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임시완, 처연하고 단단한 어깨로 짊어진 '1947 보스톤'
하정우·임시완, 손기정·서윤복役 열연
감동과 신파 사이…경쾌하게 그린 시대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충무로를 이끈 강제규 감독이 마라토너 손기정·서윤복의 실화를 스크린에 옮긴다. '장수상회'(2015) 이후 8년 만이다. '1947 보스톤'은 2019년 9월 촬영에 돌입해 2020년 1월 말 크랭크업했다. 3년여 만에 관객과 만나는 영화다. 신파·국뽕 등 최근 관객들이 '거르는' 요소는 충분하나, 오랜 후반작업을 거치며 공을 들였다. 마라톤 장면 등 불필요한 거품을 과감하게 걷어내고, 세련되게 매만진 만듦새가 눈에 띈다. 기대감을 갖기 충분한 캐스팅이다. 배우 하정우가 손기정으로 분해 극을 단단하게 지탱하고, 임시완의 패기가 에너지를 발산한다. 혼신의 연기로 극을 빛내는 배우들의 활약이 돋보이는 영화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운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하정우 분)이 있다. 기미가요가 울려 퍼지는 시상대에서 화분으로 가슴에 단 일장기를 가렸고, 더는 달릴 수 없게 된다.
1947년 서울, 광복을 맞았지만, 살림살이는 팍팍하다. 3남 3녀의 막내로 태어난 서윤복(임시완 분)은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다. 어머니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돈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한다. 운동화 한 켤레 살 돈도 없는 형편이지만, 상금을 받기 위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1위를 거머쥔다. 그의 앞에 손기정이 나타나 보스톤 마라톤 대회에 함께 나가자고 제안한다.
우여곡절 끝에 손기정·남승룡(배성우 분)은 서윤복과 함께 보스톤 마라톤 대회에 나선다. 일본에 귀속된 베를린 올림픽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목표도 가슴이 새긴다. 머나먼 땅 미국 보스톤, 노랑머리 외국인들은 한국이 어디에, 어떻게 생긴 지도 모르던 때가 있었다. 막막하기만 하던 시절, 세 사람은 오로지 하나의 목표를 위해 목소리를 높인다. 이들의 목소리는 역사에 기록되고, 서윤복은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질주한 마라토너가 된다.
당시 시대 배경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역사를 쓰는 국민 영웅 이야기는 신파, 국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영화는 이를 의식한 듯 감정이 과잉되는 지점에서 과감하게 자르고, 의도적으로 애국심을 고취하려 하지 않으려 애쓴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난민국으로 분류된 상황에서 손기정, 서윤복, 남승룡이 재정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고, 성조기가 아닌 태극기를 가슴에 달기 위해 분투하는 장면은 신파적인 색이 짙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달라진 극장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최근 '신파영화', '국뽕영화'로 낙인이 찍히면 철저히 외면하는 분위기다. 이를 의식한 듯 '1947 보스톤'은 장면 장면을 경쾌하게 밀고 나간다. 그런데도 호불호는 갈릴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추석 가족끼리 즐기기 무난한 영화라는 인상을 준다.
영화를 보고 관객석에서 일어날 때 머릿속에 가장 강렬하게 남는 건 서윤복으로 분한 임시완의 얼굴이다. 임시완은 '1947 보스톤'의 최대의 수확이자 성과다. 최근 영화계에서는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젊은 배역마저 나이 든 배우가 연기해 어색하다는 반응. 안정적 투자 등을 고려할 때 젊은 배우를 과감하게 기용하기란 쉽지 않다. 무비 스타의 탄생은 옛말이 됐다. 이러한 우려를 임시완이 비웃기라도 하듯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2019년 프러덕션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임시완의 캐스팅은 과감했다. 결과적으로 서윤복의 캐스팅은 신의 한 수가 됐다.
임시완은 얼굴 세포로, 앙상한 팔다리, 처연하게 다부진 어깨 근육으로도 연기를 한다. 이는 서윤복이 되기 위한 배우의 피땀 눈물이 배어 있는 노력의 결과다. 그는 샐러드, 닭가슴살만 먹으며 운동에 매달렸고, 마라토너의 외형을 실감 나게 표현할 수 있었다. 그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서윤복도 없었을 터다. 하정우의 기세에 밀리지 않는 에너지도 탁월하다. 러닝타임 108분. 12세 관람가. 9월27일 개봉.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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