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7년간 58명 경력직 부정채용
채용 공고를 외부에 알리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공유했다. 기관 고위직 자녀는 응시-서류심사-면접을 하루 만에 마치는 ‘하이패스 채용’으로 임용됐다. 독립성을 우선 가치로 내세운다는 헌법기관 선거관리위원회의 특혜 채용 의심 사례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이런 내용의 선관위 공무원 경력 채용 전수조사 결과를 11일 발표했다. 지난 5월 중앙일보 보도로 선관위 자녀 특혜채용 의혹이 제기된 뒤 권익위는 52일간 현장조사를 진행했다.
권익위는 선관위가 최근 7년간 진행한 162회의 경력 채용 중 불공정한 절차로 진행된 경우는 104회(64%)에 달했다고 밝혔다. 채용된 경력직 공무원 384명 중 부정합격으로 의심되는 공무원은 58명(15%)이었다. 권익위는 이를 포함해 선관위의 채용 비리와 절차 위반 의심 사례를 총 353건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권익위는 선관위 채용 비리 관련자 28명은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대검찰청에 고발했고, 채용 비리 의심 사례 등 312건은 수사 의뢰했다.
선관위의 비협조로 일부 사례만 조사했는데도 이 정도 결과가 나왔다는 점은 주목할 부분이다. 정승윤 권익위 부위원장은 “선관위 직원 전원에게 개인정보 동의를 요청했는데 동의한 비율은 41%에 불과했다. 비공무원 채용과 공무원 경력 채용 합격자와 채용 관련자 간 가족 관계 등은 점검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내부게시판에만 채용공고…고위직 자녀 당일치기 뽑기도
검찰 수사에서 부정 채용 의심 사례는 추가로 발견될 수 있다.
권익위에 따르면 선관위의 부정 채용 정황은 직급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고부터 서류 전형과 면접, 심사까지 사실상 모든 채용 단계에서 발견됐다. 예를 들어 법령상 5급 이하 임기제 공무원(일정 기간으로 임기를 정해 임용하는 공무원)은 정규직으로 전환하려면, 서류·면접전형 등 공식적인 경력 채용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선관위에서 1년 임기제 공무원 중 31명이 시험 없이 정규직인 일반직 공무원으로 전환됐다. 이 중 5급 사무관으로 전환된 경우도 3명이나 있었다.
선관위는 한시임기제 공무원(휴직 공무원 등의 업무를 대체하기 위해 임용되는 공무원)을 채용하며 공고문을 시·구 선관위 내부 게시판에만 게시했다. 그 결과 A구청 선거업무 담당자 아들과 B구 선관위 근무 경력자 2명만 응시했고 전원 합격했다. 애초 선관위 내부 게시판을 볼 수 있는 공무원과 그들의 가족·지인 등만 지원할 수 있는 시험이었던 것이다.
선관위가 9급 직원을 채용하며 계약직 직원의 근무 경력을 부풀려 채용하거나, 석사학위 소지자에게 박사학위 가점을 주고, 응시 자격을 35세 이하로 제한했음에도 35세가 넘는 지원자를 채용한 경우도 있었다. 응시 요건에 관련 분야 7년 이상 경력자에겐 모두 가점을 부여해야 했지만, 선관위 근무 경력이 있는 지원자에게만 가점을 부여한 사례도 드러났다. 면접 과정에서 심사위원 절반은 외부 인원으로 해야 하는데도 모두 내부 심사위원으로 구성한 사례도 26건 적발됐다.
선관위가 채용 공고를 내지 않고 외부로부터 한 명만 단수(單數)로 추천받아 직원을 채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이들은 일반적으로 추천된 당일에 서류심사와 면접시험을 봤고, 합격 여부까지 당일 결정됐다. 추천부터 채용까지 하이패스 통과하듯 막힘이 없었던 것이다. 권익위 조사 결과 지난 7년간 이 같은 제도로 채용된 선관위 직원은 28명에 달했다. 여기엔 지난 5월 자녀 특혜 채용 의혹으로 사퇴한 ‘선관위 2인자’ 송봉섭 전 중앙선관위 사무차장의 딸(2018년 채용)도 포함돼 있다. 정 부위원장은 “정부엔 이런 제도가 없다. 저희도 처음 알게 된 제도”라고 말했다.
선관위는 입장문을 내고 “향후 인사 분야 감사 기능을 감사 부서로 이관하고, 채용 관련 규정·기준을 개선하는 등 채용 절차의 공정성과 정확성을 높이도록 노력하겠다”면서도 “일부 조사 결과에서 우리 위원회가 소명한 부분이 반영되지 않는 등 두 기관 간 의견 차이가 있었다”고 밝혔다.
감사원도 선관위 채용 비리 감사를 진행 중이다. 선관위는 감사에 반발하며 지난 7월 감사원의 선관위 직무감찰의 정당성을 따져 달라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선관위는 독립적 헌법기관이기 때문에 행정부 소속 감사원의 직무감찰 대상이 아니라는 게 선관위 주장이다.
한편 전봉민 국민의힘 의원이 선관위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자녀 특혜 채용 의혹으로 경찰 수사를 받는 신우용 제주도선관위 상임위원과, 사촌 특혜 채용 의혹이 제기된 전남 무안군선관위 7급 공무원 A씨가 지난 7월 1일 의원 면직된 것으로 확인됐다. 의원 면직이 되면 수사 결과에 따른 공무원 연금 삭감과 재임용 제재 등을 피해 갈 수 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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