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국채사러 日증시로 가는 사람들이 비밀...엔테크로 돈벌기 팁 [MONEY]
엔저 현상이 장기화하고 있다. 일본은행(BOJ)의 대규모 금융 완화 정책 여파로 엔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주요국 통화에 대한 엔화의 구매력이 급격히 약해졌다. BOJ에 따르면 지난 7월 엔화의 실질실효환율은 74.31로, 1970년 이후 가장 낮았던 지난해 10월(73.7)과 비슷한 수준까지 추락했다.
엔저 장기화에 투자자들은 ‘엔테크(엔화+재테크)’에 관심을 쏟는다. 국내에서도 투자자들의 일본 주식 순매수 금액이 전년 대비 약 17배 증가하는 등 일본 주식 투자 열풍이 거세다. 이뿐 아니라 국내 상장된 일본 상장지수펀드(ETF)에도 대규모 자금이 몰리며, 엔화 예금 규모도 확대되고 있다.
엔화 구매력, 50년 최저치 근접
일본 ETF에 국내 자금 몰린다
일본을 향한 국내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다는 점은 수치로 증명된다. 한국예탁결제원 세이브로에 따르면 지난 8월 1일부터 30일까지 국내 투자자들은 일본 주식 1억427만달러(약 1389억원)를 순매수했다. 1년 전(946만달러)과 비교해 10배 이상 급증한 규모다. 국내 투자자들은 올 들어 8월 말까지 3억9017만달러어치를 순매수했는데, 이는 지난 3년간 연간 순매수 규모를 넘어서는 수치다. 2020년에는 1억6209만달러(약 2141억원), 2021년에는 3억3385만달러(약 4410억원), 지난해에는 2412만달러(약 319억원)를 순매수했다.
전문가들은 일본 증시에 자금이 쏠리는 가장 큰 이유를 엔저 현상으로 꼽는다. 지난 6월부터 주요국 화폐 대비 엔화 가치가 급격히 추락했다. 올 4월까지만 해도 엔당 원화 가치는 1000원을 웃돌았지만, 6월 이후 900원 안팎에서 움직이는 상황이다. 불과 2~3개월 사이 10%가량 가치가 하락한 셈이다.
엔화 가치 하락은 일본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 상승으로 기업 실적 개선에 도움이 된다. 여기에 물가 상승, 경기 반등 기대감 등이 겹치며 일본 증시는 연일 신고가 행진이 벌어진다. 연초 2만5834포인트로 출발한 일본 니케이225지수는 지난 6월 3만3773포인트로 신고가를 기록한 뒤 여전히 3만3000포인트대에서 머물고 있다.
이처럼 일본 증시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리며, 국내 금융사들의 일본 마케팅은 갈수록 다양해진다. 한화자산운용은 지난 8월 31일 국내 최초로 일본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 종목으로만 구성된 ‘ARIRANG 일본반도체소부장Solactive’ ETF를 선보였다. 일본 정부의 반도체 보조금 지원과 엔저로 인해 관련 소부장 기업들의 주가가 상승하는 흐름에 맞춰 내놓은 상품이다. 신한투자증권은 일학개미를 잡기 위해 일본 주식 온라인 매수 수수료를 면제해주는 행사를 진행 중이다. 이뿐 아니라 엔화 환전 수수료 95% 우대 혜택도 자동 적용된다.
심지어 국내 투자자들이 일본 증시에 상장한 미국채 ETF를 매수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이 경우 미국채 금리 하락에 따른 자본차익은 물론, 환차익까지 추가로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엔·달러를 고정해 엔화로 미국채에 투자해도 미국 달러 등락에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엔·달러 약세를 피하면서 한화로 환전할 때 엔화에 대한 환차익을 챙기는 방식이다.
이런 이유로 일본 증시에 상장한 ‘아이셰어즈 20년 이상 미국채 엔화 헤지’ ‘아이셰어즈 코어 7-10년 미국채 엔화 헤지’ ‘아이셰어즈 미달러 하이일드 회사채 엔화 헤지’ ETF 등이 투자자들 사이에서 주목받고 있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BOJ가 완화적 통화 정책을 급격히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상당 기간 디플레이션과 저성장을 경험하고 있어 긴축 정책을 쓰기 부담스럽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이 확대로 당분간 엔저 현상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며 “국내 투자자 입장에서는 일본의 수출 기업들이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일본 주식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내년 엔고 가능성도
전문가들은 일본 주식 투자 시 업종별 차별화된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일본 증시가 강세를 보이고 있으나, 엔화 절하폭이 크기 때문에 실질 수익률이 명목 수익률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에 상대적으로 수익률을 더 높일 수 있는 종목을 선별 투자해야 실질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는 진단이다.
윤창용 신한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정밀기계, 정보기술(IT) 소재, 장비, 부품 업종은 기술 경쟁력이 높고 미국의 중국 공급망 배제에 따른 수혜도 기대된다”며 “사업 다각화와 투자 회사로서 가치가 부각되는 종합상사도 장기적 관점에서 관심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레저, 호텔, 유통 등 엔저와 리오프닝에 따른 방일 관광객 증가로 수혜가 예상되는 분야도 유망하다”고 덧붙였다.
단, 엔화 가치가 낮다고 무작정 투자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는 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인다. 특히 BOJ의 통화 정책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경제 성장의 연속성이 확인된 후 대응해도 늦지 않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지난 7월 BOJ의 수익률곡선통제(YCC) 정책 변동폭 확대는 금리 인상과 유사한 효과를 나타내며 향후 통화 정책 향방에 대해 시장이 인지할 수 있도록 지침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2분기 일본 국내총생산(GDP)은 전분기 대비 민간소비가 둔화된 점을 확인시켜줬다는 평가다. 성장에 대한 불확실성을 높였다는 뜻이다.
향후 엔화 가치가 절상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는 점도 투자자들이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엔화 가치가 단기적으로는 달러 대비 현 수준에서 횡보하겠지만, 연말로 갈수록 강세로 전환할 것으로 내다본다. 특히 내년에는 엔저보다 엔고의 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승훈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일본에서 물가 상승률이 다시 높아지고 있는 데다, 일본은행도 10년물 금리 상단을 1%까지 열어뒀다”며 “이에 따라 인플레이션 전망은 상향 조정되고 일본 금리는 꾸준히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는 미국과 일본의 금리차를 줄여 엔화 가치를 완만히 끌어올리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대로 원화는 내년 상반기까지 강세를 보이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미국 경기 침체 이슈가 부각되면서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금리 인하로 대응하는 상황이라면 안전자산인 엔화는 강세, 위험자산인 원화는 약세로 갈 가능성이 높다”며 “이 경우 엔화에 직접 투자한 투자자는 엔화 절상 효과로 차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6호 (2023.09.13~2023.09.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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