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심과 신파 사이 순한 맛, ‘1947 보스톤’ [쿡리뷰]

금메달을 따고 세계 신기록까지 세웠지만 조국을 지워야 했던 불운의 마라토너. 태극기 아닌 일장기를 달아야 했던 손기정(하정우)은 마라톤을 멀리하며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광복 이후 조선에 국제 마라톤 대회 출전 기회가 생기자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와 얼룩진 영광을 함께했던 동료선수 남승룡(배성우)은 ‘제2의 손기정’으로 서윤복(임시완)을 낙점하고 본격적인 준비에 나선다. 하지만 손기정은 달리기에 진심이 아닌 듯한 서윤복의 태도가 마뜩잖다. 이들은 이 여정을 무사히 완주할 수 있을까.

영화 ‘1947 보스톤’(감독 강제규)은 1947년 보스톤 세계 마라톤 대회에 출전한 손기정, 남승룡, 서윤복 등 마라토너 3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영화 ‘쉬리’, ‘마이웨이’, ‘장수상회’ 등을 연출한 강제규 감독이 8년 만에 선뵌 신작이다. 2020년에 촬영을 마쳤으나 팬데믹으로 인해 공개가 밀려 올해 추석 개봉을 확정했다.

‘1947 보스톤’은 시작부터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야기’임을 분명히 한다. 손기정이 일본명 손기태로서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을 받는 모습에서 출발해 영화 내내 실제 역사와 각색을 열심히 오간다. 과하게 느껴지는 대목과 실제로 그랬을 법한 장면이 교차하며 어느 부분이 진짜인지를 골몰하게 한다. 애국심과 신파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자극적이지 않게 이야기를 끌고 간다.

조선이 독립해도 기록은 독립하지 못하는 현실. 손기정에게 좋아하던 달리기는 멍에가 된 지 오래다. 일본 국적으로 받은 금메달 역시 불명예다. 그의 마음을 돌린 건 후배 마라토너를 육성하고자 한 동료 남승룡의 강한 의지다. 마라톤을 여전히 사랑하는 손기정 역시 그와 함께하기로 한다. 남승룡의 눈에 띈 건 출중한 재능을 가진 서윤복이지만, 서윤복에겐 당장의 삶이 급하다. 손기정에서부터 출발한 ‘1947 보스톤’은 서윤복·손기정의 갈등과 화합, 미국 보스턴으로 떠나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거쳐 보스턴에서 부딪히는 난관, 이후의 마라톤 대회로 착실히 이어진다.

일부 장면이 고루하게 느껴지는 건 다소 아쉽다. 시대극 특유의 어색한 활기가 영화로의 이입을 종종 방해한다. 이를 보완하는 건 당시 시대상을 생생히 재현한 화면이다. 감정 과잉인 순간 또한 여럿이다. 소재 특성상 애국심을 고양시키는 내용은 당연하지만, 신파 요소와 어우러지며 집중력을 해친다. 아리랑 선율이 배경음악으로 깔릴 때마다 연출 의도가 읽히다 보니 고조되려던 감정이 오히려 식는다. 감동을 끌어올리는 건 임시완의 열연이다. 실제 마라토너를 데려온 듯 달리는 폼부터 예사롭지 않다.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장면도 눈에 띈다. 마침내 보스톤 대회에 출전한 서윤복의 마라톤 경기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볼 만한 대목이다.

‘1947 보스톤’은 추석 연휴에 온 가족이 보기 무난한 선택지다. 자극을 배제하고 실제 역사에 근거해 이야기를 풀어낸 점과 이해하기 쉬운 전개가 강점이다. 말초적인 재미에 길들여졌다면 심심할 수 있다. 신파로 보일 만한 부분이 고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양한 연령대의 가족이 볼 만한 ‘순한 맛’ 영화로는 제격이다. 27일 개봉. 108분. 12세 이상 관람가.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