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빈 생수 페트병 '위험한 물건' 아냐"… 특수폭행·상해 도구 안 돼

최석진 2023. 9. 12.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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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가득 차 있지 않은 빈 생수 페트병은 '위험한 물건'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빈 페트병으로 사람을 폭행하거나 상해를 입히더라도 특수폭행죄나 특수상해죄로 가중처벌할 수 없다는 의미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특수상해 및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조모씨(47)의 상고심에서 특수상해죄가 성립할 수 없다고 보고 상해죄와 스토킹처벌법위반죄 유죄를 인정,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조씨는 2021년 8월 15일 부산 기장군 자신의 입에서 여자친구 A씨(46)와 연락 문제로 다투던 중 화가 나 세탁실에 있던 2리터 용량의 생수 페트병을 가져와 A씨의 눈 부위를 여러 차레 내리쳐 전치 2주의 상해를 가한 혐의(특수상해)로 기소됐다.

이후 A씨는 조씨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연락을 받지 않았다. 조씨는 지속적으로 A씨에게 이메일을 보내거나, 전화를 걸어 연인관계를 계속 유지할 것을 요구했지만 A씨는 조씨의 전화수신을 차단하고 만나자는 요구를 거절했다.

하지만 조씨는 2021년 10월 21일부터 25일까지 A씨에게 만나고 싶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4차례 보냈고, 같은 해 11월 13일 오후 A씨의 직장으로 찾아가 계단에서 퇴근하는 A씨를 기다리다가 A씨를 발견하고 계단에서 내려와 차를 타고 이동하는 A씨를 지켜보기도 했다.

검찰은 2리터 용량의 페트병은 위험한 물건이라고 보고 특수상해와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조씨를 재판에 넘겼다.

1심 재판부는 두 혐의 모두를 유죄로 판단하고 조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보호관찰과 120시간의 사회봉사, 80시간의 스토킹범죄 재범예방교육 수강도 함께 명령했다.

조씨는 페트병에 들어 있는 물을 술상에 뿌린 사실은 있지만 페트병으로 A씨의 눈 부위를 여러 차례 내려친 사실은 없다고 주장했다. 또 설사 페트병으로 내려쳤다고 해도 페트병은 위험한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검찰이 특수상해로 기소한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형법은 위험한 물건을 휴대해서 사람을 폭행하거나 상해를 입힌 경우 그 위험성을 고려해 가중처벌하도록 정하고 있다.

일반 폭행죄의 법정형이 '2년 이하의 징역, 5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인 반면, 특수폭행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상해죄가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되는데 반해 특수상해죄의 법정형은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으로 벌금형이 없다.

스토킹 혐의에 대해 조씨는 A씨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직장으로 찾아간 적은 있지만 이는 A씨에게 사과하기 위해서였고, A씨에게 불안감이나 공포감을 주지는 않았다고 항변했다.

1심 재판부는 조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조씨가 세탁실에 있는 2리터 용량의 페트병 3병을 차례로 가져와 자신에게 물을 뿌리고, 자신을 찔렀고, 어느 순간 맞았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페트병에) 맞아서 피를 흘렸다'는 A씨의 진술이 상당히 구체적이고,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진술하기 힘든 새부적이고 생생한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어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또 재판부는 "A씨가 위증으로 처벌될 것을 감수하고 허위사실을 지어내 조씨에게 불리한 사실을 진술하고 있다고 볼만한 사정이 없고, 범행 직후 현장 및 A씨의 안면을 촬영한 사진에 의해서도 그 신빙성이 객관적으로 뒷받침된다"고 밝혔다.

페트병을 위험한 물건으로 볼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페트병에 물이 들어 있었다면 그 무게가 상당했을 것으로 보이는 점, 페트병의 단단한 뚜껑 부분으로 피해자를 수회 내리치는 것은 사회통념상 상대방이나 제3자의 입장에서 신체의 위험을 느낄 수 있는 정도에 이른다고 볼 수 있는 점, 실제로 범행 직후 피해자의 눈꺼풀 및 눈 부위에 페트병의 뚜껑 부분으로 가격 당한 상처가 선명히 확인되는 점, 피해자의 신빙성 있는 진술에 의하면 범행 당시 술에 취한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죽어라'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피해자를 향해 페트병을 수회 내리치며 흔든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면 형법 제258조의2에서 규정한 '위험한 물건'에 해당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2심의 판단은 달랐다.

조씨 측은 항소심에서 "페트병에 있던 물을 A씨에게 뿌리다가 페트병에 들어있던 물이 거의 다 배출됐을 때쯤 다시 A씨에게 물을 뿌리는 동작을 하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A씨의 왼쪽 눈 부위를 페트병 마개 입구로 한 차례 타격하게 됐을 뿐, 여러 차례 내려친 사실은 없다"고 주장했디.

또 "물이 거의 없는 상태의 페트병은 특수상해죄의 '위험한 물건’'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운 만큼 폭행치상죄나 상해죄가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이 같은 조씨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조씨가 생수가 가득 찬 페트병으로 A씨의 눈 부위를 내리쳤다는 점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그 같은 판단의 근거로는 ▲A씨가 수사기관에서 명시적으로 생수가 가득 찬 페트병에 맞았다는 진술을 한 사실이 없는 점 ▲1심 법정에서 '피고인에게 맞은 것은 뚜껑을 뜯지 않은 새 페트병이 맞는가요?'라는 검사의 질문에 "그것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답변한 점 ▲현장 사진에도 뚜껑을 뜯지 않은 페트병은 보이지 않은 점 등을 들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물이 가득 차 있지 않은 빈 페트병 자체는 피해자나 제3자가 생명 또는 신체에 위험을 느낄 수 있는 물건이라고 보기 어렵다"라며 조씨에게 단순 상해죄 유죄를 인정했다.

2심 재판부 역시 조씨의 스토킹처벌법위반죄는 유죄로 인정했다.

다만 재판부는 ▲조씨에게 벌금형을 초과하는 범죄전력이 없다는 점과 ▲앞으로 더 이상 A씨에게 연락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점 ▲2심 재판 도중 A씨에게 1000만원을 주고 원만히 합의한 점 등을 유리한 양형사유로 참작해 벌금 300만원으로 감형했다.

대법원도 이 같은 2심 재판부의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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