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향, 동경하는 프리다 칼로를 닮아간다는 것 [D:인터뷰]
2001년 ‘가스펠’로 데뷔한 23년차 배우 김소향에게 누군가는 운이 없다고, 또 다른 누군가는 운이 좋다고 말한다. 전자의 경우는 데뷔 초부터 연기와 노래, 춤까지 남다른 기량을 가졌음에도 앙상블 생활만 7년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앙상블을 하면서 늘 주역의 커버를 맡았다는 점이 후자의 이유다.
그런데 김소향의 커리어를 단순히 ‘운’으로 치부하긴 어렵다. 그는 업계에서도 타고난 노력형 배우로 정평이 나 있다. “독기가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는 김소향의 말처럼 그는 무대에 있어서만큼은 지치는 기색을 보인 적이 없다. 막 주연급 배우로 자리 잡기 시작한 2011년, 돌연 미국 유학길에 떠난 것도 그렇다.
김소향은 “대부분의 한국 뮤지컬 제작사 작품에 출연하다 보니 어느 순간 제작진이 궁금해하지 않는 배우가 된 것 같아 슬펐고 (배우 생활을)오래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불현 듯 들었다”며 “배우로서 부족함을 느끼던 터라 과감히 유학을 떠났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김소향에 따르면 그는 부족한 영어 실력을 채우느라 평일엔 새벽 5시 전에 잠든 일이 거의 없었고, 현지 뮤지컬 오디션의 마지막 관문에서 번번히 탈락하면서 좌절도 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끝에 2013년 시카고에서 공연된 ‘미스 사이공’에서는지지 역을, 2017년엔 ‘시스터 액트’ 아시아 투어 공연에서 메리 로버트 역을 맡는 등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리고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돌아온 한국이지만, 그의 노력들은 기어코 ‘기회’를 만들어냈다. 여러 기회 중에서도 뮤지컬 ‘프리다’는 유독 그에게 애틋한 작품이다. 그는 ‘프리다’가 2020년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에서 트리아웃 공연(시험 공연)을 선보일 때부터 이 작품과 함께 했고, 지난해 소극장 규모의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의 초연에도 당연히 타이틀롤로 무대에 올랐다.
“‘프리다’에 대한 저의 마음은 제작사와 계약한 배우의 느낌보단, 제작팀에 포함된 느낌이에요. 어떤 공연보다도 더 에너지를 쏟고 있는 공연이기도 하고요. ‘내 안에 있는 내장까지 다 끄집어내서 공연하는 유일한 작품’이라고 말하기까지 할 정도니까요. 원래 같은 역할에 더블, 트리플 캐스팅 된 배우들 사이에선 ‘내가 제일 잘하고 싶다’는 바람이 들기 마련인데, ‘프리다’만큼은 모두가 잘하는 공연이었으면 좋겠더라고요. 음악부터 극본까지 추정화 연출에게 의견을 제안하고 보완하는 과정도 거쳤어요. 김히어라 배우를 프리다 역에 추천한 것도 저였고요(웃음).”
‘프리다’는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가 인생 마지막 순간 ‘더 라스트 나이트 쇼’에 게스트로 출연해 생애를 되돌아보는 형식으로 그려진다. 교통사고를 당해 죽음을 목전에 둔 순간, 연인 디에고 리베라와의 결별 등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예술과 삶을 사랑한 프리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김소향은 프리다 칼로 사랑은 이미 유명하다. 이 작품에 출연하기 전부터 그의 그림을 집에 걸어둘 정도로 ‘빅팬’이었다.
“워낙 프리다의 빅팬이다 보니 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추정화 연출이 프리다에 대한 극을 쓰고자 했을 때 제일 먼저 저를 찾아왔고요. 그 과정에서 제가 동경하며 생각했던 그의 모습, 그러니까 프리다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는지, 현실의 벽을 맞닥뜨릴 때 어떻게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키고, 다시 일어서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이 나왔어요.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생각하고 연기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하이라이트인 프리다의 독무 역시 김소향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장면이다. 추정화 연출과 김병진 안무 감독에게 ‘미친 듯이 춤을 추는 작품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한 것이 독무 장면이 된 셈이다.
“저는 어려서부터 종합예술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연기만이 아니라 노래와 춤까지 추는 그런 예술. 그래서 ‘프리다’가 너무 좋아요. 사실 ‘춤 좀 추게 해달라’고 해서 독무 작면이 나왔는데, 막상 초연할 때는 이 장면 때문에 매일 부항을 뜨고 근육 테이프를 붙여야 하는 신세였어요. 다행히 이후로는 몸을 단련한 덕에 다치는 곳 없이 독무를 소화하고 있습니다. 제작사 대표님이 앞으로도 ‘프리다’는 계속 공연할 거라고 했으니, 몸을 계속 놓지 않고 있어야 할 것 같아요(웃음).”
동경하는 상대를 닮아가는 팬의 모습처럼, 김소향도 삶에 대한 열정을 불태운 프리다 칼로와 매우 닮아 있었다. 그는 힘든 상황에서도 지치지 않는 체력과 독기를 갖춘 배우다. 또 아픔을 그림이라는 예술로 승화시킨 프리다 칼로처럼, 그 역시 지침의 순간을 포함한 모든 경험들을 연기와 노래, 춤으로 쏟아낸다.
“사실 저는 연기 말고는 관심이 없어요. 배우라는 일을 제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배우라는 일을 할 때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어요. 연기하는 것 자체가 제 삶의 행복이라 죽을 때까지 배우로 살고 싶어요. 프리다가 열정적이고 멋진 삶을 살았지만, 무대에서 연기할 때만큼은 저 역시 프리다 못지않아요. 무대 위에선 내일이 없는 것처럼, 지금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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