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선은 되지만 남영진은 안된다... 법원 판결 왜 달랐나
[신상호 기자]
▲ 행정법원 출석한 권태선 전 방문진 이사장 권태선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31일 오전 서초구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방송통신위원회 해임 처분 집행정지 신청 심문기일에 출석하며 발언하고 있다. 2023.8.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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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임된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MBC 대주주) 이사장이 복귀했다. 하지만 남영진 전 KBS 이사장은 돌아오지 못했다. 같은 날, 같은 법원에서 두 공영방송 이사들의 운명은 그렇게 엇갈렸다.
상반된 두 개의 판결 중 더 주목해야 할 쪽은 권 이사장의 승소다. 재판부는 권 이사장이 낸 해임 효력정지 신청을 인용해 복직을 허용했다. 임기 중 해임된 공영방송 이사의 효력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판부가 권 이사장의 손을 들어주면서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 보장이라는 공익에 더욱 부합한다"고 한 점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부장판사 김순열)는 11일 오전 권 전 이사장이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를 상대로 제기한 해임처분 집행정지 신청 소송에서 "1심 판결 선고일부터 30일이 되는 날까지 권 전 이사장 해임처분의 효력을 정지하라"고 판결했다.
이날 법원의 판결로 권 이사장은 즉각 복직할 수 있게 됐다. 해임 통보를 받은 지 22일 만이다. 아울러 1심 판결이 확정되기까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직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그동안 역대 정부에서 해임된 공영방송 이사들이 해임 효력정지 신청을 냈지만 받아들여진 경우는 없었다. 정연주, 고대영 전 KBS 사장 등이 해임효력정지 신청을 냈지만 잇따라 기각됐다. 최근에는 한상혁 전 방송통신위원장도 1심과 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이런 점에서 법원의 판단은 전향적으로 평가된다.
공영방송 이사 해임 효력정지 '최초'... 법원 "권태선 피해 명확"
법원이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 보장'을 명시한 지점도 주목된다. 판결문을 보면 법원이 '권 이사장의 해임이 공익적 필요'라는 방통위 입장과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권 이사장의 입장 사이에서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재판부는 우선 방통위가 주장한 권 이사장의 해임 사유를 두고 '소명이 되지 않는다'거나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봤다.
방통위는 MBC 사장 부실 검증, 경영진 성과급 과다 지급과 경영 관리 미흡 등을 해임 사유로 들었지만, 재판부는 "이사회의 심의, 의결을 거친 사안에 대하여 이사 개인으로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위반하였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또 방통위가 제출한 자료들로는 "현저한 불합리한 점이 있었다는 부분이 소명되지 않는다"고 했다.
반면 재판부는 해임에 따른 권 이사장의 피해는 명확하다고 지적했다. 방문진 이사 해임으로 단순히 급여를 받지 못하는 '재산적 피해'는 물론 이사직 수행을 하지 못하면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 즉 '비재산적 피해'를 언급한 점도 눈에 띈다.
재판부는 "이사장으로서 지위와 역할 등에 비추어 신청인의 비재산적 권리가 침해당하는 손해를 경미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해임으로 인한) 손해는 금전보상이 불가능한 경우 또는 금전보상으로는 사회관념상 신청인이 참고 견딜 수 없거나 견디기가 현저히 곤란한 경우의 유형, 무형의 손해로서 본안에서 승소하더라도 회복하기 어렵다고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권 이사장의 복직이 방송 독립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근본적 신뢰 상실 등 명시적인 사유가 있을 때만 해임을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방송문화진흥회법이 추구하는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 보장이라는 공익에 더욱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권 이사장의 손을 들어줬다.
김성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그동안 언론 유관기관의 이사나 사장들의 해임 사건과 관련해 해임 효력 정지가 받아들여졌던 적은 거의 없었는데, 이번 판결은 전향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면서 "권력기관의 정치적인 의도를 가진 위법적 해임에 대해 법원이 경고를 내린 것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방송문회진흥회법이나 방송법 등 공영방송과 관련된 법은 세부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방송 독립성의 가치를 명시한 것은 같다"면서 "법원이 판결을 내리는 요소 중 하나로 방송 독립성을 중요하게 봤다는 점은 향후 재판에 대해서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점"이라고 덧붙였다.
▲ 한상혁 전 방통위원장과 정연주 전 방심위원장, 남영진 전 KBS 이사장, 권태선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윤석열 정부 '해직 방송 기관장'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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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해 언론현업단체와 시민단체 등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향후 법원의 판단을 낙관하긴 어렵다. 이날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부장판사 신명희)는 남영진 전 KBS 이사장이 윤석열 대통령을 상대로 낸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같은 법원에서 이뤄진 상반된 결정이었다.
재판부는 남 전 이사장이 주장한 '해임으로 입게 될 손해'보다는 방통위가 주장한 '(남 전 이사장 복직시) 공익에 중대한 악영향'이 더 크다고 봤다. 권 전 이사장의 사안과는 반대로 방통위의 주장을 들어준 것이다.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보궐이사가 이미 선임됐고, 신청인(남영진)은 국민권익위 조사를 받고 있으므로, 해임처분 효력이 정지될 경우, KBS 이사회 심의 의결에 장애가 발생하거나, 공정성이 의심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복직하는 권 이사장도 마냥 안심할 처지는 아니다. 권 이사장의 판결이 나오자 방송통신위원회는 출입기자들에게 메일을 보내 "즉시 항고하여 집행정지 인용 결정의 부당성을 다툴 예정"이라며 "법원의 이번 결정으로 방문진의 의사결정 과정에 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 데 대해 깊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또 방통위는 "방통위원장의 정당한 임면 권한 보장을 위해, 그동안 해임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은 기각돼 온 것이 법원 선례"라며 "KBS 이사 강규형 등은 지난 정권에서 정말 무리하게 해임했음에도 법원이 집행정지 신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권 이사장의 복직을 허용한 행정법원의 결정을 확대 해석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남근 참여연대 변호사는 "3권 분립의 원칙에 따라 일반적으로 행정소송에서 사법부가 행정부의 결정을 뒤집는 일은 드물다, 사법부가 행정부 결정을 뒤집는 것이 반복되면 사법부 우위가 되기 때문에 집행정지 신청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 이사장의 복직은 취임 전 발생한 일을 해임 사유로 드는 등 해임 사유가 불충분했기 때문에 이뤄진 결정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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