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종교 소굴에 잠입한 기자, 기이한 상황을 목격하다

김성호 2023. 9. 12.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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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538] <신체모음.zip>

[김성호 기자]

주말을 맞아 홍대 앞 어느 공연장에서 밴드공연을 보았다. 데디오레디오(Daddy O Radio)라는 밴드의 공연으로, 목도 마른데 좋아하는 맥주도 잔뜩 마실 겸 하여 공연장을 찾은 것이다. 아마도 이 밴드의 팬들일 관객들은 음악이 나올 때면 몹시 들끓었다가 연주가 끝나면 사그라들기를 반복하였다. 음악은 낯선 것 같으면서도 친숙했고 사람들은 투박한 듯 하면서도 순수하게 보였다.

공연을 즐기던 중 귀를 사로잡는 멘트 하나가 흘러나왔다. 공연을 하는 밴드 멤버 중 하나가 영화배우 일도 겸업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새삼 바라보니 듬직한 체형에다 표정에 따라 다채로운 인상을 낼 수 있을 듯한 얼굴이어서 나는 그가 어떤 영화에 나왔는지 궁금하였다. 밴드활동을 하며 배우로도 연기하는 사람, 톰 웨이츠 같은 가수도 배우로 활동했다지만 직접 눈 앞에서 본 이 중에선 처음이었다. 그의 이름은 이교형이다.

밴드의 소개로 나는 그가 출연했다는 영화를 알게 되었다. <신체모음.zip>이라는 영화로, 최근 개봉해 상영 중이라 했다. 공연에는 이 영화의 감독도 와 있다고 했는데, 나는 문득 배우가 아닌 음악가로 먼저 접한 이의 연기가 내게 어떤 감흥을 일으킬지가 궁금하였다. 그리하여 관객이 아무도 없던 인천의 어느 상영관에 들어가 이 살벌한 영화를 보기에 이른 것이다.
 
▲ 신체모음.zip 포스터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옴니버스로 몰아치는 공포의 향연

<신체모음.zip>은 공포영화다. 하나의 이야기로 얽히는 듯 보이지만 하나하나 따로 떼어놓고 보아도 좋을 옴니버스 공포영화다. 제목의 zip이 압축파일을 떠올리게 하는 것처럼, 영화는 각각의 단편이 모여 하나를 이루를 작품인 것이다. '신체모음'이라는 것은 각 영화를 묶는 공통된 소재로, 영화는 사이비 종교 신도들이 제 종교의 신이며 교주쯤이 되는 이에게 바치는 누군가의 신체를 모으는 이야기라 하겠다.

영화는 모두 여섯 개의 작은 에피소드로 이뤄졌다. 여섯 명의 감독이 각각 연출한 영화는 <토막> <악취> <귀신 보는 아이> <엑소시즘 유튜브> <전에 살던 사람> <끈>으로, 나머지 다섯 편의 에피소드가 <토막> 한 편으로 모여드는 형식을 이룬다. 영화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공포를 자아내는데 속도감 있는 에피소드가 끊이지 않고 이어져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다.

최원경이 연출한 <토막>은 사이비종교 행사에 잠입취재를 하는 방송국 기자 시경(김채은 분)의 이야기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이 이야기는 선배의 등쌀에 밀려 홀로 사이비종교 소굴에 잠입한 초년생 기자가 마주하는 기이한 상황이 긴장을 자아내는 요소다.

앞서 적은 밴드 데디오레디오의 이교형도 여기 등장하는데, 그는 다른 신도들과 함께 어렵게 구한 누군가의 신체를 들고 기도를 올린다. 제게는 낯선 공간에서 제 정신이 아닌 듯한 이들이 이해하지 못할 의식을 치르는 광경, 심지어 그들이 가져온 물건이 주는 섬뜩한 인상이 관객을 시경이 느끼는 공포 가운데로 몰아간다.
 
▲ 신체모음.zip 스틸컷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각각의 장기로 승부를 걸어오는

다음 <악취>는 독립된 단편 가운데선 가장 앞에 등장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만큼 잘 만들어졌다는 자신감이기도 하겠는데, 악귀 들린 물건을 매개로 귀신이 들린다는 오래된 공포물의 구성을 그대로 차용했다. 코와 귀 같이 밖으로 돌출된 신체가 잘리는 이미지는 그 자체로 같은 신체를 가진 인간에게 공포를 자극하게 마련이다. 고립된 여성이 차츰 파멸해간다는 설정이 그리 새롭지는 않지만 상당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전병덕 감독의 연출과 아직 한국 영화팬에겐 낯선 권아름이란 배우의 연기도 즐길만한 요소다.

이광진이 연출한 <귀신 보는 아이>는 영화의 중간 즈음 등장해 호러액션을 담당한다. 스크린 위에 제 몸을 드러낸 귀신들이 영화 속 악당들을 공격하는 장면이 다채롭게 등장한다.

지삼의 연출작 <엑소시즘.넷>은 기독교 학생들이 빙의된 친구를 구하려 구마행위를 하는 과정을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 담아낸 작품이다. 다른 작품들처럼 기존 공포영화의 양식을 그대로 답습한 구석이 역력하지만 엑소시즘이 가진 힘을 영화 가운데 녹여내 그럭저럭 흥미를 자아낸다.
 
▲ 신체모음.zip 스틸컷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낯선 배우들의 인상적인 연기

김장미의 <전에 살던 사람>은 제법 인상적이다. 조우리가 연기한 102호 입주민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평범한 피해자로 그려졌고, 누가 귀신인지 도움을 주는 사람인지를 끝까지 알 수 없게 하는 장치도 적절히 작동해 한 편의 단편으로서 제 역할을 해낸다. 쉽게 깨질 것 같으면서도 지켜졌으면 바라게 하는 선함을 조우리가 보여주었다면, 202호 입주민을 연기한 임성재와 앞서 102호 주민이었던 이를 연기한 소희정 역시 제가 맡은 배역을 모자람 없이 소화한다.

서형우의 <끈>엔 다른 작품들보단 익숙한 배우가 출연한다. 영화와 드라마에 왕성하게 출연해 온 김민석 배우는 참신한 설정의 이 단편 대부분을 안정되게 이끈다. <쏘우>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설정이 흥미로운 이 단편으로부터 관객은 표면 뒤에 감춰진 무엇의 가능성을 거듭 의심하며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신체모음.zip>은 흥미로운 영화다. 기존의 공포물에 비해 파격적인 시도를 감행하거나 강렬한 인상을 주지는 못할지라도 가을로 넘어가는 계절 볼 만한 공포물은 되는 것이다. 특히 서로 다른 분위기를 주는 다양한 단편이 한 데 묶여 또 하나의 큰 줄기로 맺어지는 설정 또한 영화에 무게를 더한다. 아쉽다면 각 단편이 서로 다른 배우를 쓰는 탓에 하나로 묶는 힘이 약하다는 점이겠으나 그건 그대로 새로운 얼굴과 만나는 재미를 주는 것이어서 내게는 적잖이 만족스러웠다고 하겠다.

이교형, 김채은, 조우리, 임성재 등 일반에는 아직 낯선 배우들의 열정 담긴 연기를 보고 있자면 세상엔 여전히 달성되지 못한 꿈과 이뤄지지 못한 열망 따위가 흩어져 있는 것이어서, 나는 이와 같은 것들을 끈기 있는 시선으로 오랫동안 지켜보고 싶다는 어떤 작은 마음을 품어보게 된다.
 
▲ 데디오레디오 가운데가 배우 이교형
ⓒ 데디오레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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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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