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비타민·오메가3 도 당근거래? “‘짝퉁’ 유통·과대광고 우려”

민태원 2023. 9. 12.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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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기능식품 개인 간 재판매
허용 방안 추진에 찬반 ‘논란’
찬성론자 “소비자 선택권 확대”
식약처는 물론 의약·건기식 업계
“국민 안전·건강 위협” 강력 반대

최근 국무조정실 규제심판부가 비타민이나 오메가3, 눈 영양제, 홍삼 등 건강기능식품(건기식)의 개인 간 재판매 허용 방안을 추진하면서 찬반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규제 완화 찬성 쪽은 건기식의 60% 이상이 온라인 판매되고 개인 간 선물이 일상화된 점, 의약품과 달리 복약 지도가 필요 없다는 점 등을 꼽는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물론 의약계, 건기식업계도 개인 간 재판매 허용 시 변질되거나 검증되지 않은 짝퉁 제품 유통 등 소비자 안전과 건강이 위협받을 수 있다며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국무조정실이 지난달 진행한 일반 국민 대상 온라인 토론에서도 반대 의견이 90%를 넘어, 강행 시 큰 저항에 부딪힐 공산이 크다. 국무조정실은 추가 여론 수렴과 숙의를 거쳐 올해 안에 최종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선심성 정책 변질 안 돼

상당수 전문가는 “경쟁이 치열한 국내 건기식 산업 구조상 수면 아래에서 ‘틈(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서, 개인 간 재판매가 허용되면 이를 이용하려는 세력들이 끼어들 여지가 많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선심성 정책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국민 안전과 건강을 최우선에 두고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건기식은 건강에 도움 되는 성분을 간단히 섭취할 수 있는 식품 형태로 가공한 것으로, 식약처 인증을 받아야 팔 수 있다. 현행 건강기능식품법에 따르면 제품을 판매하려면 일정시설을 갖추고 영업소 소재지를 관할 지자체에 신고해야 한다. 즉 판매업 신고를 한 자만이 판매 행위를 할 수 있다. 한 번 구매한 제품의 개인 간 재판매는 불법이다.

그런데 개인이 선물 받았거나 섭취할 의사가 없는 잉여 제품을 타인에게 자유롭게 팔 수 있게 해서 소비자 선택권을 확대하자는 것이 찬성론자들 주장이다. 이렇게 되면 중고나라나 당근마켓 등 온라인 플랫폼에 개인이 제품을 올리고 온·오프 거래 및 판매도 가능해진다.

하지만 개인 간 재판매가 이뤄질 경우 파생될 여러 문제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갈수록 설득력을 얻고 있다.

우선 품질의 변질에 대한 우려다. 찬성론자들은 건기식 제품 대부분이 상온에 저장·유통 가능해 개인 간 거래에도 변질 가능성이 작고 이상사례 발생 시 신고를 통한 소비자 구제가 가능하다고 얘기한다. 이에 대해 한 건기식업계 관계자는 “일반 식품은 변질 여부를 눈이나 냄새로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건기식은 캡슐, 정제, 분말 형태로 돼 있어 개인이 잘못 보관해 변질돼도 쉽게 확인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실제 제품마다 보관법이 다르고 쉽게 변질되는 제품도 있는데, 성분이 변형·파괴되면 오히려 몸에 좋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프로바이오틱스는 균주마다 열에 대한 민감도가 달라, 균주 특성에 따라 일부 제품은 냉장 보관해야 한다. 비타민은 빛, 열, 수분(습기) 등에 취약하기 때문에 잘못 보관할 경우 색과 성분이 변할 수 있다. 또 오일로 구성된 오메가3는 높은 온도로 인해 오일 산패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 개인 간 거래로 변질된 제품이 유통돼 이를 섭취한 사람이 이상 반응을 겪을 경우,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 소비자 피해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대마나 발기부전치료제 등 위해 성분이 함유된 제품이 유통될 가능성도 크다. 실제 식약처가 최근 국내외 온라인쇼핑몰 등에서 판매되는 해외직구 식품 100개를 검사한 결과 절반 이상(58개)에서 마약류, 의약 성분, 부정물질 등 위해 성분이 검출돼 반입 차단조치가 취해지기도 했다.

짝퉁이나 유통 기한이 도래한 제품의 재포장 등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제품이 유통될 가능성도 있다. 특허청이 2015~2019년 7월 위조상품 단속 결과 건기식이 64만2000여건으로 전체 2위를 차지한 바 있다.

이정민 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 의학영양학과 교수는 11일 “일부 업자들이 개인인 척 승인받지 않은 특정 제품을 건기식으로 둔갑시켜 판매하거나 값을 올려서 부당 이익을 얻는 행위가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건기식 ‘이력추적관리제’에 구멍이 발생할 수 있다. 이력추적관리는 제품 제조에서 판매까지 각 단계별 정보를 기록·관리해, 안전성 등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해당 제품을 추적해 원인을 규명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제도다. 그런데 개인 간 거래인 경우 추적이 안 되기 때문에 소비자가 피해를 떠안을 수밖에 없다. 개인이 경험, 후기 등을 이용해 질병 예방·치료 효과가 있다거나 의약품으로 인식할 수 있는 거짓·과장 광고로 판매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각에서 중고거래 전용 사이트에서만 개인 간 거래를 허용하는 시범사업을 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이 경우 특혜 시비가 불거질 수 있고, 블로그나 SNS 등 다른 온라인 플랫폼에까지 확장될 수 있어 관리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된다.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쪽은 현 건강기능식품법이 정한 판매업 신고제는 건기식을 계속적, 반복적으로 유통하는 판매업자를 관리하기 위한 제도로, 일회적인 개인 간 거래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실적인 거래구조를 감안할 때 사실상 1회인지, 같은 제품을 몇 차례 걸쳐 거래하는지 컨트롤이 불가능해져 현 법규에 반한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해외 국가와는 시스템 달라

찬성론자들은 또 미국 유럽(EU) 일본 등 해외 주요 국가에서 개인 간 재판매를 허용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이에 대해 이정민 교수는 “미국 등은 건기식 판매업의 인·허가가 불필요하고, 먼저 팔게 하고 문제가 생기면 징벌적 책임을 묻는 ‘사후 검증’ 체계이고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판매 전 제품 심사·인증을 받는 ‘사전 검토’ 제도를 운용하고 있어 제도 자체가 다르다. 또 건기식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과 풍토가 다른 만큼,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가 규제 완화를 꼭 하고 싶다면 법·제도적 시스템 개선을 우선해야 할 것”이라며 “규제 타파 명분만 내세우면 정상 영업 업체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커지고 건기식 시장 전체가 매도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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