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선율에 담은 신앙… 일상에 지친 영혼 보듬다
김희애 유아인의 격정적인 피아노 듀오가 없는 ‘밀회’(JTBC), 이혼 전문 변호사 조승우의 청계천 피아노 신이 없는 ‘신성한 이혼’(JTBC)을 상상할 수 있을까. 대중에게 사랑받으며 오래 기억되는 영화와 드라마엔 공통점이 있다. 탄탄한 각본과 배우의 열연, 감독의 연출력과 함께 손꼽히는 것이 바로 음악이다. 음악이 극의 중심에 서 있는 작품이라면 더욱 그렇다. 최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소형(50) 클래식 예술감독은 이를 ‘일상과 공감’에 빗대어 설명했다.
“우리의 일상이 곧 드라마입니다. 그래서 드라마가 일상의 임팩트 있는 장면을 담아낼 때 사람들의 공감을 얻죠. 그 일상 이야기에 딱 맞는 배경음악이 입혀질 때 공감이 극대화되는 매커니즘이 작동합니다.”
두 살배기 때부터 피아노 건반에 손을 얹은 그는 예원학교·오스트리아 빈 국립음악대와 같은 대학원을 거치며 평생 피아니스트로 살아왔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유학생 피아니스트를 깊은 정서적 수렁에 빠뜨렸다. 김 감독은 “굿을 해서라도 불안감을 떨쳐내야겠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며 “빈에서 나를 위해 모여 기도해줬던 후배들 덕분에 만난 하나님이 없었다면 내 삶은 지금도 어둠 속에 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20대의 끝자락에 극적으로 신앙을 갖게 된 그를 하나님은 피아노 의자에서 일으켜 세웠다. 그동안 피아니스트로 연주해 온 악보 속 이야기들을 또 다른 영역에서 펼쳐 보이며 확장을 꾀하게 한 것이다. 그 첫 단추가 클래식 예술감독으로서 만난 드라마 ‘밀회’였다.
예술감독은 작품에 등장하는 곡들을 선정하는 것부터 편곡, 대역 섭외, 배우들의 피아노 레슨에 이르기까지 현장 전반을 총괄한다. 대본이 준비됨과 동시에 각 장면에 어울리는 음악 리스트를 뽑고, 그 곡이 극의 흐름과 배역의 캐릭터에 어울리는지 끊임없이 연구하는 작업을 반복한다. 김 감독은 “곡의 서사가 지닌 특유의 감성과 배경을 대본과 배역에 섬세하게 조율할수록 싱크로율은 높아지고 감동은 커진다”고 설명했다.
긴박하게 진행되는 제작 현장에선 치열한 논의와 수정작업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김 감독은 “장면에 꼭 들어맞는 곡이 선곡되고 작품에 녹아들면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클래식 음악에 대한 관심도 늘어난다”며 “이 과정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큰 선물”이라고 덧붙였다.
예술감독으로 인생 2막을 연 지 10년 차지만 김 감독은 “하나님께서 이 역할을 위해 20년 전부터 그 걸음을 인도하셨다”고 했다. 그가 말한 걸음의 목적지는 전국 각지의 시골교회였다. “오스트리아 유학 시절 다니던 교회 목사님의 권유로 한국에 나올 때마다 문화 예술의 소외지인 시골교회를 찾아 연주회를 하게 됐어요. 조율도 제대로 되지 않은 업라이트 피아노 한 대만 덩그러니 놓여있을 때가 태반이었지만 감동은 늘 상상을 뛰어넘었어요. 그때마다 어떤 곡과 이야기를 전해드릴지 고민했던 경험이 예술감독으로서 좋은 곡을 선곡하는 바탕이 된 셈입니다.”
음악 선곡에 임하는 김 감독에겐 두 가지 루틴이 있다. 하나는 아티스트로서의 중심을 붙들어주는 성경 말씀(딤 1:9)을 묵상하는 것. 다른 하나는 음악에 담긴 멜로디와 메시지가 예수님이 위로하는 한 영혼에게 닿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에게 지금 이 순간, 위로와 응원이 필요한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음악 추천을 요청했다. 김 감독은 일상 드라마의 서사에 배경음악을 수놓듯 선곡표를 건넸다. “바흐의 칸타타를 듣다 보면 슬픔 가운데서도 알 수 없는 평안이 옵니다. ‘눈물 흘리고, 탄식하고, 근심하고, 두려워하고(Weinen, Klagen, Sorgen, Zagen)’를 들으며 고뇌 속 나를 잠시 내려놓아 보는 것도 좋겠네요. 그런 후 하나님을 기쁘게 찬양한 칸타타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BWV147)’를 들으며 하나님이 주시는 영감을 채워 넣는 거죠. 음악에는 다시 시작해보자고 권면하는 생명의 힘이 있습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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