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도 없다” 시민 절규…국왕 귀국 기다리다 구호 늑장
모로코 남서부를 강타한 규모 6.8 강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2400명을 넘어섰다.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매몰자 구조와 생존자 구호가 시급하지만, 모로코 정부는 국제사회에 지원 요청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여진 공포 속에 사흘째 노숙 중인 생존자들은 “물도 음식도 없다”며 정부의 늑장 대처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11일(현지시간) 지난 8일 발생한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본 모로코 ‘하이 아틀라스’ 산맥 인근 마을에 10일 오전 규모 3.9의 여진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유럽·지중해 지진센터(EMSC)는 지난 8일 본진 발생 후 여진이 25번 이어졌으며 최대 몇 달간 지속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모로코 내무부는 최소 2497명이 숨지고 2476명이 다쳤다고 이날 밝혔다. 사망자 절반 이상(1351명)은 ‘하이 아틀라스’ 산맥의 알 하우즈주에서 나왔다. BBC는 진앙에서 약 50㎞ 떨어진 타페가그테 마을 주민 200명 가운데 90명이 숨진 채 발견됐고 실종자도 다수라면서 “이런 비극이 아틀라스 산맥 인근 마을마다 펼쳐지고 있다”고 전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구조대와 식량·의약품을 실은 구호 차량이 현장으로 향하고 있으나, 무너진 건물 잔해와 낙석이 좁고 구불구불한 도로를 막아 접근이 쉽지 않다. 스카이뉴스는 “구조대가 들어선 일부 마을엔 이미 시신 냄새가 진동하고 있다”며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음을 지적했다. 지진 발생 후 골든타임은 통상 72시간 이내다.
모로코 정부가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구호를 요청하지 않는 데 대한 비판이 나온다. AP통신·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수십 개국이 구호·구조 지원 의사를 밝혔지만, 정작 모로코 정부 승인을 얻지 못해 구조대를 파견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엔 국경없는구조대는 구조대원 3500명으로 구성한 100여 개 팀을 파견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지만, 모로코 정부 요청이 없어 발이 묶였다. 독일도 쾰른 본공항 근처에 50명 이상 구조팀을 대기시켰다가 집으로 돌려보냈다고 dpa통신은 전했다.
모로코 정부는 “스페인·영국·카타르·아랍에미리트 4개국에서만 도움을 받았다”며 “조율이 부족하면 역효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스페인은 모로코 정부 요청에 가장 먼저 긴급구조대(UME) 56명과 구조견 4마리를 파견했다. 튀니지 구조대원 50여 명은 열 감지 장치로 생존자 구조에 나섰다. 카타르는 87명의 인력과 구조견 5마리를 보냈다.
왕정인 모로코 정부는 지진 발생 하루가 지난 9일 오후에야 비상 회의를 열었다. 프랑스에 머물던 국왕 무함마드 6세의 귀국을 기다리느라 대응이 늦어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코노미스트는 “모로코 정부가 다음 달 9~15일 국제통화기금(IMF) 및 세계은행(WB) 연차 총회 개최를 앞두고 지진 피해 실상을 외부에 알리고 싶어하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지진 발생 이틀 만인 이날 관광객이 주로 찾는 마라케시 도심에서 외국인 관광이 일부 재개됐다. 관광산업 의존도가 높은 모로코의 경제 현실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바히야 궁전 같은 명소에 관광객들이 다시 줄을 서기 시작했다.
르몽드는 관광객들이 차 마시는 모습, 문 연 상점에서 가죽 가방 가격을 흥정하는 장면도 볼 수 있다고 전했다.
마라케시 도심 카페와 레스토랑은 상대적으로 지진 피해가 덜한 편이다. 1999년부터 유럽인들은 모로코 전통 가옥 ‘리아드’를 사들여 현대식으로 고쳐 호텔·레스토랑으로 운영했다. 지진 영향을 덜 받은 위치인 데다 건물을 현대식으로 보강해 피해가 덜했다.
모로코 관광산업은 국내총생산(GDP)의 7.1%(2019년)를 차지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관광업은 전체의 5%에 달하는 56만5000개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마라케시는 “수입의 99%를 관광에 의존한다”는 말이 돌 정도다.
박형수·김민정·문상혁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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