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하는 청춘 증가 추세... 남의 일이 아닙니다

배운기 2023. 9. 12.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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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미래의 파산과 같은 청춘파산... 파산면책에 소극적인 법원 태도 개선 필요

[배운기 기자]

▲ 회생법원의 1호 대법정 제1호 법정은 회생법원에서 이뤄지는 회생파산 관련 사건이 처리되는 공간입니다. 판사, 참여관, 파산관재인, 관리위원, 회생파산 신청인, 채권자 등이 이 법정에서 말하고 서로의 얘기를 듣습니다.
ⓒ 배운기
 
매미소리가 잦아든 늦여름의 월요일 오전 10시. 회생법원 2층에는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복도에는 다양한 향의 커피와 여러 주파수의 소음이 퍼지고 있었고, 1호 대법정 앞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사이에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 두 사람이 눈에 띤다. 불안하고 초초해 보이는 이 여성들은 파산신청을 하고 채무자 신용교육을 위해 대기 중인 듯했다. 아마도 한 사람은 함께 온 친구일 것이다.

"오늘 알바는 어떡하지. 오후에 빨리 가봐야 하는데... 여기 교육이 빨리 끝나려나?"
"나는 쉬는 날이라 괜찮은데. 네가 걱정이네... 나는 법원에는 난생처음 와보는데. 원래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오나보네..."

긴 복도 여기저기에 핸드폰이나 시계를 쳐다보며 두리번거리는 이들이 많았다. 법원의 출석통지서를 받은 그들의 표정 속에는 긴장감과 당혹감이 섞여 있었다. 묘하게 위압감을 주는 법원 내부의 삭막한 풍경이 이들을 더욱 위축시키고 있었다.

통계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최근 2030세대의 빚이 늘고 있다는 보도가 줄을 잇는다. 30대 이전의 회생파산 신청자 수 또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청년세대의 현재와 미래에 빨간 불이 켜지고 있다.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출받은 금융감독원 자료에 의하면, 2/4분기 말 기준 20대 이하 주택담보대출의 연체율은 0.44%로 전 연령 평균인 0.21%의 2배를 넘는다. 30대의 연체율 또한 0.17%로 지속적으로 상승 중이다.

20대는 주로 전월세보증금대출 이자의 연체율이 높고, 30대는 주택구입을 위한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연체율이 높아지고 있다. 연체율 자체도 문제지만 신용불량 등으로 인한 취업 불이익이나 경제활동의 제약은 중장기적으로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의 원동력을 상실하게 하는 중차대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청년층의 경제적 빈곤의 문제는 곧 결혼과 저출산 문제와 연결된다. 나비효과를 떠올리기 전에도 무엇보다 인과관계가 뚜렷한 사회현상이다.

청년계층의 개인회생-파산 신청이 증가하는 이유

서울회생법원 통계에 의하면, 2022년 개인회생을 신청한 30세 미만 청년의 비율은 15.2%로 2020년 10.7%, 2021년 14.1%에서 꾸준히 늘고 있다. 이는 30세 미만 청년 세대에서 가상화폐나 주식투자 등의 실패와 경제활동 영역의 확대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30세 미만 청년의 변제기간을 3년 미만으로 단축한 회생법원 실무준칙의 영향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회생법원의 실무준칙은 회생파산 업무처리의 통일성을 위한 기준이다. 이러한 실무준칙 제정으로 3년 미만 단축사건은 전체사건의 8.4%(1242건)로 비중이 높은 편이며 평균 단축기간은 27개월이다. 단축사유로는 30세 미만의 청년이 64.8%(805건)로 가장 높다.

하지만 이런 통계적 수치 이전에 보다 근본적으로 청춘들의 마음속에 쫓기는 뭔가가 있다. 누구나 그렇듯, 부자가 되고 싶은 평범한 욕망. 한 세대 이전보다 경제적 부와 그 과정에 더 밝은 세대가 지금의 청년세대가 아니던가. 그 전세대보다 훨씬 풍요롭게 살아왔고 돈이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는지 몸으로 체험하고 있는 세대다.

더불어 이들은 부동산 가격 하락이나 대폭적인 금리상승을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다. 부동산 가격의 상승과 저금리로 인한 경제성장 시기에 '빚도 능력이자 자산'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때문에 뜻밖의 경제적 상황 악화에 취약한 세대일수도 있다. 이러한 까닭에 청년세대를 위한 금융(자산)교육이나 신용교육이 필요하지만, 학교과정에서 금융관련 교육은 거의 전무하다.

또한 지금의 20, 30대는 각종 대중매체에 그려진 부유한 삶과 아파트 공화국의 소유권자가 되기를 강요하는 언론의 큰 그림 속에서 성장했다. 이 청춘들에게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으다'의 줄임말)은 경제활동의 과정이자 결과가 된다. 또한 '영끌'은 청춘파산 문제의 원인이자 경제적 파탄의 이유가 된다.

청년 계층의 대출 연체율이 상승하고 회생파산 신청자 수가 증가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무엇보다 코로나 시국을 거치면서 20, 30대가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는 반증이다. 기업의 채용규모 축소와 자영업자의 영업이 부진한 상황에서 20, 30대의 취업률과 소득은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부동산가격 상승과 가상화폐나 주식 투자로의 유혹은 무리한 빚을 내기에 적절한 유인을 제공했다. 더욱이 청년 자체의 신용점수가 낮다보니 제2, 3금융권의 고금리 대출을 받아 생활비나 주거비용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청춘파산의 덫에 내몰린 우리시대의 청춘들

여기, 상가수첩을 포장하며 봉고차로 다양한 거리에서 수첩을 돌리는 여성이 있다.

이야기 주인공인 백인주씨는 20대에는 신용불량자, 30대에는 파산신청자가 됐다. 어머니 사업의 부도로 뜻하지 않게 집안의 빚을 떠안게 되고, 서울의 각 동네를 떠돌며 아르바이트를 전전한다. 사당동, 신림동, 신당동, 대림동, 연희동, 개포동까지 누군가의 눈을 피해 일회성 일자리로 생계를 꾸려나간다. 물론 채권자들과 사채업자들의 끈질긴 추적과 신용불량으로 인해 단기성 아르바이트밖에 할 수 없다. 그는 빚 때문에 평범한 사회생활은 물론 연애에 있어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경제활동의 제약은 인생 전반의 제약이 된다.

파산 신청시 채권자 목록에 누락된 이들은 물론 목록에 있던 채권자들에게서도 다시 빚 독촉을 받는 주인공이다. 쉽사리 멘탈이 붕괴될 법도 하지만, 파산절차 관련한 법과 제도를 공부하고 버티며 악착같이 자신의 삶을 앞으로 전진시킨다. 개인파산 면책을 받은 후 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파산면책을 받은 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중략) 나는 등을 곧게 펴고 걸었고 안경 밑으로 주변을 둘러보지 않게 되었다. 더 이상 모자를 눌러쓰지 않아도 되었다. (중략) 10년 만에 출옥한 죄수처럼 낯선 편안함을 만끽했다."
 
 소설 <청춘파산>은 작가 김의경의 경험을 그린 자전적 소설이다.
ⓒ 알라딘
  
이는 소설가 김의경의 작품 <청춘파산>의 줄거리다. 작가는 자신이 원치 않은 상속채무를 떠안은 한 여성의 파산신청과 위험하면서도 치열한 극복과정을 그렸다. 실제로 작가 자신도 소설속의 주인공처럼 집안의 부도와 수많은 아르바이트 시장에 내몰린 자전적 경험을 갖고 있다고 한다.

"세상에 빚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은 빚처럼 널려있다"는 작가의 말은 빚에 허덕이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끈질기게 삶을 이어가는 이들에게 작은 위로를 전한다. 어쩌면 작가의 경험이 우리시대의 보통 청춘들의 자화상일수도 있겠다. 극소수의 금수저와 소수의 운 좋은 이들을 제외하고는 내일을 저당 잡힌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 땅의 청춘들에게 용기와 분투를 권한다.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위에는 또 다른 현실적 김의경과 잠재적 김의경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가능하면 개인회생절차를 통해서 일정 채무를 변제하면서 경제활동을 고민할 터이지만, 불가피하게 개인파산을 신청할 수도 있다.

청춘파산의 가장 큰 위험은 우리 공동체 미래의 파산

청춘파산의 가장 큰 문제는 청춘 채무자들 대부분이 사회의 미래라는 점이다. 이들이 정상적으로 경제활동을 하고 사회경제 각 분야에서 중추적 역할을 해야만 우리 사회의 내일이 건강해지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하고 이들이 경제적 취약계층으로 전락했을 때 우리사회가 감당해야할 전략적 손실은 헤아리기 쉽지 않다.

소설 속 주인공처럼 구조적 가난의 대물림은 미봉책에 불과한 몇 가지 사회경제적 정책으로는 해결할 방도가 없다. 부모의 사회적 신분이나 경제력 차이에 의한 교육격차와 스펙 문제는 어떡할 것인가? 취업낭인, 취준생, 취업준비 준비생이라는 웃지 못 할 용어들의 사연은 대부분 여기에서 나온다.

일례로 고시낭인의 폐해를 막기 위해 도입한 로스쿨 제도는 좋은 의도와는 달리 현대판 음서제의 서막을 열었다. 판검사 부모와 변호사 자녀들로 이뤄진 새로운 패밀리의 탄생. 거대 로펌과 사법부와 검찰을 오가는 신흥귀족 계급이 탄생했다. 현자들이 우려했던 바대로 드라마틱한 상황이 우리의 현실에서 전개되고 있다.

<청춘파산>은 비단 소설 속 주인공인 인주만의 스토리는 아니다. 상상과 가공의 얘기도 아니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청춘들의 얘기일수도 있다. 대학 등록금 대출과 전(월)세보증금, 생계를 위한 다양한 경제활동에서의 쌓이는 빚과 한계상황은 언제든지 '청년파산의 위험'을 제공할 수 있다.

최근 통계청 발표(경제활동인구 조사 청년층 부가 조사)에 따르면, 2023년 5월 기준 청년층(15~29세) 인구 841만6000명 가운데 재학·휴학생을 제외한 최종학교 졸업자(수료·중퇴 포함)는 452만 명이고, 이 중 126만 명이 미취업 상황이다. 청년층 인구의 14%에 해당하는 126만 명이라는 숫자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의 미래에 다른 버전의 청년 백인주의 스토리가 잉태 중에 있다는 의미로 들린다.

제도적으로는 청춘(20, 30대)의 시간과 근로능력을 이유로 파산면책에 소극적인 법원의 태도 개선과 파산면책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채무자를 괴롭히는 이들에 대한 법적 대책이 필요하다. 물론 청년들의 오늘이 우리의 내일임을 자각하는 우리사회의 인식개선이 최우선이다. 또한 금융제도나 정책을 넘어서서 청년세대의 경제활동과 우리의 미래를 연결 짓는 거시적 정책접근은 필요불가결한 선제요건이다.

누군가에게는 20대나 30대가 청춘의 꽃으로 시간이 느리게 흘러갈 수도 있지만, 인주처럼 '청춘파산'의 절벽에 서 있는 이들에게는 마치 안전벨트 없는 청룡열차 위의 불안한 시간으로 기억될 수도 있겠다. 역시나 우리의 삶은 낭만적 이상향 속에 고통의 뿌리를 깊숙이 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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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회생법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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