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40대女 옆 아들, 4살 아니었다…'미등록 아동' 명단조차 누락

김준희 2023. 9. 11.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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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한 다세대 주택 우편함에 전기 요금 영수증 등이 꽂혀 있다. 지난 8일 해당 원룸에 사는 A씨(41·여)가 생후 20개월로 추정되는 아들 곁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김준희 기자


7월 위기 가구 대상 포함…"연락 안 닿아"


지난 8일 전북 전주의 한 원룸에서 4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된 가운데 해당 지역 주민센터에 지난 7월까지 통보된 위기 가구 발굴 대상자는 이 여성을 포함해 550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해당 주민센터에서 위기 가구 확인 업무를 담당한 공무원은 1명이었다. 또 숨진 여성 곁에서 구조된 남자아이는 출생신고가 안 된 이른바 '그림자 아이(미등록 아동)'였다.

11일 전북경찰청·전북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 8일 오전 9시55분쯤 전주시 완산구 한 다세대 주택에서 A씨(41·여)가 숨져 있는 것을 경찰과 119구급대가 발견했다. 경찰은 "집에서 개 짖는 소리만 들리고 닷새째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집주인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A씨는 뚜렷한 직업 없이 B군을 홀로 키웠다. 기초생활수급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2021년 5월 건강보험료·가스비 등을 체납해 위기 가구 발굴 대상자에 포함됐다. 이후 수익이 생겨 2021년 12월 명단에서 빠졌다가 건강보험료 등을 체납하면서 지난 7월 다시 위기 가구 발굴 대상자가 됐다.

A씨는 요금을 내지 않아 지난 5월 이후 가스가 끊겼다. 건강보험료는 56개월이나 내지 못해 체납액이 118만6530원에 달했다. 관리비 5만원도 반 년간 밀렸다. 월세도 두 달가량 밀리고, 전기 요금도 6~8월 석 달치(21만4410원)를 체납했다.

지난 10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한 원룸 현관문 앞에 폴리스라인이 쳐 있다. 지난 8일 이 집에 사는 A씨(41·여)가 생후 20개월로 추정되는 아들 곁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김준희 기자


위기 가구 대상 550명…담당 공무원은 1명


전주시는 "보건복지부가 지난 7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사회보장정보시스템(행복e음)을 통해 전주시에 통보한 위기 가구 발굴 대상자 1만 명 중 A씨도 포함돼 있었다"고 밝혔다. 행복e음은 정부가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구축한 정보 시스템이다. 복지부는 건강보험료 체납과 단전·단수 등 39가지 위기 징후 정보를 입수해 연간 500만 명 명단을 지자체에 전달한다. 이 중 20만 명가량을 추린 위기 가구 발굴 대상자를 지자체에 통보하고 있다.

A씨 원룸이 있는 서신동 주민센터에 지난 7월까지 통보된 위기 가구 발굴 대상자(550명) 가운데 A씨가 포함된 4차 발굴 대상자는 87명이다. 주민센터 측은 "주민센터에 사회복지직 공무원이 여러 명 근무하지만, 위기 가정 확인은 1명이 한다"며 "보통 대상자와 한 번에 연락이 닿기 어려운 데다 업무가 벅차 복지부 통보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담당 공무원은 지난 7월 28일 A씨에게 위기 가구 관련 안내문을 발송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지난달 16일 통화가 안 되자 24일 정확한 주소를 확인하기 위해 A씨가 사는 다세대 주택을 방문했지만 만나지 못했다. 전화 연결도 안 됐다. 지난 4일 다시 A씨와 통화를 시도했으나 불발됐다. 이후 8일 위기 가구 등록 절차 안내문 등이 담긴 등기를 A씨 앞으로 발송했으나 A씨가 숨진 뒤였다.

경찰은 "(시신 발견) 닷새 전 A씨가 집으로 들어가는 걸 봤다"는 목격자 진술을 바탕으로 A씨가 지난 3일 이후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동맥 경화로 사망…진료 기록은 없어


국과수 부검 결과 A씨 사망 원인은 동맥 경화다. 시신에선 담석도 발견됐다. 하지만 A씨가 병원 진료를 받은 기록은 나오지 않았다. 경찰은 A씨가 생활고 탓에 제때 치료를 받지 못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박경민 기자


"출생신고 안된 영아 명단에도 없어"


A씨 곁에서 구조된 B군은 출생신고가 안 된 '미등록 아동'으로 확인됐다. 조사 결과 A씨는 8년 전 이혼했다고 한다. 자녀 2명은 전 남편이 양육하고 있다. B군 친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A씨가 친모로 추정되지만, 가족관계부에 B군 이름이 올라 있지 않아 출생신고가 누락된 것으로 보고 국과수에 유전자(DNA) 검사를 의뢰했다. 소방당국은 발견 당시 B군 몸집과 치아 등을 고려해 4살로 추정했다.

그러나 경찰 등은 A씨가 올해 초 지인에게 "B군이 돌(1살)이다"라고 보낸 메시지 등을 바탕으로 생후 20개월 전후로 추정하고 있다. 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진 B군은 현재 의식을 회복했다고 한다. 병원 관계자는 "B군은 영양실조"라며 "키 79㎝에 체중은 8.2㎏ 정도"라고 했다.

인근 주민은 "A씨를 집 근처에서 여러 번 본 적이 있지만, 아이를 데리고 나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B군은 정부가 지난 6월과 7월 미등록 아동을 찾기 위해 진행한 전수 조사에서도 포착되지 않았다. 정부는 6월 28일부터 7월 7일까지 2015~2022년 의료기관에서 출생했지만, 출생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2123명을 조사했다. 그러나 B군은 이 조사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보건당국은 '병원 밖 출산'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전주시는 "A씨 출산 기록 자체가 없어 B군 나이 등 신원이 전혀 확인되지 않고 있다"며 "경찰 조사 결과가 나오고 B군이 건강을 회복하면 출생신고를 하고 친권자 지정 등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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