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당하면 회사 못 다니겠죠?" 신당역 1년, 변한 게 없다
[김화빈, 권우성 기자]
▲ 신당역 살인 사건 1주기를 앞두고 11일 오전 서울 중구 지하철 2호선 신당역 10번 출구앞에 마련된 추모공간. |
ⓒ 권우성 |
"회사에 스토킹 피해를 말하면 불이익을 줄 것 같아요."
"(스토킹을 당한다면) 직장을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요?"
신당역 살인 사건 1주기를 사흘 앞둔 11일 낮 12시, 신당역에서 만난 시민들은 "여전히 바뀌지 않은 현실"을 토로하며 이 같이 말했다.
30대 직장인 김아무개씨는 "(지난해 신당역에서 발생한 이후에도 스토킹 범죄가) 언론에 자주 보도되는 것을 보면서 경각심을 갖게 됐다"며 "솔직히 직장에 스토킹 피해를 털어놔도 해결될 건 없을 것 같다. 피해 사실을 공론화하면 불이익을 줄 것 같고 회사에 다니기 어렵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대 딸을 키우고 있다는 60대 전아무개씨는 "1년이 지났는데 (바뀐 게)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씨는 "얼마 전 이른바 '바리캉 폭행' 사건(교제하던 여성을 오피스텔에 감금한 채 이발기로 머리를 밀고 수차례 폭행)을 보고 깜짝놀랐다"라며 "심지어 피해자 부모가 주변 편의점에 CCTV 열람을 요청했는데도 거부 당하는 모습을 보며 제3자(편의점)도 가해자의 보복이 두려워 피하는데 피해자는 오죽하겠나"라고 털어놨다.
지난해 9월 14일 신당역에선 서울교통공사에 다니던 전주환이 같은 직장 여성을 스토킹한 끝에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고인은 숨지기 전 여러 차례 스토킹 피해를 신고했으나 직장, 수사기관, 법원 등은 가해자 구속은 물론 제대로 된 분리나 인사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전씨는 선고를 하루 앞두고 고인이 일하던 곳으로 찾아가 살인을 저질렀다.
40대 직장인이라고 밝힌 김아무개씨는 "스토킹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도록 회사에 책임을 부여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신당역 10번 출구 앞에 마련된 '신당역 살인사건 1주기' 추모공간엔 국화와 함께 메모지들이 하나 둘 쌓여갔다. 메모지엔 "후배님 미안해요", "마지막까지 비상벨을 눌렀던 고인께 미안합니다", "죽지 않고 일하고 싶다", "우리 함께 안전한 세상 만듭시다"라고 적혀 있었다.
▲ 서울 중구 신당역 인근의 '신당역 사건 1주기 추모의 벽'에 11일 추모 메시지가 붙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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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전 10시엔 서울시청 앞에서 '안전한 일터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민주노총 공공운송노조,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 직장갑질119, 이은주 정의당의원 등은 '신당역 살인사건 1년 현장은 그대로다'라는 펼침막을 들고 "이 사건은 작업장에서 벌어진 산업재해이자 직장 내 괴롭힘 및 젠더폭력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경찰에 가해자를 신고하고 재판까지 진행하는 동안 회사에 알리지 않은 이유는 회사 대응체계와 피해자 보호를 신뢰하지 못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직장갑질 119 젠더폭력대응팀의 강은희 변호사는 "스토킹 범죄의 반의사불벌(피해자가 신고 시 처벌) 조항 폐지를 포함했던 법 개정은 고무적이나 실질적 변화인지는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스토킹 행위도 추가됐지만, 현행법은 언제나 새로운 유형의 스토킹에 취약하다. 7월 말 기준 장·단기 기준 피해자 전용 시설을 갖춘 지자체도 부산과 전남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접근금지 명령 등) 잠정조치는 최장 9개월로 피해자를 보호하기엔 부족한 데다 피해자의 직접 청구권도 인정하지 않아 신변보호의 사각지대 발생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며 "법에만 있는 형량과 보호조치 그 자체로는 현장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수사기관과 법원이 적극적으로 잠정조치를 청구하고 다른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을 고려해 높은 형량을 선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은주 의원은 "윤석열 정부가 구조적 성차별을 부정하고 여성가족부 폐지에만 몰두하고 있는데 이러면 또 다른 죽음을 막을 수 없다"며 "지금 필요한 것은 (최근 흉기 난동 사건에 대비하기 위해 배치한) 장갑차가 아닌 성평등"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여전히 정부 보호대책을 신뢰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며 "피해자 보호 및 신변안전 등 스토킹처벌법 강화뿐 아니라 직장내 괴롭힘 등 산업안전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봉민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아 11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스토킹 피해자들의 신변보호 신청 건수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2021년의 경우 1428건(10~12월)이었던 수치는 지난해 7091건에 달했고 올해는 상반기에만 3754건을 기록했다.
하지만 수사기관과 법원의 대처를 두고 '솜방망이'란 지적이 나온다. 한나라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판사)이 지난 7일 '스토킹 범죄와 양형'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5월 스토킹처벌법 단일 범죄로 기소돼 확정된 사건 385건 중 실형은 21건(5.5%)에 그쳤다. 집행유예가 126건(33%)으로 가장 많았고 공소기각이 122건(32%), 벌금형이 106건(27%)으로 그 뒤를 이었다.
▲ 신당역 살인 사건 1주기를 앞두고 11일 오전 서울시청앞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교통공사노조, 직장갑질119가 ''나 홀로 근무'가 여전하며, 역직원 72%가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한다'는 1주기 모니터링 보고서를 발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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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법의 재정비와 적극적 조치 못지 않게 직장에서의 피해자 보호 노력과 실효적 교육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최유연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소장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스토킹은 직장 안팎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문제"라며 "(하지만 대다수 직장에서의) 직장 내 성희롱 교육은 의미 없는 비대면 동영상 교육이 주"라고 지적했다.
이어 "단순히 '반복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스토킹이 아니다'와 같은 행위 판별 중심 교육이 아니라 스토킹이라는 범죄의 특성을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라며 "직장동료이자 시민으로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에 기반한 사내 가이드라인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스토킹은 직장 내 성희롱과 결이 다르다. 회사가 방패막이 되지 못하면 (가해자의) 집착증이 더 심해질 수 있다"며 "스토킹을 성폭력으로 간주하고 비밀준수 및 피해자 보호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
▲ 신당역 살인 사건 1주기를 앞두고 11일 오전 서울 중구 지하철 2호선 신당역 10번 출구앞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교통공사노조, 직장갑질119 관계자들과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희생자를 추모하며 헌화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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