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회숙의 음악으로 읽는 세상] 관료주의 풍자한 사티의 소나티네
프랑스 작곡가 에릭 사티는 풍자와 해학을 즐겼다. 이런 그의 면모는 작품 제목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관료적인 소나티네’ ‘차가운 소곡집’ ‘엉성한 진짜 변주곡-개(犬)를 위하여’ ‘말의 옷차림으로’ ‘바싹 마른 태아(胎兒)’ ‘배(梨) 모양을 한 세 개의 곡’ ‘지나가 버린 한때’ 등 서로 모순되는 의미의 두 단어를 합쳐 놓거나 전혀 이미지가 연결되지 않는 단어를 합쳐 놓은 것이 많다.
이 기묘한 제목은 듣는 사람의 흥미를 유발하는 것은 물론 그 속에 담긴 속뜻이 무엇일까 유추해 보는 즐거움도 준다.
에릭 사티는 선천적인 반골 기질의 소유자였다. 학창 시절부터 아카데믹한 음악에 반감을 품었다. 생계를 위해 몽마르트르의 한 카페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는데, 이때 카페에서 연주하기 알맞은 가벼운 곡을 많이 작곡했다. 정통파들은 음악의 격을 떨어뜨린다며 눈살을 찌푸렸지만 사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양한 패러디를 통해 고급 음악의 권위를 살짝 비트는 것을 즐겼다.
그가 작곡한 피아노곡 중에 ‘관료적인 소나티네’가 있다. 고전주의 작곡가 클레멘티의 소나티네 작품 36의 1번을 패러디했다. 이 곡은 외형적으로는 고전주의 소나타 형식을 따른 것처럼 보이지만 곳곳에 이를 살짝 비튼 풍자와 해학이 숨어 있다. 특히 3악장의 ‘Vivace(빠르게)’를 ‘Vivache’로 표기한 것이 눈에 띈다. ‘vache’는 프랑스어로 ‘소’를 뜻한다. 빠르고 경쾌한 리듬을 지시하는 이탈리아어 비바체를 느릿느릿 여유롭게 움직이는 ‘소’를 의미하는 프랑스어로 바꾸어 놓은 언어 유희가 재미있다.
사티는 관료주의 아래서 ‘승진’을 꿈꾸는 남자의 모습을 풍자하기 위해 이 곡을 썼다고 한다. 이 곡을 통해 사티는 말하고 있다. 개인의 창의성을 용납하지 않는 관료주의 아래에서 ‘승진의 꿈’이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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