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갈매기] 집중력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설 이것, 무섭습니다
부산 지역 시민기자들이 일상 속에서 도전하고, 질문하고, 경험하는 일을 나눕니다. <편집자말>
[박정선 기자]
나의 집중력 상태는?
10초 자가 진단 테스트
1. 한 가지 주제로 하는 대화를 계속해서 나누지 못한다.
2. 우리가 보는 영상이나 포털사이트 정보는 모두 공짜, 많이 보는 게 이득!
3. TV와 휴대전화를 둘 다 켜놓고 번갈아 가면서 본다.
4. 글이나 책을 읽다가도 중간중간 다른 할 일이 계속 생각난다.
5. 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 포털사이트 등을 습관적으로 왔다 갔다 한다.
6. 무한스크롤에 빠지면 헤어나기 힘들다.
7. 유튜브 영상을 보다 보면 몇 시간이 금방 간다.
8.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늦어지고 아침에 일어나면 개운하지 않다.
9. 영상은 필요한 부분만 스킵(건너뛰기)해서 보거나 2배속으로 본다.
10. 일과를 끝내고 TV나 휴대전화를 보며 늘어져 있는 것이 재충전하는 방법이다.
위의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한 개수는 몇 개인가요? 체크한 것이 많을수록 우리의 집중력은 이미 많이 사라진 상태라고 합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요?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든 걸까요?
집중력을 도둑 맞았어요
얼마 전 '빼앗긴 집중력을 되찾아 위기의 지구를 구하자'라는 책 소개 기사를 보았어요. 이 책은 제가 활동하는 시민기자 단톡방에서도 화제였는데요. 네, 바로 '집중 맞은 도둑력'이란 책입니다. 엥? 뭔가 이상한가요? 하하하.
▲ 어크로스 출판사의 한정판 북커버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 인기가 좋았다는 북 커버 '집중맞은 도둑력' |
ⓒ 어크로스 출판사 |
실제 책을 읽다 보면, '어머? 이거 내 얘기잖아?' 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링크된 기사를 읽어보면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집중력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잘 나옵니다. 위에 테스트 내용도 책에 있는 내용과 실제로 저한테 일어난 변화를 떠올리며 만들었고요.
이렇게 만든 범인은 우리 모두 다 알고 있는 바로 그놈(?)... 네, 휴대용 컴퓨터인 스마트폰입니다. 오른손잡이인 저는 어느 날부터 왼쪽 어깨가 아팠습니다. 알고 보니 휴대전화를 왼손에 쥐고 보는 것 때문이었죠. 일자목, 거북목을 지나 이제는 등에 버섯까지 하나 달고 다니게 생겼습니다(버섯증후군, 뒤 목덜미 주변에 혹처럼 불룩하게 솟아난 것).
그런데 겉으로 보이는 몸에만 변화가 생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뇌 안에서는 더 심각한 문제가 만들어지고 있었어요. 집중력, 바로 이 집중력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책에 의하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을 때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이 집중력이라고 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수면 시간이 줄면 우리 몸은 그 상황을 '비상사태'로 받아들여 전시 상황이 된다고 해요. '어, 잠을 줄이네. 뭔가 일이 생긴 게 분명해'라며 어딘가에 진득하게 집중할 수 없는, 각성상태로 만든다고요.
'자자, 비상 상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온갖 생리적 변화를 일으켜야겠어. 혈압을 올리자. 심박수도 올리고. 빠르게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도록 당을 더 먹고 싶게 만들어야 해. 빨리, 얼른 먹게 만들어.'
이런 명령이 떨어지면 물 끓고 10분 만에 완성되는 라면을 야식으로 즐기고, 이미 있는 단맛도 모자라 설탕물까지 입힌 과일(탕후루)을 와자작 깨 먹게 됩니다.
잠을 많이 못 자거나, 깊이 못 자는 것은 먹고 싶은 음식부터 달라지게 만든다니까요. 아침에 일어나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모든 것을 관장하는 뇌는, 먹고 자는 것을 통해 원래의 기능을 회복하는데도 몸에 안 좋은 것을 알아도 자제하기 점점 힘들어집니다.
게다가 요즘에는 ADHD를 진단받는 금쪽이들이 많아졌죠. 대부분 그 원인을 생물학적 문제(유전이나 뇌의 문제)로 생각하는데요. 아니랍니다. 대량의 정보를 엄청난 속도로 받아들이는 스마트폰이 원인이라는 거죠. 정보 하나에만 집중할 수 없게 하니까요.
그런데 책에 따르면, 호주의 중독치료 의사인 네이딘 에자드는 더 큰 문제가 숨어 있다고 합니다. 그건 ADHD 진단을 받은 아이들에게 약물치료가 너무 쉽게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뇌는 그 약에 가장 취약하기 때문에 정말 신중해야 하는데 말이죠. 우린 그냥 스마트폰을 계속 사용했을 뿐인데 이상한 변화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어요.
▲ 필사 맘에 드는 글귀는 천천히 써 보기도 한다 |
ⓒ 박정선 |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인들에게 종종 책 추천을 받는데 <공부중독>이란 책이 있었어요. 우연히도 저는 그 책 서문에서 이 문제의 해결책을 발견했습니다. 공부하는 것을 정말 좋아했던 '공부중독' 작가는 어느 날 자신이 한 마리 원숭이가 된 느낌을 받았다며 이런 말을 합니다.
강의실에 들어서면 나는 한 마리의 '똑똑한 원숭이'가 된 느낌이다. 내가 펼치는 화려한 언변과 풍부한 사례에 학생들이 감탄한다. 그런데 그 감탄하는 눈동자들 속에서 배움과 성장을 찾기가 힘들다. 짝짝짝, 서커스를 보고 박수치고 사라지는 느낌이다... (중략) 배우는 학생들의 입장은 어떨까..?배우긴 배우는데 뭘 배우는지 모르겠고, 배웠기는 배웠는데 할 줄 아는 건 없다. 배워서 알면 그 아는 것을 익혀서 할 줄 아는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할 줄 아는 것으로 만드는 익힘의 과정은 공부에서 실종된 지 오래다. 그래서 나보다 잘난 원숭이가 떠드는 말을 머리에 채워 넣기 위해 서둘러 다른 강의실로 떠난다.
하루 종일 앉아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생각났어요. 배웠으니 익혀야 하는데 배우기만 하는 학생들. 배운 내용을 익히지는 않고 더 잘난 원숭이가 떠드는 말을 채워넣기 위해 서둘러 다른 강의실로 떠나는 저의 모습과도 겹쳐 보였습니다. 언제부턴가 저도 책을 읽고 나면 그 내용을 곱씹어 보기도 전에, 얼른 요약 정리해 놓고 다른 유명한 책을 찾아 읽기 바빴거든요.
'곱씹고 몰입해야 할'이라는 말이 올 초부터 계속 와 닿았는데도 말이죠. 그러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구나' 하게 되었죠(책에서도 몰입의 대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 긴 호흡의 소설을 읽는 연습을 합니다 그리고 한 권의 책을 천천히 읽는 연습도요. |
ⓒ 박정선 |
아마도 급변하는 사회를 빨리 따라잡을 수 있는 자기 계발서를 계속 읽어 왔던 환경이 긴 호흡의 소설을 읽으면서 자꾸만 불안감을 불러오는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다시 집중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휴대전화를 쥐고 있던 손에 소설책을 거머쥐려고 말이죠.
하지만 휴대전화를 드는 순간엔 별 수 없이 멀티태스킹(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 한때는 그것이 능력이라고 생각했던)을 하게 됩니다. 너무 오래 그렇게 길들여졌고, 또 인제 와서 전화기로 통화만 할 수도 없는 시대니까요.
하지만 알았으니 달라지긴 해야 합니다. 안 그래도 나이 들면 사라질 집중력을 나서서 없애지는 말아야죠. 상상만 해도 무섭지 않나요? 집중력이 사라진 그 자리를 '인지 장애'(기억력, 판단력, 언어능력, 시공간 파악 능력 따위의 인지력에 결함이 있는 상태)가 대신하는 것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맨 앞에 나온 10개의 질문을 푸는 게 아니라 이해조차 하기 힘들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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