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항호르몬 주사... 지난 5년을 자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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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연 기자]
병원에서 마지막 주사를 맞고 왔다. 처음 주사를 맞을 땐 5년이란 시간이 언제 지나갈지 까마득했는데 마침내 그날이 왔다. 생각 같아서는 마냥 홀가분할 줄만 알았는데 기분이 묘했다. 암 진단 이후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 주사실 마지막 주사를 맞기 위해 찾은 주사실. 지난 치료기간을 돌아보니 다행이었던 순간들이 더 많아서 참 다행이었다. |
ⓒ 오세연 |
5년 전 유방암 1기 진단을 받았다. 건강검진에서 이상이 발견돼 재검을 받았고 조직 검사를 했다. 그 결과를 듣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내가 내 모습을 봤을 리 없는데 교수님 앞에 나란히 앉아 있는 나와 남편의 모습이 제3자의 시선으로 기억된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결과는 안 좋아요. 무슨 뜻인지 알죠? 결과가 좋지 않다는 건 암이란 뜻이에요."
이런 게 바로 드라마에서나 보던 암 선고 뭐 그런 장면인가? 드라마에서는 이럴 때 울고 그러던데 나는 눈물은커녕 덤덤했다. 왜 집집마다 누전 안전장치인 일명 두꺼비집이 있지 않은가. 일정한 크기 이상의 전류가 흐르면 자동으로 전류가 차단되면서 두꺼비집이 내려간다. 그 순간 팟! 하고 온 집안의 전자제품이 꺼지면서 세상이 이렇게까지 조용했나 싶을 만큼 고요해진다.
마음속에도 충격 완화장치인 두꺼비집이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일정한 크기 이상의 충격을 받으면 마음속 두꺼비집이 내려가면서 감정이 차단된다. 그 순간 팟! 모든 감정이 꺼지면서 마음이 이상하리만큼 고요해진다. 현실감 제로의 순간.
'에이, 이건 너무 비현실적이잖아.'
암 진단을 받은 그 순간부터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암 환자로 등록됨과 동시에 나의 일상은 환자모드로 급전환됐다. 갑작스러운 경로 이탈이었지만 당황할 새도, 슬퍼할 새도 없이 치료 스케줄이 줄줄이 잡혔다.
진단 2주 뒤 종양제거 수술을 받고 한 달 뒤부터는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위해 여러 검사와 테스트가 있었고 그 무렵 석 달 가량을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다.
매일 항호르몬제를 복용하고 매달 피검사 및 배에 맞는 항호르몬 주사를 맞았다. 6개월마다 CT, 엑스레이, 초음파 검사를 했고 여기에 1년마다 MRI 및 전신 뼈스캔 등을 추가해 검사를 대대적으로 받았다.
매년 가을마다 검사가 진행됐는데 이때 별문제 없이 무사통과하면 암 환자 등록기간인 5년 중 1년을 클리어하는 셈이었다. 클리어, 리셋, 다시 시작! 그렇게 나는 매해 가을을 기점으로 1년 단위로 살아가는 환자 모드에 적응해갔다. 그리고 다섯 번의 가을을 맞이했다.
▲ 울긋불긋 단풍이 물든 정동 방사선치료를 받으러 병원을 오가며 매일 같이 걸었던 가을 정동길. 나에게 정동길은 언제나 가을이다. |
ⓒ 오세연 |
'내가 암이라니...! 왜 하필 나야? 내가 뭘 잘못했지?'
처음엔 현실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원망과 자책을 무한 반복하며 스스로를 괴롭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아닐 거라 생각했을까? 그게 나일 수도 있잖아.'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불행은 남의 것으로만 치부했던 내가 오만했구나... 그러고 보니 불행 중 다행스러운 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다행이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암에 걸렸단 사실이었다. 꼼꼼한 남편 덕분에 재검시기를 놓치지 않고 조기에 발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연로하신 부모님이 아니라, 한참 일하는 남편이 아니라, 어린 두 딸이 아니라, 혼자였던 내 동생이 아니라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근력운동을 열심히 할 때라 체력적으로 가장 좋았던 내가 아픈 게 차라리 낫다 싶었다. 게다가 조기 중에서도 조기 발견이라 항암 치료도 면할 수 있었으니 이래저래 따져 봐도 그나마 나인 게 천만다행이었다.
방사선 치료를 받기 위해 휴일을 제외한 28일 동안 매일같이 병원을 오가던 그때가 마침 가을이라, 병원에서 길만 건너면 덕수궁 돌담길로 이어지는 정동길이라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빨갛게 노랗게 물든 나무들과 가을 햇살이 아른아른 춤추는 돌담 사이를 걷다 보면 복잡했던 머릿속이 하나로 정리됐다.
"아, 예쁘다~!"
가을 정취에 취해 잠시나마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가끔은 센티해져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살아 있음에 예쁜 가을을 보고 느낄 수 있어서 감사했던 순간들. 덕분에 방사선 치료로 힘들었던 기억보다는 좋았던 기억만 남았다. 그때가 가을이라, 그곳이 정동이라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좋은 의료진을 만났고, 동병상련의 친한 언니도 생겼다. 힘든 일 앞에서 '나 암수술도 받아본 사람이야. 이쯤이야 뭐!' 가볍게 용기 낼 줄도 알게 됐다. 가족과 친구들의 걱정과 기도 덕분에 내가 이만큼 살 수 있음에,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에 감사한 시간들이었다.
▲ 이른 가을 덕수궁 돌담길 가을 햇살이 아른아른 춤추는 덕수궁 돌담길을 거닐며 치료 종료를 자축했다. |
ⓒ 오세연 |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이제 1년 뒤에 봅시다."
유방암은 재발률이 높아 완치라 말하지 않는다. 그저 큰 고비 하나를 넘겼다 정도. 교수님은 심상한 말투로 1년 뒤를 기약하셨다. 나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던 5년간의 암 환자 등록기간과 항호르몬 치료가 드디어 끝났다.
더 이상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되고 호르몬제를 복용하지 않아도 된다. 홀가분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재발에 대한 불안감이 일렁였다. 이제부터는 식이요법과 꾸준한 운동, 1년에 한 번 받는 정기검진이 재발 방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마지막 주사를 맞기 위해 주사실에 들렀다. 처음 주사를 맞았던 때가 생각났다. 엄청 두꺼운 주삿바늘에 눈물이 찔끔 났던, 이 아픈 주사를 5년이나 맞아야 한단 생각에 몹시 우울했었다. 그때 초등학교 4학년이던 큰 딸이 내게 해준 말이 있었다.
"5년이나가 아니라 5년만 맞으면 되잖아요. 힘내요, 엄마!"
그 말에 힘을 냈던 기억. 스마트폰 메모 앱에 주사 맞을 날들을 해야 할 일로 미리 기록해 놓고 주사를 맞으면 바로바로 지워나갔다. 배에 남겨진 주사자국이 마치 게임 미션을 클리어하고 받는 메달 같았다. 늘어나는 주사자국을 헤아리며 셀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 잘 견디고 있어! 이 또한 지나가리니!
결국 마지막 미션의 순간이 왔다. 주사를 맞고 지혈을 기다리는 동안 지난 5년을 돌아봤다. 분명 힘든 시간이었지만 불행보다는 다행스러운 순간들이 더 많아서 참 다행이었던 시간들이었다.
마지막 주사를 맞고 1년 뒤 검사 예약을 마치고 병원을 나섰다. 이대로 집에 가는 건 아무래도 아쉬워서 정동길로 향했다. 그동안 자주 들렀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이른 가을 햇살이 아른거리는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걸었다. 나만의 소소한 자축 의식이랄까, 감회가 새로웠다.
리셋과 시작의 계절, 가을. 나는 무수히 많은 메달과 무용담 하나를 가슴에 품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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