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렁소와 검은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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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김정균 국가대표팀 감독은 황희 정승 앞에서 누렁소와 검은 소로 밭을 가는 농부가 된 기분일 것이다.
농부와 다른 점은 그에겐 황희 정승이 수만 명이고, 농부의 귓속말은 황희 정승에게만 작게 들렸고, 김 감독 앞에 놓인 야속한 기자회견장 마이크는 그의 목소리를 도리어 증폭시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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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소가 더 일을 잘합니까?’
요즘 김정균 국가대표팀 감독은 황희 정승 앞에서 누렁소와 검은 소로 밭을 가는 농부가 된 기분일 것이다. 농부와 다른 점은 그에겐 황희 정승이 수만 명이고, 농부의 귓속말은 황희 정승에게만 작게 들렸고, 김 감독 앞에 놓인 야속한 기자회견장 마이크는 그의 목소리를 도리어 증폭시킨다는 것이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나서는 ‘리그 오브 레전드’ 한국 국가대표팀은 11일 경기도 광명시 아이벡스 스튜디오에서 열린 베트남과의 평가전에서 2대 0으로 이겼다. 1세트를 22분, 2세트를 17분 만에 마무리하며 기분 좋게 북벌을 시작했다.
대표팀 결성 이후 첫 경기에서 한국은 ‘제우스’ 최우제, ‘카나비’ 서진혁, ‘룰러’ 박재혁, ‘케리아’ 류민석과 함께 ‘쵸비’ 정지훈을 선발로 내보냈다. 미드라이너만 2명인 6인 로스터에서 ‘페이커’ 이상혁 대신 정지훈이 먼저 출전 기회를 받은 셈이다.
경기 내용은 한국의 일방적 승리였다. 애초에 한국이 베트남보다 강한 전력을 보유한 데다가, 설상가상 베트남의 주전 서포터가 건강 문제로 출전하지 못해서 더 일방적인 경기가 펼쳐졌다. 베트남은 후보 미드라이너를 서포터 자리에 기용했다.
당연하게도,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는 이날 미드라이너로 정지훈을 기용한 이유를 묻는 말이 나왔다. 대표팀 주전 미드라이너 자리는 이번 대회의 최대 화두다. 정지훈과 이상혁 모두 정상급 기량을 가진 선수로 평가받는다. 대표팀 결성 후 첫 경기에서 어떤 선수가 주전으로 나올지는 업계 전반의 관심사였다.
예상 가능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답변하기가 쉬워지지는 않는 질문을 받자 김 감독은 고심했다. 그는 “평가전 로스터는 월·화요일에 미리 제출한 것이어서 더 이상 말씀드리긴 어렵다”고 어렵사리 운을 뗀 뒤 다시 말을 끊었다.
이어 재차 마이크를 잡고서 “지금 봤을 때는 정지훈의 폼(기량)이 더 좋다고 생각해서 선발로 내보냈다”고 덧붙였다. 그의 고뇌는 기자회견장을 잠시 적막으로 뒤덮었다. 자신의 말 한 마디가 가져올 파장을 김 감독은 충분히 예상하는 듯 보였고, 조금이라도 파장의 크기를 좁혀보려는 듯한 기색이 역력했다.
김 감독은 “월·화요일에 로스터를 미리 제출했다”고 말했지만 베트남전이 월요일(11일)에 열렸고, 대만전이 화요일(12일)에 열리므로 이는 김 감독의 말실수로 예상된다. 한국e스포츠협회 관계자는 “대표팀이 지난주 금요일(9일)에 로스터를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이 6인 로스터에 정지훈과 이상혁의 이름을 모두 넣은 직후부터, 그는 공적인 자리든 사적인 자리든 누렁 미드라이너와 검은 미드라이너 중 누가 더 나은가, 검은 미드라이너는 누렁 미드라이너보다 무엇이 더 나은가와 같은 질문을 수십수백번 받아왔을 것이다.
앞으로는 경기 준비만큼이나 힘든 시간을 경기 종료 직후에도 보내게 될 것으로 보인다. 평가전이 시작된 오늘부터는 왜 누렁소를 내보냈는지, 또 왜 검은 소를 내보냈는지도 대회가 끝날 때까지 설명해야 한다. 매 기자회견이 난처하고 곤혹스럽겠지만 국가대표팀 사령탑의 자리가 그렇게 무겁다.
인터뷰 말미, 김 감독은 “선수들이 사명감 하나만으로 국가대표팀에 합류했다”면서 “국가대표팀은 선수 개개인이 아닌 하나의 팀”임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마지막까지 선수단을 향해 많이 응원을 해달라. 좋은 경기력으로 보답하겠다”고 전했다.
광명=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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