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목의 시선] ‘엘사’ ‘빌거’ ‘휴거’…콘크리트 디스토피아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400만에 가까운 관객을 모았다. 대지진 속에서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은 황궁아파트에 다른 지역 거주자들이 모여들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는데, 지금 우리 현실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 적지 않다.
‘선택 받았다’고 자부하는 황궁아파트 입주민들은 도움을 청하는 외부인을 ‘바퀴벌레’로 낙인찍어 내쫓는다. 그들 사이에서도 자가·전세·월세 등에 따라 위계가 정해진다. “아파트는 주민의 것”이라는 주민 대표 영탁(이병헌)과 “다 같이 살 방법을 찾자”는 명화(박보영)의 대립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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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크리트 유토피아’ ‘드림팰리스’
아파트 공화국 현실 담은 두 영화
거주지로 차별하는 서글픈 세태
」
영화에서처럼 극단적인 광기로까진 번지지 않았지만, ‘우리만 잘 살면 된다’는 집단 이기심은 이 사회에 뿌리 깊게 번져 있다. 앞서 개봉한 영화 ‘드림팰리스’는 그런 현실을 뼈아프게 들춘다. 아파트 주민들이 정문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미분양 사태로 할인분양 받은 입주자들의 이삿짐 차량을 막아 선다. ‘아파트가 똥값 돼선 안된다’는 막무가내식 논리 앞에 이성과 대화가 자리할 공간은 없다. 입주민들에게 할인분양 입주자들은 ‘바퀴벌레’나 다름없는 존재다.
두 영화에는 메시지 외에도 뚜렷한 접점이 있다. 드림팰리스란 이름의 아파트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황궁아파트 입주민들은 “부촌인 드림팰리스 사람들이 평소 우리를 무시하더니, 상황이 바뀌니 언제 그랬냐는 듯 애원한다”며 그들을 내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만약 재난 이전 얘기까지 다뤘더라면 아파트 값을 지키기 위한 ‘드림팰리스’ 사람들의 처절한 노력이 담기지 않았을까. 김선영 배우가 외부인을 배척하는 아파트 부녀회장(콘크리트 유토피아), 분란에 휘말리는 아파트 입주민(드림팰리스)으로 두 영화의 갈등의 중심에 선다는 점도 공교롭다.
두 영화가 그린 ‘아파트 공화국’의 폐해는 구분짓기다. 내 지위를 상징하는 아파트에 ‘격’ 낮은 이들이 스며드는 걸 좌시할 수 없다는 그릇된 신념 말이다. 옴니버스 독립영화 ‘말이야 바른 말이지’의 한 단편은 구분짓기가 사람들의 마음에 얼마나 깊숙이 파고들었는지 보여준다.
곧 태어날 손주에게 ‘광주 출생’ 딱지가 붙는 게 싫어 “애는 제발 서울에서 낳으라”고 신신당부하는 호남 출신 아버지를 만삭의 딸이 타이른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언제까지 그러실 거냐.” 딸의 성숙한 태도에 겸연쩍어진 아빠지만, “아이들이 엘사들과 섞이는 건 좀 그렇다”는 딸과 동대표의 대화에서 ‘엘사’라는 단어는 처음 듣는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임대아파트 사는 사람들’이란 딸의 설명에 아버지는 아연실색하고 만다. 어디 ‘엘사’ 뿐인가. ‘빌거’(빌라에 사는 거지), ‘휴거’(휴먼시아 임대아파트에 사는 거지)라는 말이 아이들의 입에서 거침없이 튀어나오는 세상이다.
단편 내용처럼 거주공간으로 차별하고 배제하는 구분짓기가 지역감정보다 더 공고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라는 단편의 제목은 실제 아파트 광고 문구다.
사람들은 아파트 담을 성곽처럼 높이 쌓고, 아파트 이름에 ‘팰리스’ ‘캐슬’ ‘프레스티지’ 등 온갖 영단어를 갖다 붙인다. 임대 아파트 아이들의 통행을 막기 위해 벽을 세우고, 임대 아파트가 같은 학군으로 분류되면 아파트 이미지가 실추된다며 교육청에 집단 항의까지 한다. ‘임대세대 어린이는 놀이터 사용금지’라는 아파트 단지 내 팻말은 서글픔을 자아낸다. 천박한 자본주의의 민낯이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까지 된 걸까.
아파트가 욕망의 상징이자, 삶의 목표가 돼버린 현실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산 아파트이기에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양심은 물론, 영혼까지 팔아버릴 기세다. 인간성을 내팽개치면서까지 집을 지키려 하는 ‘콘크리트 유토피아’속 입주민들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이런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고 고통받는 현실이야말로 재난이 아닐까.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도 진짜 재난은 대지진 이후 사람들의 마음을 덮친 극단적 이기심과 혐오, 배타심이었다.
아파트는 ‘콘크리트 덩어리’라는 표현으로 비하되기도 한다. 콘크리트가 갖는 차갑고 삭막한 이미지는 영화 때문에 더욱 강화될지도 모르겠다. 아이러니하게도 콘크리트의 어원은 ‘콘크레투스(concretus)’라는 라틴어로, ‘더불어 살아가게 한다’는 뜻이다.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공간을 만드는 게 콘크리트의 어원이자 가치인데, 콘크리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왜 서로를 불신하고 밀쳐내고 마음의 벽을 쌓는 걸까. 차갑고 삭막한 건 콘크리트가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다.
정현목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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