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로톡 징계' 미룬 법무부, 작년 미국 출장 뒤엔 "긍정적"
법무부가 지난해 미국 출장을 통해 리걸 테크 기업들의 플랫폼 사업 허용 여부에 대해 긍정적인 판단을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정작 법률서비스 플랫폼 ‘로톡’에 가입한 변호사들을 변호사협회에서 징계한 것이 정당한가에 대한 심의에서는 몇 달째 결론을 미루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실이 입수한 ‘리걸 테크 제도개선을 위한 공무국외출장 결과보고’에 따르면, 법무부는 지난해 6월 ‘변호사 검색 플랫폼은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한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고, 이에 비해 브로커와의 결합 등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은 상대적으로 낮다’고 판단했다.
법무부 법무과 서기관 등 4명은 지난해 4월 “국내에서 문제 되고 있는 변호사 검색 플랫폼 갈등 해소 및 리걸 테크 선진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미국 리걸 테크 산업 관련 기관과의 회의가 필요하다며 캘리포니아주와 워싱턴주 등으로 7박 9일 출장을 다녀왔다.
보고서에는 로톡을 명시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로톡과 대한변협 간 갈등으로 대표되는 국내 법률서비스 플랫폼 규제 문제를 미국에서는 어떻게 다뤄왔는지를 살피고 온 것이 주된 내용이다. 대개 결론은 우리도 미국처럼 규제를 풀고 허용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내용이다.
로톡은 2014년 서비스 출시 이후 2015년부터 대한변협의 공격을 받아왔는데, 대한변협은 로톡의 운영방식이 변호사법상 금지되는 ‘알선·유인’이라 보지만 로톡은 ‘광고’라 주장한다. 보고서엔 미국의 변호사 검색 플랫폼 ‘아보(Avvo)’에 대해 워싱턴주에선 ‘중개(referral)’가 아닌 ‘공동광고(joint advertising)’로 보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워싱턴주 변호사협회는 2014년 잠재적 의뢰인과 변호사를 연결해주는 서비스에 대한 기준을 세웠는데, 변호사가 여기에 가입해 자신의 광고를 올리고 잠재적 의뢰인으로부터 연락받을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는 변호사 윤리규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본다.
미국은 의뢰인에게 특정한 변호사를 매칭해 주는 ‘중개’에 대해서도 폭넓게 허용하고 있는 편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브로커 문제 때문에 중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보고서는 “중개는 변호사에 대한 접근이 어려운 취약 계층의 법률서비스 접근성을 향상시킨다”며 “일률 금지는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허용 범위를 확장해 정액의 수수료만 받는 중개서비스의 허용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변호사협회와 리걸 테크 업체 간 다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보고서는 이 갈등이 어떻게 끝났는지도 살폈다. “‘리걸 줌(LegalZoom)’이란 업체가 노스캐롤리나주 변호사회를 상대로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는데, 결국 리걸줌이 법률양식을 제공하는 걸 허용하되 양식 마지막에 변호사 검토를 거치도록 하는 형태의 영업을 하도록 했다”고 전했다. 또 ‘리걸 매치(LegalMatch)’ 사례에서는 “캘리포니아주 변호사회와 소송 진행 중 중개서비스업으로 등록하기로 해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판결문 공개 등 국내 리걸 테크 발전을 위해 배워야 할 점을 다수 담았다. 보고서는 “우리나라도 변호사와 리걸 테크 기업 간 동업을 허용하는 규제샌드박스 제도 도입을 검토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캘리포니아주는 판결문이 모두 온라인에 공개돼 리걸 테크가 발전했는데 국내는 판결문 공개 수준이 낮아 데이터 부족으로 리걸 테크 기업이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보고서는 또 “법률 문서 자동 작성 프로그램은 변호사와 소비자 모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며 “국내 리걸 테크 기업들이 법무사, 행정사, 변리사 등 전문자격사들이 수행하는 서비스도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해당 보고서가 한동훈 장관에게 보고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법무실장 결재까지는 거친 것으로 나타났다. 법무실장은 변호사 징계위원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지난 2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변협의 로톡 가입 변호사 징계는 영업활동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니 시정하라는 판단을 냈지만, 여전히 로톡 이용을 두려워하는 변호사들에겐 변협의 징계를 법무부가 취소해주는지가 더 중요하다. 하지만 법무부는 변협으로부터 징계처분을 받은 변호사들이 지난해 12월 낸 이의신청을 9개월이 넘도록 심의 중이다.
박용진 의원은 “법무부에서는 1년도 더 전에 내부적으로 방향성을 잡고 있는 사안에 대해 이런 식으로 시간을 끄는 건 변협으로 대표되는 ‘법조 카르텔’ 눈치를 보는 것”이라며 “법무부의 ‘침대축구’에 스타트업이 고사하지 않도록 빠른 결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현경·윤지원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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