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30여 년, 참 많은 일을 한 아내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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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규현 기자]
아내가 최근에 손마디가 뻐근하다고 하여 오랜만에 아내의 손을 마사지해 주었다. 어느새 아내의 손마디는 많이 굵어지고 거칠어져 있었다. 세월이 흐른 탓도 있지만 왠지 남편인 내 탓인 것만 같아서 가슴 한 켠이 아려왔다.
▲ 아내의 손등 거칠고 투박하지만 아름다운 손이다. |
ⓒ 곽규현 |
결혼 초, 아내는 직장을 다니다가 아들, 딸이 태어나면서 직장일과 육아를 병행하기가 여의찮아서 일찌감치 퇴직했다. 이후에 빠듯한 살림을 꾸리면서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아이들을 키우고, 집안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요리와 설거지를 했다. 100평 남짓 되는 제법 큰 규모의 텃밭을 가꾸면서 농사일도 했다.
가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 짬짬이 아르바이트도 했다.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 등 집안에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본가에 가서 부엌일을 도맡아 했다. 아내는 미처 자신의 몸을 가꾸고 돌볼 여유를 갖지 못했다. 오로지 가족과 가정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아내에게 가장 미안하고 가슴 아픈 것은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남편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집안의 3남 1녀 중 막내였지만, 이런저런 집안 사정으로 본가의 부모님을 주도적으로 모셔야 하는 입장이었다. 수시로 아내와 함께 부모님을 찾아봬야 했으며 생활비를 챙겨드려야 했다.
그런데도 어머니와 아내의 관계는 원만하지 못했다. 두 사람 간에는 항상 불편한 냉기류가 흘렀다. 어머니는 연애 시절에 아내를 본가에 처음 데려가서 인사를 시킬 때부터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으셨다. 속 시원하게 말씀을 안 하시니 구체적인 이유를 알 수는 없으나 어머니 마음에 들지 않는 뭔가가 있었을 것이다.
▲ 아내의 손바닥 거칠고 투박하지만 아름다운 손이다. |
ⓒ 곽규현 |
설이나 추석 명절이 다가오면 아내는 며칠 전부터 두통에다 몸에 이상 증세가 나타났다. 성격도 평소보다 예민해졌다. 매년 주기적으로 명절증후군을 앓았다. 나는 아내의 이상 증세보다 부모님의 심기가 불편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더 신경을 썼다.
명절이나 부모님의 생신 때는 빠짐없이 당연히 본가에 가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어떻게든 아내를 설득하고 달래서 본가에 데려갔다. 한 번쯤은 빠질 수도 있었으련만 고집스럽게 부부 동행을 계속했다.
아내는 불안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따라나서지만 본가에 가서는 크게 내색하지 않고 부엌일을 하며 부모님 기분을 맞춰드리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늘 그렇듯 아내에게는 퉁명스럽고 냉담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아내에 대한 마음이 다소 누그러지셨다. 어머니가 임종을 앞 둔 몇 해 전, 추석에 어머니를 뵈었을 때 어머니는 몸이 많이 쇠약해져 계셨다.
아내는 따뜻하게 물을 데워서 쇠약해진 어머니의 몸을 깨끗하게 목욕시켜드리고 닦아드렸다. 그날 밤 아내는 말없이 눈물을 보였다. 어머니가 목욕 중에 '네가 목욕을 시켜주니 정말 개운하구나' 하시면서 아내의 손을 꼬옥 잡아주셨다고 한다.
아내의 마음고생, 몸고생을 생각하면 가슴 아프다. 아내는 천성이 착하고 생활력이 강해서 누구에게 싫은 소리 한번 못하고 억척스럽게 살았다. 진작에 아내의 마음을 헤아리고 어루만져주지 못한 후회가 밀려온다.
아내의 손은 거칠고 투박하지만 나에게는 가장 아름답고 소중하다. 이제는 가능하면 아내의 손에 물을 묻히게 하고 싶지 않다. 내가 아내의 손을 관리해 줘야 한다. 아내가 편해야 나도 편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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