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희망의 교회로] 다문화 가정·은퇴 선교사에 보금자리… “농촌교회도 할 수 있다”
강원도 홍천 읍내에서 차로 서쪽으로 30분 정도 달리다 보면 마주하는 교회가 있다. 자동차 2대가 겨우 지나갈 만큼 좁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밭과 주택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그 중심에는 올해 40돌을 맞은 제곡교회(정영선 목사)가 있다.
주일이었던 지난 3일 방문한 교회는 농촌교회가 맞나 싶었다. 기껏해야 20명 정도 모이지 않을까 했는데 예상과 달리 예배 시작 30분 전부터 교회 안팎은 성도들로 붐볐다. 어린아이부터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80명 넘는 교인들은 서로 인사하며 안부를 묻기도 했다. 주방에서는 점심식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오전 10시 40분. 강도사의 찬양 인도와 함께 예배가 시작됐다. 자리를 가득 채운 성도들은 예배팀의 연주에 맞춰 박수치며 찬양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농촌교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성도들 가운데 외국인들이 눈에 띄었다. 러시아 카자흐스탄 일본 등 타국 출신의 성도들이었다.
한국어가 서툰 이들을 위해 한국어 가사 밑에는 러시아어로 번역된 가사가 함께 제공됐다. 특히 자모실 앞에는 장의자가 놓여있었는데, 여자 성도 2명이 무선 송수신기를 손에 들고 정영선(58) 담임목사의 설교를 실시간 통역하고 있었다. 한국어 설교를 영어로 1차 통역을 하면 영어를 러시아어로 통역하는 과정을 거친다. 외국인 성도들은 수신기와 연결된 이어폰을 낀채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강원도 시골 교회에서 글로벌 예배가 드려지는 현장이었다.
올해로 제곡교회 부임 10년차인 정 목사는 홍천에서 ‘커피 목사’로 불린다. 정 목사의 비법이 담긴 특제 커피는 교회를 오지 않는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그는 “진한 생우유에 봉지커피를 섞어 만든 것”이라며 “부임 후 마을 전도를 하기 위해 개발했다”고 ‘정 목사표 커피’ 탄생 비화를 설명했다. 기자가 직접 맛본 커피는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 만큼 진하고 맛있었다.
정 목사는 부임 첫 해 아내와 함께 매주 1회 교인들 가정을 중심으로 50㎞에 달하는 거리를 다니며 심방과 전도를 했다. 밭과 논에서 농사를 짓는 교인 한 명, 한 명에게 찾아가 냉커피를 건네며 담소를 나누고 기도를 한 지 어언 10년이다. 겨울에는 정 목사가 5시간 이상 직접 끓인 한방차로 대체된다.
그는 “남면이나 제곡리에서 큰 행사가 열리면 ‘목사님 우리 이번에 잔치를 해유’라고 연락이 온다”면서 “냉커피나 한방차를 만들어 달라는 뜻이다. 그럼 만들어서 마을 주민들과 교제를 한다”고 설명했다.
정 목사가 농촌교회 부임 후 제일 먼저 한 사역은 ‘꿈꾸는 여행’이었다. 패배감과 좌절감에 빠진 성도들에게 꿈꾸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교인들과 함께 타 지역의 교회를 탐방하며 우리교회도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했다.
시골교회가 지저분하고 고리타분하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정 목사가 선택한 방법은 교회와 예배의 변화였다. 노년층에 맞춰진 예배에서 벗어나 젊은 세대도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예배 스타일을 접목했다. 찬송가 대신 CCM을 부르고, 찬양팀을 만들고, 낡은 교회를 깨끗이 정리했다. 그러자 홍천 시내에서 젊은 가정이 하나 둘 교회를 찾기 시작했다.
제곡교회는 은퇴 선교사 부부와 갈 곳 없는 외국인 성도들에게 쉼터를 제공하고 있다. 교회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는 가수 인순이가 설립한 대안학교인 해밀학교의 첫 건물이 있다. 현재 학교는 인근으로 이사를 갔고, 기존 건물은 제곡교회가 리모델링해 은퇴 선교사들과 외국인 선교사들의 거처로 제공하고 있다.
먼 타국에서 홍천 산골마을까지 들어와 살게 된 배경에는 저마다의 사연 보따리가 있다. 카자흐스탄 출신의 잘리아(가명·30)씨는 20대의 어린 나이에 딸을 출산했다. 그는 가정 폭력을 일삼는 남자친구를 피해 홍천까지 들어오게 됐다. 다행히 지금은 남자친구와는 분리조치 됐고, 교회에서 마련한 거처에서 딸과 함께 지내고 있다.
그는 서툰 한국어로 “교회가 안전한 울타리가 돼줬다”면서 “교회 덕분에 일자리도 찾고 살 곳도 구할 수 있었다. 너무 다행이고 감사하다”고 전했다.
고려인 3세인 올리아(28)씨는 러시아 출신 남편과 세살박이 딸과 함께 교회를 찾았다. 그는 통역을 하는 교회의 핵심 봉사자이기도 하다. 한때 마약중독에 빠져 험난한 삶을 살았던 남편은 기적처럼 중독에서 회복됐고, 현재는 평신도 선교사로 살아가고 있다.
정 목사의 비전은 소박하면서도 위대해 보였다.
“농촌교회의 모델이 되고 싶어요. 우리 교회 잘났다고 자랑하려는 게 결코 아니에요. 농촌교회도 자립할 수 있고 다른 교회와 마을 이웃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싶어요. 그리고 작은 요양병원 하나 세워서 혼자 생활이 어려운 마을 어르신들을 돌보며 더불어 살아가고 싶어요.”
홍천=유경진 기자 yk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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