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1st] "유망주 키우려면 3년 뒤를 바라보며 참고 견뎌라"…'유스컵 준우승' 도쿄베르디 감독의 신념
[풋볼리스트] 김희준 기자= 도쿄베르디를 K리그 인터내셔널 유스컵 결승까지 이끈 시부야 료 감독은 유소년 육성에서 중시하는 요소로 개인 기량 극대화, 조직적 압박 그리고 인내심을 꼽았다.
일본 축구가 유소년 육성에 힘쓴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93년 J리그 창설 이래 백년대계를 잡고 유소년 육성에 막대한 투자를 해왔다. 당장의 성적을 요구하기보다 나이에 따른 체계적인 프로그램 설정으로 기본기와 피지컬, 압박 등을 차근차근 향상시키려 노력했다. 그 열매는 100명이 넘어가는 유럽 진출 선수,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독일과 스페인을 격파한 전방압박과 조직력 등으로 성인 무대에서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일본 유소년 축구가 나아가려 하는 길은 K리그 인터내셔널 유스컵 인천 2023에서도 잘 드러났다. 일본 대표격으로 참가한 도쿄베르디는 뛰어난 조직력과 전방압박, 세밀한 패스 플레이를 앞세워 결승까지 진출했다. 비록 벨기에 안데를레흐트에 밀려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일본 2부 유소년이 보여준 경기력은 일본 유소년 육성 철학이 바닥까지 뿌리깊게 자리잡혔음을 보여줬다.
지난 9일 유스컵 결승을 앞두고 '풋볼리스트'를 만난 료 감독에게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료 감독은 현재 31세로 유소년 감독치고도 젊은 나이다. 2021년 28세에 도쿄베르디 코치가 됐고, 이번 유스컵에서는 총감독으로 왔다.
젊은 나이에도 유소년 육성에 대한 신념은 명확했고, 이는 일본 축구의 방향성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료 감독은 피지컬과 압박, 개인기량과 조직력의 조화 등을 강조하면서 "선수들이 실수를 한다고 해서 지적을 강하게 하거나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3년을 바라보고 육성할 수 있도록 참고 견뎌야 한다"며 이 모든 게 제대로 작동하려면 인내심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유스컵 결승에 진출하셨는데 소감이 어떠세요?
결승에 진출해 굉장히 기쁩니다. 굉장히 어려운 경기들이 많았고, 이를 통해 선수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 매우 좋았어요. 이번 대회에 참가하게 돼서 기쁘고 K리그 유스 관계자들께도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상대인 안데를레흐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개인적으로도, 팀으로도 몹시 잘 정돈된 팀이라고 생각해요. 안데를레흐트는 확고한 철학을 가진 팀이고, 그 철학을 경기장에서도 보여줄 수 있는 팀이예요. 이번 유스컵에 참가한 선수 중 2명 정도가 프로 계약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프로에 가까운 선수들과 대전을 하게 돼서 기쁘고 선수들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조별리그에서 붙어본 팀 중에서는 어떤 팀이 가장 기억에 남던가요?
울버햄턴원더러스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저희가 여지껏 경험하지 못했던 피지컬을 보유한 팀이었습니다. 선수들이 압박을 하려고 해도 울버햄튼 선수들이 우월한 피지컬로 우리를 뛰어넘었어요. 그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저희가 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요. (웃음)
한국과 직접 부딪혀보니 어떤 점이 인상깊었는지요? 일본과 어떤 점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었나요?
한국 팀을 만나면 보통 뒤쪽에서 롱볼을 때리고 빠른 속도로 사이드나 중앙을 돌파해서 득점하는 전략을 주로 사용했요. 그런데 이번에 감독으로서 참가를 해서 대전을 해보니까 한국 선수들이 기술적으로 되게 뛰어났어요. 공을 다루는 부분이나 공을 받기 위해 적절한 포지션을 차지하려고 노력하는 부분이 신선하고 인상깊었고요.
반대로 일본의 경우에는 과거에는 살짝만 압박을 하거나 어깨 싸움을 하면 구르고 넘어지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러나 지금은 피지컬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고 있고, 이를 단련하는 시스템도 갖추고 있습니다. 단순히 공통점과 차이점으로 나누기보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를 보면서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고, 서로가 발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함께 가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숙소로 사용하는 호텔 로비에 다른 팀 코칭스태프도 많이 보였어요. 로비나 식당에서 따로 이야기를 나누곤 하셨는지?
선수들은 식당에서 다른 팀 선수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제가 직접 봤는데 레알소시에다드 선수들과 같이 식사하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더군요. 코칭스태프들은 지난 6일에 한데 모여 지도자 컨퍼런스를 진행했어요. 그때 각 팀 유스 시스템에 대해 궁금한 점을 서로 물었고, 발표한 내용 이외에도 서로 얘기를 나누고 질문하면서 계속 활발하게 교류를 했습니다.
지도자 컨퍼런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발표는 무엇이었나요?
발표를 해주셨던 모든 팀들이 인상적이었지만 안데를레흐트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안데를레흐트 유스팀에는 멘털 코치가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빅클럽에는 멘털 코치들이 있어 선수들을 관리하죠. 저는 항상 '아카데미 선수들도 멘털을 관리해 줄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안데를레흐트에는 아카데미에도 멘털 코치가 있어서 선수들을 케어를 해주고, 언제나 일정 수준의 경기력이 발휘될 수 있도록 관리하고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그런 시스템이 베르디에도 필요하겠다고 느꼈죠.
한국 팀들도 기억에 남았어요. 옛날에는 한국 팀이 훈련을 굉장히 많이 시키고 하드 워킹을 많이 강조한다는 이미지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번 컨퍼런스를 듣고 나니 선수들에 대한 접근도 대단히 학술적이고, 단순한 훈련량보다 시스템에 집중하더라고요.
그렇다면 이 부분은 도쿄베르디가 다른 팀들에 비해서 좋다고 느낀 부분도 있었나요?
설명하기 애매한 부분은 있지만, 선수들에게 감각적으로 선수의 특징이나 개선점 같은 걸 잘 전달할 수 있는 지도법이 강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럽이나 한국은 특정 선수에게 요구하는 역할을 시스템, 수치, 데이터로 표현하는 부분이 많잖아요? 저희도 포지션이나 시스템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것보다도 선수 한 명 한 명이 가진 재능과 능력을 보고 이 선수를 어떻게 극대화시킬지 세심하고 개인적으로 접근하고 있어요. 이런 부분이 강점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개인 기량을 최대화하는 걸 중시한다고 하셨는데 실제 베르디 경기는 굉장히 조직적으로 이뤄졌어요. 어떻게 이 두 가지를 조화시켰나요?
전방 압박이나 전술적인 움직임, 부분 전술을 위해서는 선수 한 명 한 명에 대한 코칭스태프들의 개인적인 접근, 그리고 기술적인 이해도를 높이는 훈련들이 밑바탕이 돼야합니다. 선수에게 부분 전술들을 지시하더라도 제대로 되지 않을 때가 흔하게 있잖아요. 그래서 부분 전술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그 선수에게 필요한 움직임과 기술에 대한 이해를 시키고, 그에 따라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해가면서 움직이게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걸 중점 삼아 훈련을 진행하고 있어요. 그런 코칭이 자연스러운 전술적 움직임에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전방 압박은 워낙 중요하기 때문에 선수들에게 매우 강조하고 그와 관련한 많은 움직임을 요구하는 게 사실이에요. 그래도 선수들이 전방 압박을 위해 자기가 어떤 식으로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스스로 생각을 하게끔 해서 경기에서 자연스럽게 압박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도쿄베르디에 피지컬이 약하거나 스피드가 느린 선수들이 보였는데 팀으로서는 그런 단점들이 잘 드러나지 않았어요.
축구는 팀 스포츠기 때문에 선수들이 자기 강점은 충분히 발휘하도록, 단점은 서로 보완하도록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수로서 도쿄베르디 유스와 감독으로서 도쿄베르디 유스가 차이가 있나요?
제가 선수일 때 도쿄베르디와 지금 도쿄베르디의 차이라고 하면 옛날 선수들이 좀 더 강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지금은 도쿄베르디가 J2리그(2부)에 위치하고 있는데, 제가 유스였을 때는 J1리그에도 간간이 가는 팀이었어요. 그렇게 되면 잘 아시다시피 유스에 모이는 선수풀이 다를 수밖에 없잖아요? 그때가 조금 더 많은 유망주들이 모여있었어요. 물론 J리그 자체가 수준이 올라가서 그때의 J1리그와 지금의 J2리그가 비슷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명확히 그때 선수풀이 더 좋았습니다.
그렇다면 달라지지 않은 전통 같은 것도 있을까요?
도쿄베르디의 철학은 유스를 보물로 여기는 거예요. 구단 전통으로 제가 유스였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내려오고 있죠.
지금 도쿄베르디 1군에도 베르디 유스 출신이 많잖아요.
베르디는 J2리그에서 J리거를 가장 많이 배출한 유스팀이에요. 해외에 진출한 일본 선수들 중에서도 도쿄베르디 유스 출신들이 많이 있고요. 저도 같은 유스팀 출신으로서 굉장히 자부심을 느끼고 있어요.
지금까지는 팀 차원에서 유소년 육성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개인 차원에서 유소년 육성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요?
제가 갖고 있는 유소년 육성 철학은 선수들이 인간으로서 올바라야 한다는 거예요. 성격은 바꾸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경기장 밖에서 인간성은 좋아야 하죠. 사람을 대하는 방법, 물건 관리, 시간 약속 같은 간단한 것부터 시작을 해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사람이 되게끔 노력해야 합니다.
또 하나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감독으로서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는 거예요.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선수들이 도쿄베르디 유스팀에 들어오면 어쨌든 3년은 같이 있어야 하잖아요. 선수들이 실수를 한다고 해서 지적을 강하게 하거나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3년을 바라보고 육성할 수 있도록 참고 견뎌야 해요. 그렇게 하다 보면 선수에게도 충분한 기회가 돌아가고 코치들에게 진실성 있게 응답을 해주는 부분도 생기죠. 선수들을 기다려주고, 경기에서 패하더라도 선수들에게 전가하지 않아야 해요. 결과는 코칭스태프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사진= 풋볼리스트,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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