게 민원을 제기했다고 알려진 학부모의 신상털이에 한 개인이 나선 것이다. ‘촉법나이트’를 자칭한 계정 운영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방법으로 그들의 잘못을 일깨워주고 싶다”며 학부모의 사진과 연락처, 주소, 직업, 사업장 등을 폭로했다.

이튿날 타인의 신고로 계정이 차단되자 운영자는 “물러설 거면 애초에 시작도 안 했다”며 ‘시즌2’ 계정을 만들고 폭로를 이어가고 있다. 글을 내리지 않으면 신고하겠다는 네티즌을 향해선 “해볼 테면 해봐라. 나는 만 10세 촉법소년”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계정은 하루 만에 2만 9000명 팔로워를 돌파했다.(12일 오후 5시 기준)

최근 대전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12일 가해 학부모가 운영한다고 알려진 유성구에 위치한 한 상점 출입문에 각종 비난을 담은 시민들의 화환과 쪽지가 가득 붙고 오물이 뿌려져 있다. 사진 프리랜서 김성태

신상정보가 공개된 학부모들이 운영한다고 알려진 사업장도 공격받았다. 일부 시민들은 식당과 미용실을 찾아가 계란과 케첩, 쓰레기 등을 투척했다. 온라인 별점 테러도 이어졌다. 가게 출입문에는 “살인자”, “장사 망해라”, “평생 참회하며 살아라” 등이 적힌 포스트잇 수백 개가 붙었다.

최근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교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휴일인 10일 오후 대전 유성구의 한 초등학교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숨진 A교사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사진 프리랜서 김성태


자칭 ‘해결사’ 등장…폭행 응징도


수사·사법 기관을 대신해 사적 제재를 하는 개인들이 늘고 있다. 직접적인 폭행으로 이어진 경우도 있다. 서울북부지법 형사12단독 허명산 부장판사는 7월 자신의 아들에게 학교 폭력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중학생 2명을 불러내 뺨 250대를 때린 혐의(폭행)로 40대 남성 A씨에게 징역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죄질이 불량하다”고 봤지만 “음주 상태에서 아들을 괴롭혔다고 생각하고 우발적으로 행한 것은 유리한 정상”이라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해결사’를 자처한 유튜버들이 인기를 끄는 현상도 나타난다. 유튜버 ‘카라큘라 탐정사무소’는 6월 이른바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의자의 얼굴과 실명은 물론 생년월일, 출생지, 키, 혈액형까지 공개했다. 지난달 5일에는 ‘압구정 롤스로이스 사건’ 피의자 신상도 공개했다. ‘성범죄자를 잡아 경찰에 넘기는 참교육 채널’이라고 소개하는 유튜버 ‘감빵인도자’는 실제 지하철역 등에서 불법 촬영 범행이 이뤄지는 장면을 촬영 및 게시해 구독자 13만 명을 확보했다.

사적 제재에 대한 일부 시민들의 열광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선 “수사기관에 대한 국민의 무기력함과 분노가 터져 나온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최근 벌어지는 일부 학부모들에 대한 신상털이와 관련, “교권 지위 확보에 실패한 교육 당국과 악성 민원인에 대한 조사에 지지부진한 수사기관에 대한 국민의 무기력함과 분노가 터져 나온 것”이라며 “공적 역할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사적 제재는 사회 시스템 위협”


문제는 마녀사냥식 사적 제재가 불러오는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7월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의 가해 가족으로 지목된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허위사실 유포 및 명예훼손 혐의로 관련자들을 고소했다. 2015년 인천의 한 어린이집에서 일어난 원생 폭행 사건 때는 가해자가 아닌 엉뚱한 사람의 신상이 온라인에 공개돼 2차 피해 논란이 일었다. “온라인에서는 영웅 심리가 발동돼 실제보다 과장되게 세상을 이해하는 등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이란 해석이 나온다.

사적 제재가 만연할 경우 사회 시스템이 위협받는다는 원론적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신상공개를 통해 사적 제재를 표현하는 상당수는 정의감보다 선정성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며 “사건이 끝난 후에 복수의 성격으로서 사적 제재는 법으로 일절 허용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개인이 복수하면 잘못되거나 과도한 복수를 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복수를 빙자한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라며 “사회 시스템 유지를 위해 국가가 형벌권을 독점하는 이유를 진지하게 고민할 때”라고 말했다.

장서윤 기자 jang.seo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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