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비타민·오메가3 도 당근거래? “‘짝퉁’ 유통·과대광고 우려”
허용 방안 추진에 찬반 ‘논란’
식약처는 물론 의약·건기식 업계
“국민 안전·건강 위협” 강력 반대
최근 국무조정실 규제심판부가 비타민이나 오메가3, 눈 영양제, 홍삼 등 건강기능식품(건기식)의 개인 간 재판매 허용 방안을 추진하면서 찬반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규제 완화 찬성 쪽은 건기식의 60% 이상이 온라인 판매되고 개인 간 선물이 일상화된 점, 의약품과 달리 복약 지도가 필요 없다는 점 등을 꼽는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물론 의약계, 건기식업계도 개인 간 재판매 허용 시 변질되거나 검증되지 않은 짝퉁 제품 유통 등 소비자 안전과 건강이 위협받을 수 있다며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국무조정실이 지난달 진행한 일반 국민 대상 온라인 토론에서도 반대 의견이 90%를 넘어, 강행 시 큰 저항에 부딪힐 공산이 크다. 국무조정실은 추가 여론 수렴과 숙의를 거쳐 올해 안에 최종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상당수 전문가는 “경쟁이 치열한 국내 건기식 산업 구조상 수면 아래에서 ‘틈(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서, 개인 간 재판매가 허용되면 이를 이용하려는 세력들이 끼어들 여지가 많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선심성 정책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국민 안전과 건강을 최우선에 두고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건기식은 건강에 도움 되는 성분을 간단히 섭취할 수 있는 식품 형태로 가공한 것으로, 식약처 인증을 받아야 팔 수 있다. 현행 건강기능식품법에 따르면 제품을 판매하려면 일정시설을 갖추고 영업소 소재지를 관할 지자체에 신고해야 한다. 즉 판매업 신고를 한 자만이 판매 행위를 할 수 있다. 한 번 구매한 제품의 개인 간 재판매는 불법이다.
그런데 개인이 선물 받았거나 섭취할 의사가 없는 잉여 제품을 타인에게 자유롭게 팔 수 있게 해서 소비자 선택권을 확대하자는 것이 찬성론자들 주장이다. 이렇게 되면 중고나라나 당근마켓 등 온라인 플랫폼에 개인이 제품을 올리고 온·오프 거래 및 판매도 가능해진다.
하지만 개인 간 재판매가 이뤄질 경우 파생될 여러 문제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갈수록 설득력을 얻고 있다.
우선 품질의 변질에 대한 우려다. 찬성론자들은 건기식 제품 대부분이 상온에 저장·유통 가능해 개인 간 거래에도 변질 가능성이 작고 이상사례 발생 시 신고를 통한 소비자 구제가 가능하다고 얘기한다. 이에 대해 한 건기식업계 관계자는 “일반 식품은 변질 여부를 눈이나 냄새로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건기식은 캡슐, 정제, 분말 형태로 돼 있어 개인이 잘못 보관해 변질돼도 쉽게 확인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실제 제품마다 보관법이 다르고 쉽게 변질되는 제품도 있는데, 성분이 변형·파괴되면 오히려 몸에 좋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프로바이오틱스는 균주마다 열에 대한 민감도가 달라, 균주 특성에 따라 일부 제품은 냉장 보관해야 한다. 비타민은 빛, 열, 수분(습기) 등에 취약하기 때문에 잘못 보관할 경우 색과 성분이 변할 수 있다. 또 오일로 구성된 오메가3는 높은 온도로 인해 오일 산패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 개인 간 거래로 변질된 제품이 유통돼 이를 섭취한 사람이 이상 반응을 겪을 경우,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 소비자 피해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대마나 발기부전치료제 등 위해 성분이 함유된 제품이 유통될 가능성도 크다. 실제 식약처가 최근 국내외 온라인쇼핑몰 등에서 판매되는 해외직구 식품 100개를 검사한 결과 절반 이상(58개)에서 마약류, 의약 성분, 부정물질 등 위해 성분이 검출돼 반입 차단조치가 취해지기도 했다.
짝퉁이나 유통 기한이 도래한 제품의 재포장 등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제품이 유통될 가능성도 있다. 특허청이 2015~2019년 7월 위조상품 단속 결과 건기식이 64만2000여건으로 전체 2위를 차지한 바 있다.
이정민 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 의학영양학과 교수는 11일 “일부 업자들이 개인인 척 승인받지 않은 특정 제품을 건기식으로 둔갑시켜 판매하거나 값을 올려서 부당 이익을 얻는 행위가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건기식 ‘이력추적관리제’에 구멍이 발생할 수 있다. 이력추적관리는 제품 제조에서 판매까지 각 단계별 정보를 기록·관리해, 안전성 등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해당 제품을 추적해 원인을 규명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제도다. 그런데 개인 간 거래인 경우 추적이 안 되기 때문에 소비자가 피해를 떠안을 수밖에 없다. 개인이 경험, 후기 등을 이용해 질병 예방·치료 효과가 있다거나 의약품으로 인식할 수 있는 거짓·과장 광고로 판매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각에서 중고거래 전용 사이트에서만 개인 간 거래를 허용하는 시범사업을 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이 경우 특혜 시비가 불거질 수 있고, 블로그나 SNS 등 다른 온라인 플랫폼에까지 확장될 수 있어 관리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된다.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쪽은 현 건강기능식품법이 정한 판매업 신고제는 건기식을 계속적, 반복적으로 유통하는 판매업자를 관리하기 위한 제도로, 일회적인 개인 간 거래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실적인 거래구조를 감안할 때 사실상 1회인지, 같은 제품을 몇 차례 걸쳐 거래하는지 컨트롤이 불가능해져 현 법규에 반한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찬성론자들은 또 미국 유럽(EU) 일본 등 해외 주요 국가에서 개인 간 재판매를 허용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이에 대해 이정민 교수는 “미국 등은 건기식 판매업의 인·허가가 불필요하고, 먼저 팔게 하고 문제가 생기면 징벌적 책임을 묻는 ‘사후 검증’ 체계이고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판매 전 제품 심사·인증을 받는 ‘사전 검토’ 제도를 운용하고 있어 제도 자체가 다르다. 또 건기식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과 풍토가 다른 만큼,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가 규제 완화를 꼭 하고 싶다면 법·제도적 시스템 개선을 우선해야 할 것”이라며 “규제 타파 명분만 내세우면 정상 영업 업체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커지고 건기식 시장 전체가 매도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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