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과 카톡친구...회장님의 ‘인사 비법(秘法)’ [김선걸 칼럼]

김선걸 기자(sungirl@mk.co.kr) 2023. 9. 1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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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걸 주간국장
오래 일하던 편집국을 떠나 매경이코노미를 맡게 됐다. 하는 일이 바뀌면서 이른바 ‘디지털 작별’을 경험했다.

신문 기자의 삶은 늘 분주하다. 촌각의 뉴스를 다루는 접촉이 쇄도한다.

1996년 입사할 땐 연락 수단이 삐삐와 유선전화였다. 얼마 후 핸드폰으로 바뀌더니, 몇 년 전 스마트폰이 나온 후부터 카톡방이 생겼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울려대는 업무용 카톡방이 대여섯 개였다. 카톡방에선 세상의 소식이 끊임없이 보고됐다. 의견이 개진되고 신문 제작이 공유됐다. 냉정한 팩트가 보고되지만 가끔씩 비평과 논쟁, 드물지만 급발진한 반론도 튀어 나왔다.

하루 일과가 카톡을 보면서 시작해 카톡으로 끝났다. 수십 명의 기자들이 24시간 늘 연결돼 있는 느낌. 직장인지, 가족인지 헛갈릴 정도였다.

편집국을 떠나며 카톡방의 ‘나가기’ 버튼을 눌렀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오프라인보다 더 중요한 공간 아니었을까. 우린 이미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건지 모른다. 현실 세계에 기반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보다 더 중요해진 소통. 그게 카톡이었다.

‘디지털 경영(?)’을 하고 있다는 한 기업의 오너 경영인이 떠올랐다. 헌신적인 태도로 임직원의 존경을 받는 분이다. 고령에도 회사를 시시콜콜 파악하고 있는 게 희한했다. 그가 밝힌 비법은 ‘카톡 소통’이었다.

의도적인 건 아니었다고 한다. “박 과장 어머님이 편찮으시다는데 어느 정도인가”를 묻는 식의 대화가 시작이었다. 상대는 여러 직원과 두루두루 친한 젊은 직원이었다. 당사자에게 직접 묻기 어려운 다른 직원 대소사를 묻다 ‘카톡 친구’로 발전한 것이다. 대면이나 전화는 직원들이 부담스러워했다. 그런데 이 직원에게 카톡으로 뭘 물으면 진정성 있는 답이 돌아오고는 했다고 한다.

카톡에선 한번도 그 직원에게 지시를 내리진 않았다. 몇 번은 보고받은 사실과 완전히 다른 얘기를 들었다. 깜짝 놀랐지만 바로 반응하진 않았다고 한다. “스파이로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회사의 일은 직원들이 한다. 일하는 사람의 애로를 파악하고 의견을 듣는 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회사 임원들은 피곤할 것이다. 몰래 딴짓을 하거나 직원들을 허투루 대하기 힘들 것이다.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은 누군가 인사 발령을 낼 때 적어도 세 사람에게 물어봤다고 한다. 바로 윗사람, 아랫사람, 그리고 관련이 없는 다른 부서 사람이다. 특히 아랫사람 얘기를 가장 중시하라고 한다. 김 회장은 “윗사람은 속여도 아랫사람은 못 속인다”는 말을 자주 한다.

실제 기업의 가장 큰 적은 내부 직원인 경우가 많다. 건실한 기업은 경영상의 판단 착오로 어려워질 순 있어도 망할 만큼 휘청이는 경우는 드물다. 가장 위험한 사례가 내부인이 사고를 치거나 배신하는 경우다. 심지어 삼성처럼 관리가 완벽한 기업도 2002년 불법 정치 자금 사건 등이 모두 내부에서 나간 정보가 시작이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카톡방에선 대화가 오가고 있을 것이다. 거래처를 겁박해 사익을 챙기고, 부하 직원들을 괴롭혀 인재를 쫓아내고, 심지어 횡령 같은 위법도 자행할지도 모른다. 이런 사람들이 윗사람에게는 잘한다. 그러니 아랫사람들은 알면서도 말을 못한다.

예전에는 소통을 한다며 회식에서 건배사를 시키고 강제로 폭탄주를 먹였다. 서로가 힘들었다. 이제는 카톡이든 SNS든 소통의 수단이 많다.

직원들이 말을 안 한다고? 그 경영자는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을 빼먹고 있는 것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6호 (2023.09.13~2023.09.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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