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옮기려면 정해진 지역에서만? '현대판 노예' 만들 셈인가

김달성 2023. 9. 12.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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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이주노동자 지역 이동 제한에 사업장 변경 이력 관리 강화까지... 이 정부의 '개악'에 저항해야

[김달성]

 지난 8월 20일 서울 용산구 용산역광장에서 민주노총이 연 '전국이주노동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용산 대통령실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 연합뉴스
 
꾸메르씨 이야기

방글라데시인 노동자 꾸메르(가명, 29세, E9 비전문취업비자)씨는 경기 북부에 있는 한 석재공장서 일했다. 고용노동부가 2년 전 고용 알선해 준 곳이다. 그런데 겨울에 영하 20도까지 쉽게 내려가는 지역에 있는 그 회사가 그에게 제공한 기숙사는 낡은 컨테이너였다. 냉난방시설이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은 그 숙소에서 지낸 그는 지난겨울 얼어 죽을 뻔했다.

우리 센터의 지원을 받은 그는 지난봄부터 사장에게 사업장 변경을 위한 사인을 요구했다. E9비자를 가진 이주노동자는 사업장을 변경하려면 고용주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제도(고용허가제)가 있기에 그리 한 것이다. 그러나 사업주는 누차 거절했다. 요구할 때마다 폭언과 협박을 했다. 

협박은 당장 출국시켜버리겠다는 것이었다. 사업주로부터 거절당한 그는 고용지원센터(고용노동부)를 찾아갔다. 그 센터도 소극적이었다. 고용주와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한 싸움을 넉 달 동안 벌인 그는 간신히 사인을 받았다. 그는 즉시 부산으로 향했다. 따뜻한 지역에 있는 일터를 찾아간 거다.

앞으로 이주노동자(E9비자 소지자)는 꾸메르씨처럼 자신이 원하는 지역으로 가서 일자리를 얻기가 어려워졌다. 지난 7월 고용노동부가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제도 개선안을 내놨는데, 그 내용 중 하나가 사업장 변경 지역을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앞으로 이주노동자가 일터를 변경할 때 제한된 지역 안에서만 할 수 있게 한다는 거다. 가령 수도권, 충청권, 전라 제주권 등 그 범위 안에서만 이동할 수 있게 한다는 것.

현대판 노예를 만드는 고용허가제

우리나라가 외국인노동자를 데려오기 위해 만든 제도가 고용허가제이다. 2004년부터 시행된 이 제도는 국회가 만들고 정부가 집행하며 산업부가 강력히 뒷받침하는 제도로서 내국인이 기피하는 사업장에만 취업할 수 있는 이주노동자(16개국에서 오는 E9 비자 소지자)의 사업장 변경을 기본적으로 불허한다. 

회사가 부도가 나거나 현저한 체불임금이 발생했을 경우 등을 제외하면, 이주노동자는 일터 변경을 위해 사업주의 동의를 꼭 받아야 한다. 이는 노동자 인간의 기본권을 심히 제한하는 것으로서 위헌적이다. 이제라도 이 제도는 개선해야 마땅한데 최근 고용노동부는 사업장 변경 지역을 제한하는 개악안을 내놓은 것이다. 이 개악안은 이주노동자를 옥죄게 될 거다. 

앞으로 이주노동자는 제한된 지역 안에서 사업주에게 더욱 예속되어 노동을 강요당할 가능성이 높다.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기본적으로 불허해 온 제도를 개선하기는커녕 이제 오히려 변경 지역을 제한하기까지 한다는 방침을 정부가 세워놓았으니, 어두운 전망을 할 수밖에 없다. 노예적인 삶을 거부하는 이주노동자는 강제 출국을 당하거나 소위 불법체류자가 되기 십상이다. 취업 지역을 제한하는 이 방침은 앞으로 미등록자들을 더욱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지난 7월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사업장 변경 제도 개선안에는 큰 독소조항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사유와 이력을 앞으로 구인하는 사업주들에게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 개악안을 발표하면서 고용노동부는 구체적으로 예를 들며 '태업 등'이라고 덧붙였다.

자르말씨 이야기

네팔 출신 노동자 자르말(가명, 35세)씨는 경기도 포천시에 있는 한 기업형 채소농장서 일했다. 비전문 취업비자(E9)로 입국한 그를 그 농장으로 고용 알선한 건 고용노동부다. 고향에 아내를 두고 온 그는 농장 한 귀퉁이에 있는 움막 숙소에 살면서 7년 동안 노비처럼 일했다. 누가 봐도 그는 소처럼 일했다. 농번기 때는 한 달에 단 하루 휴일도 없이 노동을 강요당했다. 그가 받은 임금은 최저임금의 절반 정도 수준이었다.

비가 오면 비가 새는 숙소의 문제만 아니라 사철 면마스크를 쓰고 비닐하우스 안에서 뿌리는 농약 중독 위험 때문에 그는 사업장을 옮기고 싶었다. 그는 돼지농장으로 가고 싶었다. 고향으로 돌아가 돼지농장을 운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고용주에게 사업장 변경을 위한 사인을 요구했다. 역시 고용허가제에 따라 그리 한 거다. 허나 사업주는 당장 출국시켜버리겠다는 협박을 하며 거듭 거절했다. 사업주들은 노동자가 일을 성실하게 잘 할수록 사업장 변경을 위한 동의를 더욱 해주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일할 의욕을 잃은 자르말씨는 작업량을 줄였다. 우리 센터에서 목공 출신인 예수께서 실천한 '자유와 저항 정신'을 배운 그는 하루에 상추 백 박스를 수확하던 것을 반으로 줄이고, 농약 살포도 천천히 했다. 평소보다 절반만 했다. 그러자 농장주의 폭언, 협박이 더 심해졌다. 하지만 자르말은 여전히 작업량을 줄이며 한 달 두 달 계속 사인을 요구했다. 결국 오랫동안 자르말씨를 노비처럼 부린 사업주는 일터 이동을 위한 사인을 해주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앞으로 자르말씨처럼 행동하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보는 구인하는 사업주들에게 제공된다. 자르말씨 같은 이주노동자가 일터를 변경한 사유와 이력을 사업주가 자신의 입장에서 기록으로 남기면 그것을 고용노동부가 수집해 구인하는 사업주들에게 제공하는 거다. 한국어가 서툰 이주노동자들은 기록하라고 해도 대개 사업장 변경 사유나 이력을 제대로 적지 못할 것이다.
 
 지난 4월 30일 오후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열린 세계노동절 맞이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쇠사슬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구인하는 사업주들에게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사유와 이력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제도와 법은 우선 '이주노동자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게 분명하다. 이 블랙리스트를 사업주들이 공유하게 되면 앞으로 제 권리를 찾기 위해 행동하거나 활동한 이주노동자는 구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고용허가제에 따라 일자리를 아무리 알선해도 구인하는 사업주들이 기피하는 경우가 많이 생길 것이다. 그러다 보면 그 노동자들은 도태되거나 소위 불법체류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 개정안은 이주노동자들의 권리 찾기 운동을 싹부터 자르게 될 것이고, 이주노동현장은 사업주들의 천국 즉 정글만도 못한 무법천지가 되고 말 것이다. 열악한 노동조건과 환경의 개선은 더 요원해질 것이다.

정부는 올해 외국인노동자(E9비자) 11만 명을 데려올 방침을 세워놓고 추진 중이다. 계절근로자도 2만 5천 명 이상을 데려오고 있다. 초저출산 고령사회에 진입한 사회, 착취공장형 '재벌왕국 코리아'는 사회경제체제를 전폭적으로 변혁하지 않는 한 앞으로 외국인노동자를 더욱 많이 데려오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심히 우려되는 점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외국인노동자를 단지 인력으로만 보지, 사람으로는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정부에 이어 윤석열 정부도 필요에 따라서 외국인노동자를 많이 데려올 정책만 열심히 만들어 추진하지, 이주노동자를 사람으로 보고 그들의 기본권, 인권, 노동권을 보장하며 서로 상생할 생각은 도무지 하지 않는다.

130만 이주노동자들을 단지 인력, 그마저도 '일회용품' 같은 존재로 보고 정글 같은 1:99 사회의 먹이사슬 끄트머리에 현대판노예로 고정시킴으로써 결국 우리가 얻는 것은 1:99 세습자본주의사회의 강화일 뿐이다. 상위 10% 기업이 나라 전체 기업 이익의 90%를 독식하는 사회에서 그 1:99 세습자본주의사회는 1%에게는 천국이지만 나머지에게는 지옥이다. 

윤석열 정권은 노동자들을 적대시하며 비인간화를 촉진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이주노동정책을 지속적으로 전개하면, 우리 사회는 장차 심각한 불행에 빠질 수 있다. 오직 자본의 이윤, 착취 극대화를 위한 이주노동정책을 마구 펼치면 당장은 국민총생산이 증가할지 모르나, 우리 사회의 미래는 결코 평화로울 수 없을 것이다.

변화를 위해선 우선 현대판 노예제라는 평가를 받는 고용허가제를 '노동허가제'로 바꾸어야 한다. 깨어있는 현대판 노예들과 반노예들 그리고 임금노예들의 연대 활동이 반드시 필요하다. 1:99 세습자본주의사회를 허물고 새로 짓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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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 김달성 목사입니다. 이 글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9,10월호 '특집' 꼭지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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