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짝 없이 죽겠구나"...현지 생존자들이 전한 모로코 참상
“밤 11시 잠이 들락 말락비몽사몽한 순간, 침대가 흔들렸다. 순간적으로 1~2초 간은 꿈인 줄 알았다. 이내 알았다. 지진이었다. 이대로 건물이 무너질 것 같지만 극한의 공포가 몰려오며 가위에 눌린 것처럼 꼼짝을 하지 못했다. 책상 밑에 들어갈 생각도 못했다. 옆에 보이는 베개와 이불만 당겨서 머리를 감싸고 웅크렸다. 밖에선 차량 경적이 울리고 호텔 복도에선 대피하거나 고함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꼼짝 없이 죽겠구나.’”
지난 8일(현지시간) 모로코 강진 사망자가 2100명을 넘어선 가운데, 제10회 세계지질공원 총회에 참석했다가 현지에서 11일 귀국한 경상북도 환경정책과 김정훈 주무관(45·지질학 박사)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김 주무관은 진앙지에서 75㎞가량 떨어진 마라케시 호텔 3층에 머물고 있었다.
김 주무관은 밤 11시 11분 20초 간의 강렬한 진동이 멈췄던 순간을 되짚었다. 김 주무관은 “20초간 심한 진동이 지나가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커튼을 조심스럽게 열어봤다. 커튼을 열면 밖이 모두 무너지고 폐허가 돼있지 않을까 두려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16년 9월 경주 지진도 겪어봤지만 딱 10배 정도 파괴력이 센 지진이었다”며 “당시에 안동에 있는 사무실 책상이 살짝 떨리는 정도였다면 이번에는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강도로 ‘이러다 죽겠구나’ 생각했다”고 전했다.
이날 김 주무관과 함께 지질 총회 참석을 위해 마라케시에 머물렀던 국내 학자 및 공무원은 80여명이었다. 제주도 대표단은 머물던 호텔이 지진으로 파괴된 탓에 길거리에서 날밤을 지새워야했다. 제주도 대표단이 건넨 사진을 보면 호텔 로비 외벽이 무너져 바닥에 쏟아져 있고, 외부 기둥 곳곳도 갈라져있었다.
아직 모로코 현지에 머물고 있는 고정군 제주도청 한라산연구부장은 11일 중앙일보에 “전체적으로 건물의 흔들림이 커서 폭탄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나고 바로 외벽이 붕괴됐다”며 “호텔이 다시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면서 투숙객 전부가 호텔 밖으로 탈출해 길가에서 밤을 지새웠다”고 전했다. 고 부장은 “대부분 잠에 드는 시간이라 조금만 지체됐으면 큰일이 났을 수도 있었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조기 귀국 항공권을 구하지 못해 진앙지에서 떨어진 외곽 지역에 대피 중인 제주도 대표단은 원래 일정대로 현지시간 12일 새벽 모로코를 떠나 한국시간 13일 오전 7시 인천공항으로 귀국할 예정이다.
국내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구호의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대한적십자사는 국제적십자사를 통해 10만 스위스프랑(한화 약 1억5000만원)을 긴급 지원하고 20억원 규모의 대국민 모금 캠페인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보건의료 전문 NGO ‘글로벌케어(GlobalCare)’는 지진 발생 이튿날인 지난 9일 한국 의사와 현지 의사 등 6명의 구호팀을 꾸려 지원에 나섰다.
장서윤ㆍ김민정 기자 jang.seo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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