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아의 명문대 진학... 이토록 '뜨거운 마음'의 정체 [난 네게 반했어]
콘텐츠가 넘쳐 나는 시대, 당신에게 딱 맞는 책이나 영화, 노래를 배달해 드립니다. 좋은 콘텐츠를 소개하면서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난 네게 반했어 챌린지'는 다음 필자를 지목하는 릴레이 연재입니다. 글의 마지막 부분을 주목해 주세요. <편집자말>
[조준호 기자]
▲ 영화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 스틸컷. 주인공 사야카의 모습. |
ⓒ 글뫼㈜ |
예전의 나는 꽤 냉소적인 사람이었다. "어차피 사회는 바뀌지 않아",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냥 포기해" 이런 생각을 스스로 체화하면서 살아왔다. 내가 냉소적으로 된 계기는 알 수 없다.
어떤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던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는 가정과 학교로부터, 그리고 사회와 국가로부터 조금씩 쌓인 냉소다. 말은 생각보다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전염성도 강하다. "바뀌지 않아", "아무것도 없어", "포기해" 이 말은 내가 누군가에게 직접 들은 말이기도 하고 직접 내뱉은 말이기도 하다.
이미 마음속에 들어온 말은 주문처럼 되뇌고 또 되뇐다. 어느 순간, 나는 어려움에 부딪히면 금방 회피해버리고 마는 소극적인 인간이 되어있었다. 일상의 사소한 무기력이 눈에 띌 만큼 점점 커졌을 때, 나는 그제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적립된 냉소의 크기를. 그때 내 나이는 서른이었다.
▲ 영화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 포스터 |
ⓒ 글뫼㈜ |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학년 꼴찌가 열심히 공부해서 1년 만에 게이오대학(일본 최고의 사립 대학)에 입학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학창 시절, 어느 학교에서나 있었을 법한 전설적인 일화. 당시 냉소의 화신이었던 나로서는 그다지 흥미롭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이 영화의 정체 모를 기운이 내 시선을 끝까지 붙잡아 두고 있었다. 그것은 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어쩌면 그것은 무기력한 일상에 지친 나에게 일어난 자그마한 변화의 조짐이었을지도 모른다.
감독은 작품의 결말을 영화 초반에 바로 알려준다. 그럼으로써 관객은 주인공 사야카(아리무라 카스미 분)가 게이오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의 기쁨이 아니라 그녀가 1년 동안 공부하는 과정에 좀 더 집중하게 된다. 그저 발랄하고 유치할 것만 같았던 이 영화의 첫인상과 달리 이야기는 담담하고 정성스럽게 사야카의 1년을 보여준다.
사야카는 친구와 사귀는 것이 서툴러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였다. 사야카의 든든한 지원자이자 엄마인 아카리(요시다 요 분)는 그런 사야카를 전혀 나무라지 않고 여러 학교를 옮겨 다니며 사야카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교복이 예쁘다는 이유로 새로 들어간 메이란 여자중학교에서 사야카는 드디어 잘 맞는 친구를 만나 학교생활에 적응해나간다. 하지만 친구들과 너무 놀기만 한 탓에 사야카는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공부와는 담을 쌓은 채 불량소녀가 되어버린다.
그런데도 아카리는 사야카를 이전보다 더 응원한다. 딸에게 실망하는 엄마가 되기보다 다양한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학원에 다니게 할 뿐이다. 그곳에서 사야카는 츠보타 선생님(이토 아츠시 분)을 만나게 된다. 아카리만큼이나 밝고 긍정적인 츠보타는 잘생긴 남학생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미끼로 사야카에게 게이오대학을 목표로 하자고 제안한다.
▲ 영화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 스틸컷. 사야카와 엄마 아카리의 모습. |
ⓒ 글뫼㈜ |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아카리와 츠보타, 두 인물이었다. 나와는 정반대에 있는 그 두 사람의 모습을 보는 것이 웬일인지 불편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평소의 나였다면 그들에게 냉소의 한 마디, 당장이라도 일침을 놓았을 텐데, 이번에는 전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실화라고 하니 "이건 현실성이 없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저 사야카가 부러웠다. 아카리와 츠보타, 그들이 내 곁에도 있었다면 나는 지금과 다른 인생을 살았을까. 이 물음은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남아 해답을 갈구했다.
나는 내 주위를 둘러봤다. 이 영화의 시선처럼 담담하고 정성스럽게. 비뚤고 꼬이지 않은 태도로 가만히 응시해 보기로 했다. 그러자 그동안 내가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의 가시 돋친 말에 상처받고 떠나간 많은 사람과 그런데도 내 옆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의 슬픈 표정과 쓸쓸한 뒷모습이 여전히 내 기억에 남아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여태 그것을 모른 척하고 있었던 걸까. 정말이지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라는 핑계로 소중한 인연을 무심히 대했던 과거의 철없는 행동이 점차 후회되었다.
원래 그렇다는 것을 이해해 줄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그처럼 무책임한 말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명심하자, 누군가는 나를 응원하고 있다. 아카리와 츠보타는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그들의 감사함을 잊지 말자고 혼자서 반성하고 다짐했다. 분발해야 할 것은 나 자신뿐이라고.
▲ 영화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 스틸컷. 사야카와 선생님 츠보타의 모습. |
ⓒ 글뫼㈜ |
결국, 변화한 것은 사야카다. 강한 의지를 갖고 목표를 향해 달려간 것은 이 영화의 주인공 사야카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아카리와 츠보타는 변화의 촉매제 역할을 훌륭하게 해주었지만, 그것을 받아들인 사야카의 노력이 없었다면 이전과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한순간, 이제 사야카는 학교로부터 낙인찍힌 불량소녀가 아니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가능성의 바다 한가운데 놓인 사야카는 마음만 먹으면 어디로는 갈 수 있는 것이다.
기초 학습 능력이 부족한 사야카는 초등학교 수준의 공부부터 시작한다. 천천히 하나씩 배워나가며 비로소 공부의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 사야카지만, 언제나 좋은 일만 일어나지는 않는다. 아무리 해도 늘지 않는 성적과 심리적 압박감, 아빠와의 불화로 때때로 절망을 느끼기도 하지만, 사야카는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마침내 게이오대학에 합격한다.
심드렁하게 영화를 보기 시작했던 나는 어느새 사야카의 힘겨운 레이스를 응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내가 누군가를 이토록 응원했던 적이 있었던가. 냉소적인 걸 시크하다고 착각했던 내가, 누구보다 쿨하다고 자부했던 내 마음이 이토록 뜨거웠던 적이 있었던가. 가슴이 두근거렸다. 온몸에 피가 돌았다. 사야카의 가능성을 보면서 나는 무척이나 기쁘고 반가웠다. 나에게도 가능성이 생겼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할 수 있다는 믿음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고등학생 때 좋아했던 국어 선생님의 권유로 나는 작가라는 꿈을 가지게 되었지만, 사야카처럼 노력하지 않았다. 어려움에 봉착하면 쉽게 포기했고 항상 나중으로 미뤘다. 그렇게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는 제대로 된 글 한 편 쓰지 않았다. 내가 여전히 작가 지망생일 수밖에 없는 구차한 변명을 하며 또, 남 탓을 했다. 이제는 변해야 한다. 10년을 또, 아니 평생을 그렇게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냉소는 가능성을 가로막는다. 누군가로부터 "너는 안 돼"라는 얘기를 듣는다면 이제부터 당당하게 거절하자. 그리고 누군가에게 "너는 안 돼"라는 얘기도 함부로 하지 말자.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무조건적인 긍정이 아니다. 진심으로 상대방에게 선의를 가지고 응원해주고 싶다면 현실적인 조언과 구체적인 방법을 친절하게 알려주자는 것이다. 그것이 힘들다면 적어도 저주의 말을 퍼붓지는 말자. 아무도 누구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은 없다.
사야카의 변화는 단지 사야카만의 변화가 아니다. 사야카의 변화로 인해 우선 내가 변했다. 이 영화를 본 수많은 사람의 마음에도 적잖은 심적인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변한 내가, 뭐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모두에게 있는 힘껏 전달하려 한다. 말은 생각보다 큰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 말이 모두에게 전염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 다음 필자는 김소영 작가입니다. 나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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