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자랑한 그 기술... 미국 좋은 일만 시켰다 [소셜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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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출]
▲ 윤석열 대통령이 1월 19일 오전(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2023년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다보스포럼) 연차총회에서 '행동하는 연대를 위하여'라는 주제로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 |
ⓒ 대통령실 제공 |
지난 7월 말 프랑스 정부는 전기자동차 보조금 개편 초안을 발표했다. 판매가격과 에너지 효율에 따라 지급하는 기존의 보조금 지급 정책을 바꿔서, 생산에서 운송까지 전체 공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기준으로 보조금 규모를 결정하겠다고 한다. 6개월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7월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화석연료와 장거리 해상 수송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산 전기자동차에는 날벼락이다. 국내 자동차 업계는 이번 조치가 유럽 전체로 확산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 7월 3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올 상반기 우리나라의 유럽연합(EU) 자동차 수출이 56억 200만 달러로 작년 상반기에 비해 56.9% 증가했다고 밝혔다. 전기자동차가 이를 주도했는데, 모처럼 수출 호황을 맞은 한국 전기자동차가 돌연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시대에 역행하는 한국의 재생에너지 정책
이에 대한 한국의 대책은 무엇일까? 8월 25일 한국무역협회는 프랑스 보조금 개편안이 차별적 대우를 금지하는 한국-EU 간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는 의견서를 프랑스 정부에 제출했다. 결과를 기다려 봐야겠지만 한국의 의견은 무시될 것이다. 한국 정부와 무역계가 철칙으로 신봉하는 무역협정의 교리들이 미·중 무역분쟁 이후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명백한 대책은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이미 무너진 무역 교리에 매달리고 있다. 지난 8월 한국수출입은행이 발표한 '2023년 상반기 태양광산업 동향보고서'는 올해 세계 태양광 발전 설치 규모를 360GW(기가와트)로 예상했다. 우리나라는 전체의 0.75%에 불과한 2.7GW로 전망했다. 시대에 역행하는 이러한 수치는 다소 심각해 보인다. 우리나라 기후산업과 일자리에 투자해야 할 자본과 기술들이 한국을 떠나기 때문이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의 국가기후보좌관인 알리 자이디는 올해 1월 "2024년까지 미국에서 매년 33.5GW 규모의 태양광 전지판을 생산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 500만 가구가 매년 사용할 수 있는 양의 청정에너지라고 했다. 미국판 태양광 국산화 선언이다. 그런데 미국의 태양광 국산화를 선도하는 기업은 뜻밖에도 우리나라 기업인 한화큐셀이다.
지난 1월 한화큐셀은 미국에 25억 달러(약 3조 2500억 원) 규모의 태양광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조지아주 카터스빌과 달톤에서 2500명 고용을 시작해 2024년 하반기에 본격적으로 태양광 전지판을 생산한다는 것이다. 한화큐셀은 미국에서 매년 8.4GW 규모의 전지판을 생산하고, 2027년에는 미국 수요의 30%를 공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화큐셀의 투자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은 직접 성명서를 발표하며 "미국 노동자들과 미국 소비자들, 기후를 위한 승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지난 6월 23일 미국 에너지부는 한국 전기차 배터리 기업 SK온과 포드자동차 합작기업 블루오벌SK(BOSK)에 92억 달러(약 12조 원)의 대규모 금융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미국 정부는 이 투자로 켄터키주와 테네시주에 매년 120GWh 규모의 자동차 배터리를 만들고, 4억 5500만 갤런(약 20억 6840만 리터)의 휘발유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 피트 부티지지 미국 교통부 장관(맨 오른쪽)이 지난 3월 3일(현지 시각) 미국 켄터키주 글렌데일 블루오벌SK 켄터키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
ⓒ 미 교통부 |
지난해 8월 16일 미국이 청정에너지 전환을 위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시행한 이래 1년 동안 115개 프로젝트, 760억 달러가 미국에 투자되었다. 미국의 에너지 연구자인 잭 코네스의 데이터에 따르면 우리나라 제조 기업이 총투자의 30%인 220억 달러(약 28조 6천억 원)를 투자해서 2위를 차지했다. 3위인 일본의 16% 투자보다 2배 많다. 코로나 발생 전인 2019년 한국의 대미 직접투자는 벨기에, 싱가포르보다 낮은 14위에 불과했다. 그런데 단 4년 만에 2위로 올라선 것이다.
한국 기후산업의 핵심 자본과 기술은 왜 미국으로 이동할까? 국가 정책에 답이 있다. 미국 정부는 2030년까지 신규 자동차 50% 이상을 전기자동차로 전환하고, 2035년까지 모든 전기에너지의 온실가스를 제로(0)로 만들겠다는 국가 정책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청정에너지 전환에 3690억 달러(약 480조 원)를 투입한다. 기후정책이 실종되어 투자처를 잃은 우리나라 자본과 기술은 이 정책과 예산 때문에 미국으로 빠르게 이전하고 있다.
지난 1월 세계경제포럼(WEF)에 참여한 윤석열 대통령은 특별연설에서 우리나라의 반도체, 이차전지, 철강 등이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기술과 제조역량을 보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당면한 한국의 기후위기는 원전과 수소(그린수소)로 극복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대통령이 자랑한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기술과 제조기술은 우리나라가 아닌 미국의 기후산업을 고도화하고 미국인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
아직도 우리나라의 제조업에 희망은 있을까? 국가 정책에 답이 있을 것이다. 희망을 만들기 위해 큰 비전을 갖고 기후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미국이 그랬듯이 에너지 전환과 기후산업 부흥을 위해 적어도 GDP의 2%인 50조 원을 매년 지원하는 법을 만들고, 제대로 이행해야 미래가 보일 것이다.
다음으로 기후피해 지역 주민들을 보호해야 한다. 기후산업 전환과 기후위기로 재산과 일자리를 잃고 피해에 노출된 주민들을 보호하는 정책이 있어야 한다. 바이든 정부는 '정의 40(Justice 40)'을 통해 정부가 지원하는 기후 예산, 금융, 펀드의 40%를 반드시 기후피해 지역공동체에 혜택이 돌아가도록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그래야 기후산업의 저변이 지역과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일반 국민들도 정책을 지지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블루오벌SK에 92억 달러 금융 지원을 약속하며 조건을 달았다. 미국의 배터리 제조 역량을 더 확장하고, 기후피해 주민공동체에 기술학교, 일자리, 청정에너지 지원 등으로 지원비 40%에 해당하는 혜택을 제공하라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안 하던 일을 미국에서는 하고 있다. 정책이 있고 없고의 차이다.
▲ 오기출 / 푸른아시아 상임이사(소셜 코리아 운영위원) |
ⓒ 오기출 |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오기출 푸른아시아 상임이사 겸 <소셜 코리아> 운영위원은 경제학을 전공하고 1997년부터 기후위기 현장에서 기후난민들의 자립을 지원해온 기후운동가입니다. 국제기후종교시민네트워크(ICE)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고 유엔사막화방지협약 CSO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을 역임했습니다. 관심영역은 △무역에 온실가스가 포함되면서 구성되는 세계질서 변화 △기후위기와 인권, 식량, 전쟁, 테러의 상호 관계 △기후위기로 땅, 공동체가 붕괴된 마을 공동체의 자립과 생태복원입니다. 주요 저서로 <한 그루 나무를 심으면 천 개의 복이 온다>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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