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중국 달래기', 중국의 '한국 껴안기'의 복잡한 셈법
[오태규 기자]
▲ 인도네시아 아세안(ASEAN)·인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일정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11일 오전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귀국,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서 내린 뒤 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윤석열 대통령이 5일부터 10일까지 인도네시아와 인도를 방문하고, 11일 돌아왔습니다. 5일부터 8일까지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인도네시아를 공식 방문했습니다. 이어 곧바로 인도로 이동해 9~10일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올해 아시아 순방은 지난해 11월의 동남아 순방보다 양과 질 면에서 다소 무게가 떨어졌습니다.
지난해에는 11월 11일부터 19일까지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정상회의(11일~13일, 캄보디아 프놈펜),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14~15일, 인도네시아 발리), 아펙(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18일~19일, 태국 방콕)가 연달아 열려 순방 일정이 올해보다 2배 가까이 길었습니다. 또 한미일 3국이 삼국 군사협력의 밑그림을 그린 캄보디아 3국 정상 공동성명이 나와 국내외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한미일 안보협력 체제를 구축한 올해 8월의 캠프데이비드 3국 공동성명 씨앗이 그때 뿌려진 것입니다.
▲ 2023년 9월 10일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베트남 공산당 본부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앤서니 블링큰 미국 국무부장관이 응웬 푸 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과 회담을 하고 있다. |
ⓒ UPI=연합뉴스 |
이런 식으로 대략 주요국들의 '편 가르기' 움직임이 정리된 탓인지, 올해는 양대 강국인 미국과 중국도 인도네시아와 인도에서 열린 다자외교에 큰 무게를 두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지난해 태국에서 열린 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했던 시진핑 중국 주석은 올해 인도의 G20 정상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아세안 정상회의와 G20 정상회의 모두 리창 총리가 참석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미국을 호락호락 따르지 않는 인도네시아는 가지 않고 중국 견제의 핵심국인 인도의 G20 정상회의에만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베트남(10~11일)으로 가, '포괄적 동반 관계'였던 양국 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반 관계'로 두 단계나 격상했습니다. 다자무대에서 헛심을 쓰지 않고 중국 견제에 영양가 있는 나라를 선택적으로 골라 힘을 집중하겠다는 행동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기류에 영향을 받아서인지 윤 대통령도 이번 아시아 순방 외교의 목표를 진영 외교의 강화보다는 한-아세안 연대, 글로벌 책임 외교 구현, 부산 엑스포 지지 확보에 뒀습니다. 당연히 중국이나 러시아를 직접 비난하고 견제하는 모습이 이전보다 줄어들고 약해졌습니다. 특히 중국과 관계 개선을 꾀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띄었습니다.
한국의 관계 개선 추파에 응하면서도 견제구 날린 중국
한국으로서는 캠프데이비드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을 통해 확실한 편을 만들어놨으니, 이제는 그 배경을 활용해 중국 끌어들이기에 힘쓰겠다는 계산이 작동했을 것입니다. 중국으로서도 한미일 3국 가운데 가장 약한 고리라고 생각하는 한국을 중국 쪽에 묶어두겠다는 계산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양국의 속셈이 교차하면서 이뤄진 것이 윤 대통령과 리창 중국 총리의 정상회담(7일, 인도네시아)입니다.
중국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회담은 피하면서 한국과는 정식회담을 했습니다. 중국의 한일 갈라치기 '이간계' 전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윤 대통령과 리 총리는 관계자들을 배석시킨 가운데 51분 동안 회담했습니다. 반면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중국과 정식회담을 하지 못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로 중국의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전면 금지하자, 애가 탄 기시다 총리로서는 꼭 리 총리를 만나 일본의 입장을 전할 긴급한 필요성이 있었는데 말입니다. 일본 언론 보도를 보면, 기시다 총리는 6일 점심을 먹던 중 리 총리가 부근에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 15분 동안 선 채 대화를 나눴습니다.
▲ 윤석열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컨벤션 센터(JCC)에서 열린 한·중국 회담에서 리창 중국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하지만 회담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중관계가 호전되기엔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 한중 정상회담 이후 특이한 것은, 중국 쪽은 회담 내용을 요약한 발표문을 낸 데 비해 한국 쪽은 발표문을 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대통령실 누리집에는 순방 기간 중 있었던 양자 정상회담 보도자료가 빠짐없이 올라와 있지만 중국과 회담만 없었습니다. 대신 김태효 안보실 제1차장이 말로 설명을 했습니다. 김 차장은 회담에서 윤 대통령이 "북핵 문제가 악화되면 악화될수록 한미일 공조가 그만큼 강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앞으로 중국이 이 문제에 대해서 성실하게 책임있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북한 문제가 한중관계에 걸림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중국 쪽 발표문을 보면, 이런 얘기는 없고 세 번째 단락 맨 뒤에 "중국은 한반도 남북이 화해 협력을 추진하는 것을 일관되게 지지해왔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할 것을 일관되게 주장해 왔으며, 계속해서 화해를 촉진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나옵니다. 이 부분이 북핵에 대한 협조 요청에 대한 답이라고 볼 수 있는데, 요약하면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하겠다는 뜻입니다.
리 총리는 왕이 부장과 박진 장관의 전화 회담 때보다는 어조가 부드러워졌지만, 기본적으로 왕이 부장이 내비쳤던 시각을 반복했습니다. 리 총리는 "서로의 핵심 이익과 주요 관심사를 존중하고 한중관계의 전반적인 상황을 유지해야 한다"라고 말했는데, 아마 이것이 그가 전하려고 하는 핵심 메시지라고 생각됩니다. 왕이 부장은 박 장관과 회담 때 "한국이 전략적 자주성을 강화하고, 다양한 역세계화 작업과 '탈동조화'에 저항하며 양국 간의 상호 이익 협력을 심화하여 양국 국민에게 더 나은 혜택을 주기를 바란다"라고 고압적으로 말한 바 있습니다.
이번 회담으로 볼 때 앞으로 한중관계는 긴장과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속에서 미묘한 줄다리기가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 및 한미일과 중국의 사이에서 윤 정권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 G20 국가 정상 및 대표단이 2023년 9월 9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첫 번째 세션에 참석하고 있다. |
ⓒ UPI=연합뉴스 |
이번 다자회의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G20 정상회의 공동성명에 러시아에 대한 '비난'이 빠진 것입니다. 이것은 지난 5월 히로시마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서 크게 후퇴한 것입니다. G7 정상 공동성명에는 "러시아의 명백한 유엔헌장 위반 및 러시아의 전쟁이 세계에 준 영향을 가장 강도 높은 언어로 비난한다"라고 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G20 정상 공동선언에는 G20 각국은 "유엔헌장에 합치하는 방법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만 기술돼 있습니다. 일본 언론 보도를 보면, 올해 G7 의장국인 일본은 미리 인도에 외무성 직원을 파견해 공동성명에 '비난'이란 용어를 넣기 위해 힘을 썼으나, 각국의 입장과 의견이 엇갈려 실패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선진국만 참가하는 G7과 중견국들이 함께 참가하는 G20 사이, 즉 선진국과 글로벌사우스 사이에 큰 시각차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제 사례입니다. 더 나아가 세계가 다극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표이기도 합니다. 또한 한국이 외교적으로 어느 한 방향으로만 달려가지 말고, 복잡하게 돌아가는 세계의 흐름을 잘 읽으면서 대처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JTBC 기자는 '윤석열'을 묻지 않았다
- 선거 앞두고 폭풍전야... 외신도 우려한 '관종 정치인'의 이 공약
- 권태선은 되지만 남영진은 안된다... 법원 판결 왜 달랐나
- 한강 따라 달리는 철도, 기관사 눈에 띈 이상한 광경
- 중국 휴대폰 속 보고 '덜덜'... 대통령님, 이거 정상 아닙니다
- 독도 공세 강화한 일본, 독도 예산 삭감한 한국
- 말만 꺼냈다 하면 '자유', 대통령 주변에 누가 있길래
- "스토킹 당하면 회사 못 다니겠죠?" 신당역 1년, 변한 게 없다
- 김정은, 푸틴 만나러 러시아로 출발
- 서현역 희생자 분향소가 캠퍼스에... 엄마는 딸의 친구를 꼭 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