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받지 못한 축제, 농구월드컵이 남긴 것
[이준목 기자]
필리핀-일본-인도네시아에서 공동 개최한 2023 국제농구연맹(FIBA) 남자농구 월드컵이 독일의 사상 첫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세계최강으로 꼽히던 미국은 2연속 노메달에 4위라는 아쉬운 성적으로 마감했다. 변방으로 꼽히던 일본은 아시아를 대표하여 농구월드컵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두며 2024 파리올림픽 출전권까지 획득했다. 그리고 월드컵에 초대받지 못한 한국농구는, 세계농구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봐야만 했다.
독일은 이번 대회 전까지 FIBA 세계 랭킹이 11위로 10위권에도 들지 못했다. 하지만 독일은 MVP와 베스트5를 차지한 가드 데니스 슈뢰더(토론토 랩터스)를 중심으로 탄탄한 조직력을 과시하며 8전 전승이라는 놀라운 성적으로 대회 우승을 거머쥐었다.
준결승에서는 NBA 선수들로 구성된 미국(FIFA 랭킹 2위)을 113-111로 꺾는 이변을 연출했고, 결승에서는 유럽의 강호 세르비아(6위)마저 83-77로 제압했다. 독일은 자국 역사상 최고의 레전드 꼽히는 덕 노비츠키가 건재했던 2002년의 3위로 종전 최고 성적이었으나, 이번 대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정상에 오르는 기쁨을 누렸다. 반면 세르비아의 에이스 보그단 보그다노비치는 2014 스페인 농구 월드컵, 2016 리우 올림픽에 이어 메이저대회에서 은메달만 3번째라는 불운의 주인공이 됐다.
독일의 이변에 비하여, 전통의 강호들은 대체로 기대에 못미쳤다. 전 대회 디펜딩챔피언인 FIBA랭킹 1위의 스페인을 비롯하여 호주(3위), 프랑스(5위) 등이 모두 8강 토너먼트에도 오르지 못하며 2차라운드에서 줄줄이 탈락했다. 전 대회에서 7위에 그쳤던 미국은 이번 대회에서는 간신히 4강에 올랐으나 예선에서 리투아니아에 덜미를 잡힌 데 이어, 준결승 독일전, 3.4위전 캐나다전에서 연패를 당하는 굴욕을 겪었다.
미국은 이번 대회에서 프로 연차와 짧고 국제경험이 부족한 어린 선수들로 구성됐다. 하지만 이번 농구월드컵의 부진으로 크게 자극받은 미국 농구는 다가오는 2024 파리올림픽에서는 최정예 멤버들로 명예회복에 나설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졌다.
르브론 제임스, 케빈 듀란트, 스테판 커리, 제이슨 테이텀, 데미안 릴라드 등 현역 NBA 최정상급 슈퍼스타들이 올림픽 출전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제임스는 2008년과 2012년 금메달이 있고, 듀란트는 2012년부터 2020년까지 대회 3연패를 달성했다. 커리는 아직 올림픽 금메달이 없다.
미국은 프로선수들이 올림픽 출전이 시작된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부터 최정예멤버로 구성된 '드림팀'을 구성해왔다. 마이클 조던-찰스 바클리-매직 존슨-래리 버드 등으로 구성되어 역대 최강팀으로 꼽히는 1기를 시작으로 1996년 애틀란타-2000년 시드니 대회까지 3연속 무패 우승을 달성했다.
하지만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선수선발의 실패와 세계농구의 급격한 성장세 속에 무려 3패를 기록하며 동메달에 머물렀다. 절치부심한 미국은 2008년 베이징 대회에서는 코비 브라이언트와 르브론 제임스, 카멜로 앤서니 등을 주축으로, 드림팀이라는 별칭대신 명예회복을 의미하는 '리딤팀'을 구축하여 스페인을 꺾고 올림픽 정상탈환에 성공했다. 이후 미국은 2012 런던-2016 리우-2020 도쿄 대회까지 다시 4연패를 달성했다.
현재 NBA 간판스타인 제임스-듀란트-커리 등은 모두 30대중반을 넘긴 베테랑들이라 이번 파리 대회가 마지막 올림픽이 될 가능성이 높다. 2000년대 이후 NBA 인기를 주도해왔던 레전드들이 올림픽 우승을 위하여 다시 의기투합한다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되기 충분하다.
여기에 세계농구계도 이제 니콜라 요키치(세르비아), 야니스 아데토쿤보(그리스), 데니스 슈뢰더(독일) 등 미국 못지 않은 슈퍼스타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으며, 조직력과 FIBA 대회 경험에서는 오히려 우위에 있다. 설사 미국이 최강 전력의 드팀팀을 다시 구축한다고 해도 쉽게 밀리지 않을 전망이라 파리올림픽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자존심 살린 일본
아시아 농구는 일본의 선전으로 그나마 자존심을 살렸다. 이번 농구월드컵에는 오세아니아의 호주, 뉴질랜드를 제외하면, 순수 아시아 국가로는 총 6개국이 참가했다. 개최국 필리핀과 일본을 포함하여 중국, 이란, 레바논, 요르단이다.
아시아 6개국의 합산 성적은 7승 23패였다. 토너먼트 진출팀은 배출하지 못했지만, 4년 전인 2019 중국 농구월드컵에서 1승 17패라는 처참한 성적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만한 성장이다.
특히 개최국 일본이 무려 3승이나 거두며 아시아 국가중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다. 일본은 지난달 27일 열린 조별리그에서 핀란드(FIBA랭킹 24위)를 98-88로 꺾는 돌풍을 일으켰다. 핀란드는 지난해 유럽농구선수권대회 8강에 올랐며 NBA 올스타까지 선정된 라우리 마카넨(유타 재즈)같은 선수들을 보유한 강팀이다. 일본은 3쿼터 막판 18점차를 뒤진 일본은 뒷심을 발휘하며 극적인 역전승을 따내며 이번 대회 최대의 이변을 연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어 일본은 순위결정전에서는 베네수엘라를 86-77로, 최종전에서는 카보베르데를 80-71로 제압했다. 유럽, 남미, 아프리카 대륙 팀을 상대로 고르게 1승씩 챙긴 것도 일본이 유일하다.
이로써 일본은 역시 개최국 자격으로 참가했던 2020 도쿄 올림픽에 에 이어 아시아에 단 1장만 주어지는 올림픽 2회 연속 본선티켓까지 거머쥐었다. 일본이 원정으로 열린 올림픽 대회에 자력으로 나서게 된 것은 1976 몬트리올 대회 이후 무려 48년 만이다.
일본은 농구에 있어서는 세계무대에서 철저한 변방에 가까웠다.일본의 FIBA랭킹은 36위로 아시아에서도 중국(27위), 요르단(33위)보다 낮으며 한국(38위)과는 불과 두 계단 차이다. 심지어 이번 대회에는 에이스로 꼽히는 NBA리거 하치무라 루이(LA 레이커스)가 불참했음에도 이같은 성과를 낸 것이다. 일본은 자국 여자대표팀이 2020 도쿄올림픽에서 깜짝 준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남자농구 대표팀도 경쟁력을 증명하며 밝은 미래를 예고했다.
일본 다음으로 좋은 성적을 올린 팀은 레바논으로 2승 3패를 기록했다. 이어 중국과 필리핀이 각 1승(4패)씩을 거두며 체면을 세웠다. 이란과 요르단은 나란히 5전 전패를 기록했다.
한국농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이유로 지역 예선 출전을 포기해 월드컵 본선을 밟지 못했다. 한국 남자농구는 역대 월드컵(구 세계선수권 포함)에 총 8회 출전했고 1970년과 1986년에 11위를 기록한 것이 최고성적이다.
한국은 2002년 미국 대회부터 2010년 터키 대회까지 3회 연속 월드컵 무대를 밟지못했으나 2014년 스페인 대회부터 16년 만에 다시 복귀했다. 하지만 스페인 대회에서는 5전 전패(23위)에 그쳤고 2019년 중국 대회에서는 4연패 끝에 순위결정전 최종전에서 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를 80-71로 제압하며 1994년 대회 이후 유일한 1승(26위)을 챙긴 것이 지금까지 마지막 농구월드컵 승리 기록이다.
또한 한국은 개최국 시리아가 여행 금지 국가로 제정돼 있기에 안정상 이유로, 지난달 12일 개막한 파리 올림픽 사전 예선 대회 출천도 포기했다. 올림픽 본선행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한국 남자농구는 1996년 애틀랜타 대회를 끝으로 무려 28년간 올림픽 본선과 인연을 맺지 못하게 됐다. 몇 년간 사실상 국제무대와의 단절을 통하여 세계농구의 흐름을 따라잡을 기회를 놓쳤고, 국제농구연맹에 미운 털이 박혀 외교적으로 더욱 고립되는 결과를 초래한 것도 타격이다.
이번 농구월드컵에서 같은 아시아 국가이고 신체조건에서도 큰 차이가 없는 일본농구가 선전을 거듭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한국농구의 미래와 국제경쟁력에 대한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추일승 감독이 이끄는 남자농구대표팀이9월 열리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명예회복을 노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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