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를 보며 우리의 미래를 상상하다 [가자, 서쪽으로]
[김찬호 기자]
기차를 타고 덴마크에 도착했습니다. 함부르크에서 코펜하겐까지는 다섯 시간 가까이 기차를 타야 했습니다.
긴 시간 기차를 탔지만 별로 달라질 것은 없었습니다. 국경에서는 경찰이 올라타 잠시 신분증을 확인했지만, 그것으로 전부였습니다. 다만 달라진 것은 그간 써온 유로화 대신, 덴마크 크로네라는 다른 화폐를 사용한다는 것 정도였을까요.
하지만 코펜하겐을 조금 돌아본 뒤, 덴마크의 모습은 독일과는 많은 면에서 다르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 카스텔레 요새 |
ⓒ Widerstand |
통일 뒤 덴마크는 급격히 성장했습니다. 노르웨이의 왕위를 장악했고, 11세기에는 잉글랜드를 침공하기도 했죠. 잉글랜드의 애설레드 2세는 노르망디로 도주했습니다. 덴마크의 왕이 노르웨이, 잉글랜드의 왕을 겸하는 '북해 제국'을 경영하게 된 것입니다.
▲ 뉘하운 운하 |
ⓒ Widerstand |
이 시기에 성장한 지도자가 바로 마르그레테입니다. 마르그레테는 발데마르 4세의 막내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들인 올루프 2세를 덴마크 왕위에 앉히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덴마크 왕의 섭정이 되어 정치적 실권을 장악했죠.
마르그레테의 성장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노르웨이 국왕이 사망하면서 올루프 2세가 노르웨이 국왕도 겸하게 되었죠. 올루프 2세는 17세의 나이로 요절했지만, 마르그레테는 포메른 출신의 에리크를 양자로 들였고, 자신의 정치력을 총동원해 그를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왕으로 앉혔습니다.
마르그레테는 곧 스웨덴의 내분을 틈타 스웨덴의 통치권도 장악했습니다. 이렇게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의 국왕 자리를 마르그레테의 양자인 에리크가 차지했습니다. 물론 실질적인 정치 권력은 마르그레테에게 있었죠.
▲ 로젠보르크 궁전 |
ⓒ Widerstand |
덴마크의 지배를 받던 노르웨이도 나폴레옹 전쟁 이후에는 스웨덴에 편입되었습니다. 오랜 기간 경영해 온 다른 식민지도 하나둘 상실했습니다. 덴마크는 인도나 서아프리카, 카리브 해에도 작지만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거든요. 2차대전기에는 아이슬란드까지 덴마크의 지배에서 독립했습니다.
▲ 덴마크군 해외 파병 사망자 추모비 |
ⓒ Widerstand |
그렇게 보면 덴마크는 분명 강대국은 아닙니다. 강력한 외교력을 가진 패권국가는 아니지요. 독일이나 영국, 미국처럼 자유세계를 견인하는 국가라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 “블랙 다이아몬드”로 불리는 덴마크 왕립도서관 |
ⓒ Widerstand |
제국의 해체를 누군가는 쇠락이나 몰락이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작은 영토와 적은 국민으로는 더 이상 아무 것도 전진할 수 없다고 말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도 덴마크는 많은 이들이 롤모델로 삼는 선진적인 국가를 만들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미래라고 이렇지 말라는 법은 없겠죠. 우리가 꿈꾸는 미래의 모습은 독일의 모델과 유사합니다. 넓은 국토와 많은 인구, 강력한 생산 능력과 경제력을 기반으로 국제 사회에서 영향력을 떨치는 국가가 되기를 바라죠.
하지만 성장의 분수령을 넘은 우리도, 이제는 새로운 선진국의 형태를 상상할 때가 온 것은 아닐까요? 누군가는 쇠락이나 몰락이나 말할 지라도, 그곳에 새로운 길이 있을지 모릅니다. 독일이 아닌 덴마크를 보며, 우리가 갈 수 있는 미래의 모습을 잠시 상상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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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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