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역 희생자 분향소가 캠퍼스에... 엄마는 딸의 친구를 꼭 껴안았다
[복건우 기자]
▲ 11일 오후 서울 광진구 건국대 예술디자인대학 지하 1층 입구에 마련된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피해자 김혜빈씨 추모 공간에서 혜빈씨 대학 동기와 혜빈씨 어머니가 서로 포옹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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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 2시, 고 김혜빈(20)씨의 부모님이 서울 광진구 소재 건국대 예술디자인대학 건물을 찾았다. 숨진 딸이 밝게 웃으며 입학했던 곳에 이젠 딸을 추모하는 분향소가 마련돼 있었다. 혜빈씨는 지난 8월 3일 일어난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으로 숨졌다.
가슴에 검은 리본을 달고 생전 혜빈씨가 좋아했던 인형을 든 두 사람을 혜빈씨의 과 선배 이시윤(21·건국대 예술디자인대학 인권위원장)씨가 맞았다. 혜빈씨와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친구이자 대학 동기도 우연히 이곳을 지나다 부부와 인사를 나눴다. 혜빈씨 부모님, 선배, 친구, 이렇게 네 사람은 서로를 쓰다듬고 꼭 껴안으며 눈물을 터뜨렸다.
혜빈씨 부모님은 분향소 벽면에 붙은 메모지를 하나하나 살펴보며 손수 쓴 편지를 내려놨다. "보물 1호이자 삶의 활력소가 되어준 예쁜 공주 딸 혜빈이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혜빈씨 어머니가 "친구들에게 무거운 짐을 다 짊어지게 한 것 같네"라며 미안해하자, 시윤씨는 "이런 일 하려고 학생회가 있는 건데요. 다들 함께하고 있어요"라고 위로했다.
▲ 11일 오전 서울 광진구 건국대 예술디자인대학 지하 1층 입구에 마련된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피해자 김혜빈씨 추모 공간을 둘러싸고 근조화환과 포스트잇이 가득 채워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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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빈씨가 속해있던 건국대 예술디자인대학 학생회는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피해자인 그를 위해 지난 8월 30일 이 건물에 추모공간을 마련했다. 이날 11일은 추모공간 운영 마지막 날이었다.
추모공간은 그동안 추모객들이 두고 간 편지와 국화, 근조화환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삼가 고인(김혜빈 학우)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힌 검은 현수막 아래엔 수십여 개의 메모지가 빼곡히 붙어 있었다.
"같은 학과 한 학번 선배입니다. 지나가며 얼굴을 봤을 수도 있는데 혜빈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부디 다음 생엔 하고 싶은 일 하며 살 수 있었으면 합니다."
"작년 이태원 참사로 소중한 친동생을 잃었습니다. 무고하게 세상을 떠나가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세상을 바꾸려 부단히 소리쳤습니다. 당신의 선배로서, 아픔을 가진 유가족으로서, 더 좋은 세상을 보여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분향소가 정리되는 이날까지도 발걸음을 멈춰 세우는 추모객들이 눈에 띄었다. 학생들은 수업을 들으러 가는 와중에도 메모지를 붙이거나 분향소를 바라보며 애도를 표했다. 혜빈씨가 세상을 떠난 지 2주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학생들은 8월 3일 그날을 함께 기억하고자 했다.
그날, 혜빈씨는 서현역 인근 미술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혜빈씨는 그날도 카카오톡으로 엄마한테 '일하러 가세'라는 이모티콘을 보내며 일찍이 집을 나섰다. 그것이 엄마와 나눈 마지막 인사였다.
늦게 결혼한 엄마·아빠의 귀한 외동딸이었던 혜빈씨는 그날 인도로 돌진한 범인의 차량에 치였고 3주 넘게 병원에 머물다 8월 28일 숨을 거뒀다. 혜빈씨는 8월 31일 발인을 마치고 성남의 한 추모원에 잠들어있다. (관련 기사: "서현역 돌아다니지마" 엄마의 카톡에 딸은 영영 답하지 못했다 https://omn.kr/25f34)
혜빈씨와 같은 단과대를 졸업했다고 밝힌 황연미(32)씨를 이날 추모공간에서 만났다. 황씨는 "우리와 같은 꿈을 가지고 입학한 학생이었는데 꿈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명복을 빈다"며 안타까워했다. 같은 곳에서 만난 김예슬(28)씨도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피해자가 같은 학교 학우분인지 몰랐다"며 "이러한 추모 공간이 있어야 고인을 기억하고 억울함도 풀어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 11일 오후 서울 광진구 건국대 예술디자인대학 지하 1층 입구에 마련된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피해자 김혜빈씨 추모 공간을 혜빈씨 대학 동기, 선배와 혜빈씨 부모님이 바라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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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갑작스레 떠나보낸 뒤에도 유족들의 고통은 계속됐다. 정부 차원의 범죄 피해자 지원체계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혜빈씨 유족은 사고 이후 경기도와 성남시로부터 피해자 지원이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
또한 정부가 범죄 피해자에게 지원하는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의 치료비에 대해서도 유족은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흡한 범죄 피해자 지원체계에 대한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달 21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으로 뇌사 상태에 빠진 혜빈씨의 입원비를 "정부가 지원하겠다"고 밝혔으나, 이후 미진한 대응에 혜빈씨 유족은 여전히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여기에는 앞으로 비슷한 범죄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 유족이 똑같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도 담겨 있었다.
혜빈씨 아버지는 아래와 같이 토로했다.
"딸이 갑작스럽게 범죄 피해를 당했는데 어떻게 일이 손에 잡히겠어요. 그리고 지금 정부 지원책을 보면 그냥 죽으니까 끝인 것 같아요. 어느 한 곳도 제 역할을 안 해요. 피해자가 우리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가족들, 친척들, 친구들, 슬픔에 빠져 있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닌데 정부가 직접 다가가서 위로해줘야죠."
▲ 11일 오전 서울 광진구 건국대 예술디자인대학 지하 1층 입구에 마련된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피해자 김혜빈씨 추모 공간을 둘러싸고 근조화환과 포스트잇이 가득 채워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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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차원의 조례도 만들어지고 있다. 경기도의회는 이기인 경기도의원(국민의힘)이 8월 25일 대표발의한 '이상동기 범죄 방지 및 피해 지원에 관한 조례안' 제정을 위해 논의를 진행 중이다. 조례안은 이날 오후 경기도의회 안전행정위원회에서 수정 가결돼 오는 21일 본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이다.
이기인 의원은 이날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범죄 피해 유족들은 스스로 지원책을 알아보기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하는 등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조례안 발의 취지를 설명했다.
건국대 추모공간에 모인 추모품은 학생회를 통해 이번 주 중으로 유족들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혜빈씨 아버지는 "이번 주 목요일이 (범인의) 첫 공판 날인데 사실 겁이 난다. (국회 국민동의) 청원도 반려된 상태에서 형량이 어떻게 내려질지..."라며 "그래도 아들딸 같은 혜빈이 친구들을 보며 많이 위안받고 있다. 혜빈이와 친구들의 앞날이 억울하지 않도록 끝까지 재판 결과를 지켜볼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 사건 범인의 첫 공판은 오는 14일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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